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길

시골마을길

by 신관복

남편의 투병을 위해 12년째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시골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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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이 피어날 무렵인 4월 초였다.

항암치료를 받으러 한 달에 한 번꼴로 서울로 오르내렸다. 봄부터 가을까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그렇게 우리 부부는 묵묵히 수술할 날 만을 기다렸고 드디어 항암치료를 그만하고 두 달 쯤 후 인 올해 12월 말에 절제 수술을 하자는 주치의의 설명을 듣게 되었다.

이 나날 동안 내 몸이 알게 모르게 잔뜩 긴장되어 있었던 탓인지 본인은 안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내 몸은 끊임없는 스트레스에 시달려 온 건지 내가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이제는 반대로 남편이 나를 데리고 병원을 다녔다. 대학병원으로, 동네 한의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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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시절부터 항상 희망으로 가득 차 있던 나의 마음속은 절망이 꽉 들어찼고, 머릿속은 암흑이 내려앉은 것처럼 캄캄했다. 처방된 항정신제, 신경안정제, 소화제 이런 약들을 받아들고는 조그맣게 남아있는 오기에 그대로 책상 위에 방치하군 했다.

한 시간 한 시간 이 더디게 갔고 앉아도, 서도, 누워서도 조급했고 불안했다. 시계를 자꾸만 쳐다봤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어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와 아파트 근처와 한강변을 미친 듯이 배회했다.

무언가를 먹으면 치받치고 가슴이 두근두근 해 졌고 제대로 먹지 못하니 2주 사이에 8킬로그램이나 체중이 쭉 내려갔다.

자다가 새벽 4시에 119를 내가 직접 불러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는 횟수가 한달에 두 세번이나 되었다. 병원에 실려 가서 일체 검사를 하고 누워 있노라면 좀 안정이 되어 별 문제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귀가 하군 했다.

남편은 이런 나를 데리고 다시 시골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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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이 지는 11월이었다.

마당 가득히 정원의 느티나무 두 그루에서 떨어진 낙엽잎이 가득했다.

나는 마을 길을 정신없이 다니기 시작했다. 저녁 8시 되면 신경안정제를 먹고 자리에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리다 어느새 잠들 군 했지만 정신이 들면 아직도 깜깜한 한 밤중.

다시 약을 먹고 5시까지만 잘 수 있었으면...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걸 간신히 참아내며 누워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지옥이었다.

빨리 일어나 마을길을 배회하고 싶었다.

어느 날.

진눈깨비가 입은 겉옷을 다 적셔도 아랑곳 안 했고 얼굴이 온통 젖고 안경 낀 앞이 안 보여도 상관없었다. 적벽산장 쪽으로 정신없이 발길을 놓던 중 도중에 길가의 낙엽을 쓸고 있던 과천댁 아저씨를 만났다. 어쩌다 이렇게 얼굴이 반쪽이 되었냐며 혀를 찬다. 혼잣말로 마음의 병이 더 무섭고 힘든 거라고 한다. 내가 아무 얘기 안 했는데 어떻게 마음의 병이라고 생각한 거지?

아직도 나는 내가 무슨 병명으로 이렇게 온몸이 아프고 힘들고, 매일 마을길을 배회하는지 모른다.

적벽산장 보이는 곳 까지 와서 길옆의 네모진 돌 위에 주저앉았다. 휴대폰 시간을 보니 집에서 출발한지 25분 쯤 밖엔 지나지 않았다. 진눈깨비를 맞으며 앞산, 뒷산, 옆산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며 앉아있는 내 시야에 배추밭에서 일하고 있는 양대표의 모습이 들어왔다.

일어났다. 다가갔다.

누구에게라도 말을 건네고 싶었다. 그리고 같이 무언가를 했으면 싶었다.

쳐놓은 배추를 저기 온실 쪽으로 가져가야 할 것 같았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네. 그가 나의 눈을 마주 보며 대답했다.

발을 밭으로 들여놓는 순간 그가 막 팔을 내저었다.

아니요. 아니요. 안 도와 줘도 돼요.

나는 다시 발을 도로로 뺐다.

그리고 발길을 돌려 위로 향했다. 포장길이 끝나고 비포장 길이었다. 무슨 공사를 하는지 아니면 숲에서 나무를 베어서 내가는지 쓰러진 나무 사이사이를 걸어 발이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가 되돌아서서 내려왔다.

내려오는데 나를 지켜보았는지 양대표가 물었다.

왜 거기까지 올라갔어요? 길도 없는데?

아, 제가 많이 아파서요.

뜬금없는 대답을 듣고 그는 다시 일을 시작한다.

우리집 정원까지 허청허청 내려온 나는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않고 우두커니 섰다가 빗자루를 찾아들고 잔디밭에 내린 가랑잎을 쓸었다.

쓸고 또 쓸고 매일매일 잔디밭의 가랑잎을 쓸었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가 없는, 내 마음을 달래주고 안정시킬 그 무엇도 없었다.


남편의 수술 일자를 이틀 앞두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호주에 있는 아들에게 엄마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아빠 수술과 수술 후 가 감당이 안 될 것 같으니 보름이라도 서울로 와 있어 달라고 했더니 덜컥 놀란 아들이 티켓을 끊고 날아왔다. 같이 살고 있는 예비 며느리와 함께.

남편의 수술은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성공리에 잘 되었다고 하고 겉으론 회복도 빨라 보였다.

반대로 나의 병세는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여전히 응급실을 찾았고, 한강변을 배회했고 저녁밥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출입문 바깥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밤 야경을 바라보고 섰다가 들어와서 약들을 입에 털어 넣고 누워버리는 긴긴 겨울이 계속되었다.

항암, 배회, 낙엽, 한강변, 시골마을길, 적벽산장, 겨울하늘, 항우울제, 신경안정제, 간 절제술, 119, 응급실.

내 나이 51세, 2019년은 이렇게 지나갔다.

살면서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공포감, 의욕 상실, 초조함, 호흡곤란, 심하게는 자살 충동까지 한꺼번에 다 경험한 이해 마지막 날, 나는 과연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몸부림치며 갈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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