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네가 준비한 것 다해라! 나도 내가 준비한 것 다하겠다.
1986년 우리 축구팀이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라갔다. 당시는 88올림픽을 준비하던 시기라 스포츠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축구처럼 내셔널리티(Nationality)가 강한 종목은 마치 국운이라도 걸린 듯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다. 더구나 우리 축구팀은 1970년부터 매회 월드컵 진출 일보직전에서 애석하게 탈락하는 아픈 경험을 반복해 왔었다.
32년 만의 월드컵 진출,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여기에 당시 차범근 허정무 박창선 최순호 등 선수들의 면면도 엄청나게 화려했다. 하지만 조 편성은 최악이었다. 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 동유럽의 강호 불가리아 그리고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마라도나가 버티고 있는 아르헨티나 (그 대회 우승팀)가 우리가 상대할 팀들이었다.
첫 상대는 아르헨티나였다. 내가 보기에도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기량은 우리 선수들보다 월등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도 평생 축구만 한 사람들이고 월드컵을 위해 엄청나게 훈련했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우리 선수들은 상대 선수 특히 마라도나에게 영 힘을 못 쓰는 것이었다. 마라도나가 공만 잡았다 하면 2-3명이 달려들어 우왕좌왕했고 여우 같은 마라도나는 우리 선수 2-3명을 끌고 다니며 경기장을 마음대로 헤집고 다녔다. 그러는 사이 다른 선수들이 무인지경이 된 우리 골문을 두드려 연거푸 세 골을 넣었다. “ 3:0 역시 세계의 벽은 높구나! ”를 실감할 즈음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해설자 선생의 멘트가 유난히 뼈를 때렸다. “ 마라도나 선수가 신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준비한 플레이를 하면 됩니다. 왜 우왕좌왕하는지 모르겠습니다. ” 내가 들은 해설 중에 단연 최고의 해설이었다. 마라도나 선수를 의식할 필요가 없었다. 마라도나가 아무리 최고의 선수라 해도 우리는 우리대로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훈련하고 준비한 게 있다. 또 아르헨티나란 팀을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이길 것인가를 생각하고 만들어 연습한 전략과 전술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을 해보고 지더라도 져야 했다. 그래야 우리의 기량도 늘고 세계의 강호들과 붙어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감 있게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미란 차관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 한때 나도 중요한 경기 전 혹시 라이벌 선수가 실수라도 안 하나! 부상이라도 안 당하나! 같은 한심한 생각을 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너는 네가 준비한 것 다 해라! 나도 내가 준비한 것 다 하겠다. ” 얼마나 멋있는 생각인가. 이런 자세가 바로 월드 챔피언 장미란을 만든 것이다. 후회 없는 승부, 납득가는 패배, 발전하는 실패. 공부든 스포츠든 이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