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위하여

입동이 지나고 소설도 지난 11월의 말에

by 신관복

찬바람이 낙엽을 몰고 다니며 우우 소리를 지른다. 소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고 이제는 완전히 꽃송이들이 거무튀튀한 갈색으로 변한 목수국의 모든 가지들이 몸부림치듯 이리저리 떨고 있다.

장하도록 빨갛게 단풍이 들었던 철쭉 잎들도 거의 낙엽이 지고 정원의 잔디밭은 완전히 누렇게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그가 이 무렵에 해왔던 일들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또 어떻게 할지를 궁리해 보았다. 일단 3일 후부터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일기예보가 있으니 야외에서 정원용수와 밭 용수로 사용하는 수도들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잠깐, 밖의 수도를 완전히 잠그기 전에 하우스에 심긴 꽃들과 포도나무에 물을 흠뻑 주는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다음 그 수도꼭지들에 꽂혀서 여러 갈래로 뻗어있는 긴 고무 호수들을 걷어서 보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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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일의 방향을 잡고 수도꼭지의 호수와의 연결부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나서 펜치와 또 뾰족하게 생긴 또 다른 펜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보일러실 겸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훅 끼쳐 나오는 그 안의 공기에서 그의 냄새를 진하게 맡아버렸다. 그가 그 안에 있는 거 같아 눈을 크게 뜨고 깊은 호흡을 했다. 눈시울이 확 뜨거워지고 흑 한번 흐느낌이 절로 나왔다.

안돼

저절로 말을 뱉어버리고 필요한 공구를 가지고 수도가로 다시 와서 열심히 고무호스에 뱅뱅 돌려 붙은 쇠줄을 풀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저렇게 그의 흉내를 내며 목적했던 긴 고무호스들을 다 거두어서 그가 하던 대로 둥그렇게 말고 말아서 끈으로까지 묶어 창고에 낑낑 넣으며


알룩이는 못 하는 게 없네


이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부른 보일러 기름 용달차가 마당에 들어오고 있었다. 겨울이 오기 전 그득히 보일러에 기름을 채워 넣는 것도 월동준비였으니까.

기름차 아저씨가 둥둥거리며 주유 준비를 하고 나는 그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눈여겨보았다.


집의 아저씨는 출타하셨어요?


매번 올 때마다 그와 대화를 나누군 했기에 느닷없이 묻는 말에 나는 기름차 아저씨의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며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기름차가 씽 하고 떠나고 나는 괜히 정원의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하며 나의 할 일을 찾아내려고 종종거렸다.

힐끗 쳐다본 서쪽하늘에 눈부신 해는 내 손가락으로 한 뼘 정도 밖엔 남겨놓고 있지 않다. 평일에 해뜨기 전 출근해서 해가 진 다음 돌아오는 나는 주말 오후마다 해넘이를 항상 아쉬워했다. 해만 꼴깍 서산으로 넘어가 버리면 나의 집과 정원, 그리고 주위는 순식간에 빛을 잃고 고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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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마음에 소나무 길로, 잔디밭으로 왔다 갔다 반복하다가 아, 봄에 마당에 옮겨 심은 수국에 생각이 미쳐 여기저기 널려있는 낙엽을 쓸어 모아 잔뜩 덮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낙엽을 덮어주는 것만으로는 매서운 이 고장의 겨울 추위에 꽃망울들이 보존될지 걱정스러워 자그마한 비닐온실을 만들어 덮어주고 싶지만 나의 재간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지.

백 씨 아저씨에게 부탁해야 하나, 꼭 만들어 씌어 이 애들이 무사히 올 겨울을 보내고 내년 여름에 또다시 색색이 예쁜 꽃을 피우게 할 거라고 두 손을 꼭 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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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한적한 이 시골마을에 한집 두 집 총총히 불이 켜지고 도시와 달리 구름 없는 밤하늘에 별들이 보석을 뿌린 듯이 반짝반짝하다.

유난히 밝고 큰 별 두 개를 바라보며 3년 전 여름 그와 내가 안젤라 고모 부부와 함께 정선의 어느 리조트에 머무르며 천체 망원경으로 보았던 목성과 토성이라고 단정하며 크게 머리를 젖히고 허공을 응시하며 꼼짝없이 서서 두 별 사이의 거리를 어리 짐작해본다. 내가 보기에도 두 별 사이 거리는 어마어마하게 멀어 보이는데 실제로는 얼마나 될까? 무한할 것 같았다.

갑자기 박경리 선생의 유고시의 한 대목이 생각났는데 어떤 답을 찾지 못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난감한 생각에 빠질 때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구절이다


세상에는 결론이 없다

우주 그 어디에서도 결론은 없다

결론은 삼라만상의 끝을 의미하고

만물은 상극의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


믿는다, 선생의 글귀를. 겨울이 있으면 여름이 있고 봄이 있으면 가을이 있듯이 세상 모든 것은 존재의 이유가 있어서 생겨나고 흘러가고 다가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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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두 별 사이 거리는 왜 가늠해 본 건지? 무한한 우주에 견주어 너무도 보잘것없는 인간인 내가 잠시라도 살아가는 삶의 무게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볍게 여기고 싶었을까.

아직 겨울의 문턱도 넘어서지 못했는데 가을의 끝자락에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새봄이 빨리 왔으면 한다. 그런데 정원에 넘칠 듯이 화려하게 꽃이 피는 그 새봄은 왠지 많이 슬플 것 같다.

저기 뒤쪽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춥다, 따뜻한 데 들어와.


그가 있는 북쪽 동네 연천으로 갈 날, 그의 생일 소한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의 소나무는 겨울에도 푸르르겠지.


2022년 11월 30일 신관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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