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말말은…
내가 새색시 적에 시부모님 모시고 살던 집은 평양의 대동강변에 있는 해운동의 어느 18층짜리 아파트였는데 우리 집은 15층에 있었다. 그 시절 며느리들이 다 그러했듯이 나도 새벽부터 식구들 아침밥 하고 상을 차려주고는 정작 본인은 한두 술 뜨다 말고 서둘러 출근 준비 하고 집 밖을 나서곤 했는데 정전으로 아파트 승강기가 가동이 안 될 때가 부지기수여서 그럴 때마다 15층에서부터 계단을 겅중겅중 뛰어 내려와 아파트 출입구를 분주히 통과해서 직장으로 잰걸음을 놓곤 했다.
이렇게 아침에는 수월이 통과했던 출입구를 저녁퇴근시간에는 통과하기가 몹시 곤욕스러울 때가 많았다. 사람이 통과할 자리를 가운데 내어 놓고 같은 동 아파트 여인네들이 줄느런히 앉아 잡담을 하다가는 출입구를 들고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누구 엄마 지금 오냐는 둥, 그 집의 누구 아빠는 좀 전에 올라가더라는 둥, 며칠째 안보이더니 오늘은 퇴근을 빨리 한다는 둥, 어제 그 집에 들어오는 김장배추가 참 좋더라는 둥, 시동생네랑 같이 있어서 맏며느리가 고생이 많겠다는 둥, 내가 억지로 얼굴에 미소를 조금 띠고 머리를 굽석굽석하며 승강기 앞에 이르러 정전이라는 푯말을 보고 1층에서 2층, 3층으로 올라가는 중에도 나와 우리 집 근황에 대한 여인들의 수다가 계속 내 귀에 들려왔었다. 실로 아파트 출입구를 바라보며 도로 저쪽에서부터 걸어 들어오다가 뭉텅이로 앉아있는 이 여인들이 보이면 다시 되돌아서서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을 정도로 그 앞을 통과하기가 싫었었다.
이 여인들의 이 출입구 모임은 아파트 주민들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모든 문제들의 소통의 장이었고, 그래서 어제저녁에 있은 자그마한 가족 간 다툼이나 갈등의 내막도 다음 날 저녁이면 이출입구 여인들의 입을 통하여 더 크게 크게 부풀려져 날개 돋친 듯 18개 층 사이사이로 퍼져 나가곤 했다. 서른도 안 된 새색시였던 나는 그때 모여 앉아 하나마나한 이야기로 무료한 시간을 때우는 이 나이 지숙한 여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심지어는 진저리 치게 싫어했었다. 왜 각자 집에서 가사 일을 하든가, 할 일이 없으면 누워서 잠이라도 자든가 하지 않고 뭉텅이로 모여 앉아 퇴근하는 사람들 불편하게 할까 하고.
지금의 내 나이가 얼추 그때 그 여인들의 나이가 된 듯싶다. 서울서 지내다 시골집이 걱정되어 달포 만에 내려갔는데 아니다 다를까 정원의 잔디밭에 풀이 무성하게 돋았고, 테라스 위도 노란 송홧가루로 범벅이고, 집 둘레에도 잡풀이 승벽내기로 자라, 하천 쪽 등성이는 조금만 더 늦게 내려왔더라면 우묵장성이 될 뻔했다. 뜰에 도착하자 바람에 정원의 풀부터 뽑기 시작했다. 대낮에는 맹렬한 태양의 열기에 밖에 얼씬도 못하고 아침저녁으로만 여러 날 여기저기 눈에 보이는 대로 잡초를 제거하고, 늘어진 나뭇가지들을 잘라주며, 정신없이 돌아갔다. 어느 날 저녁엔 어스름이 내려 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집둘레 하천 쪽 등성이의 내 키만큼 자란 풀들을 잡아 뽑다가 아이구, 나 죽는다, 혼잣말을 내뱉으며 등성이 아래에서 벌벌 기어 올라온 적도 있었다.
잡초와의 대결은 끝이 없어서 어중간하다고 생각된 후에는 그만두고 집안에서만 하루를 보내다나니 심심해서 가끔씩 친근한 한둘의 동네 여인들과 내 집 네 집에서 어울리곤 했는데 정작 마주 앉으면 이 말에서 저 말로, 집안일에서 자식들 이야기로, 아침에 뭐 해 먹었는데 저녁은 뭐 해먹을 건지로, 텃밭농사에서 밭농사 이야기로, 건강보조식품 얘기에서 읍의 신통한 어떤 의원 이야기로, 어제 했던 말 오늘 또 하는 식으로 하나마나한 이야기의 끝은 없었다. 그러다 어느 여인의 이야기에 모두 폭소를 터뜨리며 배를 그러쥐고 웃다가 그만 지쳐서 길고 긴 수다가 그나마 중단되었다. 치매가 심한 그 여인의 일갓집 여자노인네가 어르신유치원에 다니는데 그 며느리가 아침마다 채비시켜서 매일 모셔가고 모셔오곤 한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식사자리에서 그 어르신이 아들며느리에게 뜬금없이 “내가 언제꺼정 이렇게 일다니며 너들 밥 벌어 멕이냐.”라고 정색해 말하더란다. 아침마다 채비하고 유치원 가는 것을 일하러 나가는 줄로 착각했던가보다. 그 바람에 아들며느리가 웃음을 참으며 아무리 설명을 해도 노인네가 막무가내로 우기셔서 그렇다고 받아주었단다. 눈물이 찔끔 나도록 웃고 나니 서로 마주 보며 우리네의 앞날을 생각하게 하는 슬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돌이켜보건대 새색시 적에 그렇게 싫어하던 그 출입구 앞 뭉텅이여인들의 수다를 내가 지금 그 나이대가 되어 마을 여인들과 웃고 떠들며 그것도 신이 나서 지루한 줄 모르고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주 앉아서 하는 수다뿐이 아니 것 같다. 요즈음에는 몇 안 되는 친근한 벗들과 통화만 시작했다 하면 어떤 때에는 한 시간도 넘도록 수다를 떨 때가 허다하다. 그 수다 속에는 남편이나 자식들에게도 말 못 할 나이 들어가는 여인들끼리의 속사정이나, 건강상의 문제와, 그리고 여인으로 앞으로 살아갈 서로의 지혜들과 다독임이 들어있다. 또 그 서로의 말함과 경청함이 날로 우울해져 가는 심경들에 잠시나마 젊은 생기를 불어넣어 주고, 한바탕 크게 웃게 만들어, 며칠에 한 번은 작정하고 수다를 시도하곤 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가는 여인들의 수다는 누구도 못 말리는 것이며,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늘 밤에는 누구랑 수다를 떨까 궁리한다.
2024년 6월 21일 무더운 여름밤에 신관복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