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비가 뒤섞여 날리는 차창 밖으로 멀리 보이는 산야에는 음지마다 잔설이 쌓여 있고 산기슭에 옹기종기 들어앉은 적막한 마을들은 뿌연 대기 속에서 정오가 가까워지는 지금에야 조금씩 깨어나고 있는 듯했다. 시골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양력으로는 이번 달부터 봄이라고 하지만 절기상의 봄은 아직 멀리 있으리, 작년 여름, 8월 초에 서울로 올라온 이후로는 처음 가는 시골집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벌써 밭에 거름을 냈는지 차 안으로 특유의 시골냄새가 흘러들어온다. 치악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라면으로 간단히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다행히 날리던 눈비는 그쳤는데 찬바람이 몸속 속속들이 파고들어 으스스 몸을 떨며 다시 출발했다. 3월 2일 일요일이었다,
오늘 눈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를 보고 백사장이 어제 미리 일꾼들을 데리고 남편이 9년 전 심고 애지중지 가꾸던 나의 시골집 밭의 모든 과일나무며, 칠자화나무며, 꾸지뽕나무며를 모조리 베어 내가서 휑해진 밭을 ㄷ자로 돌아 천천히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어제 이사를 했다는 세입자가 아직도 자질구레한 짐들을 거실과 안방 가득히 펼쳐놓고 싱크대에 붙어서 느릿느릿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냉장고의 음식물들을 아직도 처치하지 못했는지 그 안에서 끄집어낸 것들에서 이상한 냄새를 풍기고 있어 집안은 아수라장이었다. 싱크대 아래쪽 문짝 2개가 물을 먹어서 부풀어나 있었고, 내가 침실로 쓰던 작은 방 벽지는 집안에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구워 먹었는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창턱마다 먼지와 벌레들이 쌓여있었고 방바닥에는 먼지가 뽀얘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일단 팔을 걷어붙이고 주방에 붙어서 가스레인지 주변과 싱크대를 활활 닦아내고 창턱의 먼지를 진공청소기를 돌려 빨아들이고 세입자더러 화장실을 부탁했다. 7개월 동안 남이 산 내 집의 냄새는 향긋한 나무냄새로부터 이상한 타인들의 냄새로 완전히 바뀌어져 있었다. 세입자는 딸을 데리고 내 집에서 저녁밥까지 해 먹고 느릿느릿 짐들을 챙겨가지고 밤 10시가 다 되어서 내 집에서 떠났다. 나는 짐을 차에 싣는 것도 거들어 주고, 일련의 도배비용과 약간의 싱크대문짝 교체비용을 요청하는 대로 수긍해 주며 어서 내 집에서 떠나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따뜻한 방바닥의 촉감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나는 마치 빼앗겼던 내 집을 다시 되찾은 듯한 쾌감을 잠시 느끼다가 이제 해야 할 집안일들을 생각하며 다시 세입자를 향한 분노와 남에게 집을 내어주었던 막심한 후회로 온몸을 전율하며 집안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고, 또 쓸고 닦고 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비가 섞인 무거운 눈이 밤새 내려 창을 열고 내다본 바깥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하고 정원의 소나무 우듬지들은 쌓인 눈의 무게를 감당하며 아래로 쳐져있었다. 서울 올라갈 길이 걱정되었다. 마당에 나와 아들과 나는 무거운 눈을 눈 가래로 치울 수가 없어서 눈삽으로 퍼서 잔디밭쪽으로 겨우겨우 밀어내고 그렇게도 못할 곳들에는 군데군데 눈 무지를 쌓아놓았다. 일요일이라 교회에서 기도모임을 마친 백사장이 부인과 함께 시골집으로 왔다. 어제 나무들을 베어낸 뒤쪽 밭과 앞쪽 테라스를 새 통나무로 바꾼 상황을 나에게 설명하였고 나는 그에게 원하는 금액을 송금하였다. 나는 백사장에게 집안의 도배를 비롯한 이러저러한 일들을 그에게 부탁하며 타인으로 인하여 손보지 않으면 안 될 이런 상황들에 대해 분노와 함께 쌓이고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어내는데, 백사장이 나를 향해 한 이 한마디가 문득 치밀어 오르는 모든 화를 스르르 내리게 하는 것이었다.
“ 사람이 죽는 일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신여사”
“… … ”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도로는 다행히 제설이 잘 되어 있었고 여주근방에서부터는 언제 눈비가 내렸나 싶게 도로는 말라 있었고, 산야에는 잔설이 보이지 않았다. 육십여 년을 온몸의 뼈와 살을 깎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가족을 부양해 온 백사장의 한마디가 뜻밖에도 나의 온 육체와 정신을 이리도 편하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와 함께 신비로움을 느끼며 어느새 차창 밖에서 들어오는 서울의 냄새를 맡고 있었다. 불빛이 아름답게 반짝이는 한강대교들과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롯데타워의 동화 속 같은 네온사인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서울바람에 얼굴을 부딪치며, 나는 그이가 마지막 날들을 보낼 때의 나의 암담했던 마음을 생각했고, 지금이나 앞으로 부닥칠 그 어떤 일도 그 나날처럼 힘겹고 슬프지는 않을 것이라는 뜻밖의 진리를 생각했다.
그이와 내가 시골집으로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근 10년 가까이 한 기둥, 한 기둥 완성되어 상판이 한 개 두 개 연결될 때마다 환호를 올리며 바라보곤 하던 월드컵대교의 아름다운 곡선 위로 차들이 나는 듯이 미끄러져 달리고 있었다.
집이 가까워지고 있었고 나는 오늘 밤 편안히 숙면할 것이다. 그리고 새벽녘에 나는 그이와 함께 지내던 행복의 집을 꿈꿀 것이다.
2025년 3월 23일 일요일 신관복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