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의 정원

멋진 계절

by 신관복

정원의 가장자리에 서있는 젊은 느티나무에서 떨어진 누런 낙엽들이 나무 밑을 중심으로 잔디밭 여기저기 바람 따라 흩날리고 있다. 해마다 이른 봄철마다 둥글고 아담한 나무체형을 만든다고 잔가지들을 가차 없이 잘라주었는데 올봄에는 가지치기를 못해주어서 그런지 기다란 가지들이 제멋대로 뻗쳐 있고 낙엽의 양도 많아진 것 같다.


두 달 전에 깎은 잔디도 마지막 힘을 다해 푸르고 부드러운 가을의 정원을 지켜내고 있다. 푹신한 잔디 위를 자꾸만 왔다 갔다 하며 이 잔디를 기어이 깎아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다 목수국 앞에 멈춰 가을색을 입어가고 있는 커다란 꽃송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섰다. 이 아이도 올봄에 가지치기를 못해주어 그 아담했던 체형이 어른남자 키를 훨씬 넘어서 억세게 뻗은 가지 끝마다 아기 머리만큼 큰 소담한 꽃송이를 꼿꼿이 매달고 가을의 색으로 변하고 있는 중이다. 가지치기를 한다면 어느 곳까지 둥글게 잘라내야 하는지 손으로 어리 짐작하다 무수한 가지의 숫자에 헉 소리를 내며 두어 걸음 물러섰다. 멋스럽게 변색되고 있는 꽃송이들은 초겨울까지 관망하며 지켜 주리라.


흰색 suv차량이 주저 없이 곧장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사람을 바라보니 장소장님이다. 웃으며 인사한다. 차를 바꾸셨네요, 하며 마주 인사하니 여름에 갑자기 가스통이 고장 나 버려서 어쩔 수없이 중고차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정원을 변모시킬 각종 장비가 차량 뒤쪽에 가득 실려 있다. 내가 시골서 3년 동안 다녔던 회사의 건물관리를 맡고 있던 장소장님께 정원의 일을 가끔씩 부탁드리곤 한다. 긴 연휴의 날을 틈타서 오늘은 뒤쪽 두 개의 밭도 정리해 주기로 했다.


제일 위쪽 밭에는 하얀 구절초가 지천으로 한창인데 초봄에 잘라낸 꾸지뽕나무의 그루터기마다 새싹이 나와 억세게 가지를 사방으로 치켜들고 있어서 이것부터 잘라내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새로 나온 가지들에는 정말 무서운 가시들이 촘촘히 있어 손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닌 것 같았다. 튼튼한 무릎보호대와 고무앞치마를 착용하고 벌레막이용 모자를 쓴 장소장님이 톱날 달린 제초기로 이 가시나무가지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다. 다음엔 널브러져 있는 나뭇가지들을 세발 쇠스랑과 괭이로 군데군데 모아서 한 무더기씩 끌어다 가장자리에 쌓아놓으니 밭에는 불청객을 몰아낸 승리자인 듯 하얀 구절초들만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춤추고 있는 듯하다.


어제까지 흐린 하늘에 비가 오락가락했는데 정원을 손질하는 오늘은 하늘도 날씨를 부조하는지 흰 구름 사이로 파~아란 하늘이 조각조각 드러나 있다. 기어이 잔디를 깎기로 하고 예쁜 하늘과 시원하게 뻗어 내린 산줄기를 배경으로 정원의 가녘부터 처음엔 네모지게, 점점 둥그렇게 잔디를 깎아나가는 소장님의 모습을 이쪽에서, 저쪽에서 바라보다가 문득 “가을의 정원“이라는 문구가 생각나 휴대폰을 찾아들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연방 사진으로 남겼다.



우리 집 정원에 앞뒤로 즐비한 철쭉들도 작은 정원용 기계톱을 이리저리 굴리는 소장님 손에 말끔하게 이발한 듯 어떤 곳은 네모지게, 어떤 곳은 둥글게 정리되고, 이번엔 세찬 바람이 나오는 송풍기로 깎아낸 잔디 부스러기와 철쭉가지들을 정원가녘 쪽으로 불어 내가는 소장님 곁으로 참지 못하고 다가가 방금 찍은 사진을 내보이며 외쳤다. 가을의 정원에서 잔디 깎는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냐며, 빙그레 웃고는 하던 일을 계속한다.


떠나는 소장님의 차를 뒤에서 배웅하며 하얀 구절초 밭까지 올라갔다, 정원의 잔디마당으로 내려와 이리저리 스적스적 걸어보다, 정원의자에 앉아 목수국의 커다란 꽃송이를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정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둥글게 돌기도 하면서 오래도록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렸다.


초저녁 긴 연휴의 무료함을 어떻게 달래고 있는지 전화를 해온 나의 각별한 지인과 수다를 떨다가, 문득 얼굴을 마주하고 오늘의 가을정원과 그 아름다움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부랴부랴 움직여 김삿갓계곡의 한적한 식당에서 지인부부와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글쓰기를 좋아하고 또 많은 산문과 수필의 저자인 지인의 부군과 작품의 첫 문장의 중요함에 대한 이야기에서 오늘 우리 집 가을정원 이야기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이야기 끝자락에 나는 난생처음으로 세상에 출품한 나의 산문 “그리운 사람”이 호평을 받았다는 가슴 뛰는 이야기도 들었다.


가을정원의 청량한 밤공기가 달아오른 나의 얼굴을 식혀주고 뛰놀던 가슴을 진정시켜 준다. 이번 추석에 아들과 함께 찾은 연천의 그이의 소나무 앞에 앉아 이 산문을 천천히 읽어주었다. 흐린 밤하늘에 구름만 가득하다. 정원의 의자에 앉아 별도 달도 없는 캄캄한 밤하늘에 말을 건넨다.


“여보, 올 가을은 멋지게 보낼 것 같아.”


2025년 10월 9일 긴 추석연휴의 끝에 신관복 쓰다.


더 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이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기를!

KakaoTalk_20251011_115724825_06.jpg 예쁜 하늘을 배경으로 장소장님이 가을정원의 잔디를 깎고 있다.
KakaoTalk_20251011_115724825_05.jpg 정원 앞 철쭉도 멋지게 이발을 하였다.
KakaoTalk_20251011_115724825_04.jpg 하얗던 목수국꽃이 가을의 색으로 멋스럽게 변색되고 있다.
KakaoTalk_20251011_115724825_02.jpg 정원이 이렇게 가을스러워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작은 새의 저녁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