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에서
집 앞에 바로 한강공원이 있고 한강공원으로 가는 산책길 옆에 구립도서관이 있다. 나는 하루 두 번 외출한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그리고 하루 한번 염창산에 오른다. 오전 오후 두세 시간씩 구립도서관에 머물고, 마음 가는 시간에 염창산 산책길을 따라 전망대에 오른다. 산 높이가 50m 남짓한 이 야트막한 산은 조선시대 때 소금창고가 있던 데로부터 유래되어 이름 붙여졌다고 하는데 여러 갈래의 산책길을 따라 산 정상에 오르면 한강의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어 근처 주민들이 사랑하는 도심 속의 휴식장소이다. 전망대에 올라 강물의 흐름에 따라 양안으로 뻗은, 이쪽으로는 올림픽대로 위로, 강 건너 저쪽으로는 강변북로 위로 줄지어 달리는 온갖 차들과, 푸른 하늘 담고 출렁이는 넓은 강 건너 선착장의 유람선과 유람보트들, 난지도 꼭대기에 설치된 거대한 풍차들, 그리고 월드컵대교 뒤로 멀리 보이는 아파트 숲과 남산타워를 언제까지고 바라보며 서 있곤 한다.
요즘에는 무슨 멍이 유행이라 했던가, 이것이 한강멍인가. 멍하니 서서 단순하게 셈 해보니 서울에 와서 이 동네에 산지가 18년이 되었다. 나와 남편이 주구장창 집과 직장을 오고 가며 밥벌이에 몰두하는 그 18년의 세월 동안 아들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쳐 한 아이의 아빠로, 한 가족의 가장으로 되어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한가해지고 조용해져서 소스라쳐 주위를 살펴보니 나는 혼자 염창산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도 밥은 계속 벌어먹어야 할 나이이지만 그래도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소설이나 뒤적거리고, 글이나 끄적거리며 보내는 요즘의 이 여유는 이미 꽁꽁 동여매서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놓은 아픈 혈육의 감정만 자꾸만 끄집어내니 한가한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듯싶다.
근처에 분가해서 살고 있는 아들네 말고 나는 현실적으로 철저히 이 땅에서는 혼자이지만 나도 어엿한 4남매의 둘째이다. 이 땅에 와서 울지 않으려고 혈육들을 가슴에 묻어두고 목석같이 살려고 애쓰다 보니 생각만 하면 샘솟던 눈물은 저절로 말라버렸고, 생각만 하면 칼로 가슴을 발기는 듯한 아픔이 점차 무디어졌다. 그리고 남편과 마주 앉아 아주 가끔 가족얘기를 할 때면 이 상황은 각자 본인들의 운명이라고, 평양의 형제들의 운명은 그들이 살아내야 할 운명이고, 서울의 우리의 이 삶 또한 우리가 살아내야 할 운명이라고 또릿또릿 말하곤 했다. 이 고집스러운 합리화로 약해지려는 마음을 추슬렀고 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목석으로 되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허구한 날 눈물바람 속에서 살 것 같았다. 그렇게 애써 잊으려고 했고 잊고서 산 내 혈육들이 지금 내가 혼자서 멍 때리고 있는 요즈음 사무치게 생각나고 한집에서 같이 자라던 그 시절의 장면들이 매일 밤 꿈속에서 두런두런 떠오른다. 참으로 이상하게 꿈속의 집은 옛날 시집가기 전 내가 자라온 친정집만 보이는데 그 친정집에 내 시부모와 동서 조카들도 같이 살고 있으니 이 무슨 가족구성인가 싶기도 하다.
남편은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시대에도 이런 이산의 아픔은 없었다고 말하곤 했다. 바야흐로 인류가 달로 날아오르고, 우주로 위성을 발사하고,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가 쏟아져 나온다고 하는 21세기 오늘날, 인간들에 의해 물리적으로 막혀 오갈 수 없는 이남의 남쪽 한강변에서 홀로 된 보잘것없는 자그마한 한 여인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보고 싶은 혈육의 생각에 눈물짓는 이 비극은 언제까지 이 반도에서 연출될 것인가. 아니, 이 비극의 삶들을 견디다, 감당하다, 그만 지쳐 저 너머로 가서도 산천을 떠도는 수천수만의 원혼들의 넋을 달래서 혈육들의 품에 안겨줄 날은 과연 언제쯤이 될 것인가. 북에서 무슨 사변이 일어날 때마다 남편과 내가 간절히 바랐던, 이제 10년 후면, 또 이제 10년 후면, 그 10년들이 몇 번이나 흘러야 이 강산은 북으로 길이 열릴 것인가. 아니 땅의 길이 열리지 않아도 좋으니 글의 길이라도 열리면 오죽 좋으랴. 글로라도 그동안 못해왔던 북받치는 마음의 말들을 전하고 싶은데, 아, 내 생전에 과연 그날은 올 수 있으려나. 식민지시절 천재작가 이상은 구인회의 동인지『시와 소설』 창간사에 이런 명언을 남겼다. “어느 시대에도 그 현대인은 절망한다. 절망이 기교를 낳고 기교 때문에 또 절망한다.” 20세기 광복 후부터 21세기 오늘까지 지속되어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현시대의 이 분단비극의 절망적인 절망은 우리가 옛사람으로 불리는 먼 훗날에 단 몇 줄의, 아니 몇 단락의 역사로 표기될 것인가.
오늘은 저 이북에 있는 내 오빠의 생일이다. 한강물아 흘러가서 전해다오, 건강하기만을 바란다고, 오라버니의 생일에 바치는 이 누이의 슬픈 마음을.
2024년 5월 30일 신관복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