나의 채점은 편견이 아닐까?
학생들의 논술을 채점하면서 나는 정말 옳게 평가하고 있는가? 여러 번 생각하게 된다.
우수한 학생 즉 공부 잘하면서도 성실한 학생이 쓴 글은 우선 글씨가 정갈하고 성의가 있다. 어떻게든 서론, 본론, 결론의 논리나 기승전결의 흐름을 잇고자 한다. 띄어쓰기나 맞춤법도 최대한 잘 지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참 고맙다. 그러나 감동을 주는 글은 아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학생이 쓴 글은 글씨도 논리도 맞춤법도 많이 부족하고 글의 길이도 3-4 문장 정도밖에 안 된다. 그래도 그 글을 쓰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보인다. 역시 고맙다.
끝으로 이상한 학생, 공부도 별로고 성실하지도 않은 학생이다. 성의도 없고 글씨도 맞춤법도 엉터리다. 내용도 많지 않다. 하지만 간혹 그런 글 중에 뭔가 느껴지는 글이 있다. 갈고 닦지 않아 그렇지 뭔가 마음을 확 잡아끄는 게 있다.
채점하는 나는 당연히 우수한 학생, 최선을 다하는 학생, 이상한 학생 순으로 채점을 한다. 그게 정의로운 것이라 생각하니까.
잘못 생각한 게 아닐까? 편견이 아닐까?
좀 이상하지만 발전 가능성이 풍부한 원석 같은 학생에게 격려 차원에서라도 좋은 점수 주는 게 나름 좋은 일은 아닐까? 나중에 그 아이들이 정말 큰 작품을 남길지도 모르니까?
영문과 입학시험에 당당하게 “ 지금 나는 영어 한마디 못하지만 졸업 때는 우리 과에서 영어를 제일 잘할 자신이 있다. ” 라는 답을 쓰고 와세다 대학교(早稻田大學校) 영문과에 합격한 양주동 박사 그리고 이 사람을 합격시켜 준 와세다대학교(早稻田大學校) 영문과 교수들
나도 와세다대학교(早稻田大學校) 영문과 교수들처럼 채점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