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들

어느 날 홀연히 먼 길을 떠나다.

by 신관복

오늘도 여전히 싱그러운 밤공기를 흠뻑 마시며 마을길을 걸어 내 집으로 돌아온다.

열쇠를 돌려 출입문을 열고 신을 벗고 중문을 드르르 밀면서

여보 나왔어.

어, 알룩이 수고했어, 어서 와.

오늘은 어땠어? 많이 아팠어?

음 괜찮았어.

나는 가방을 놓고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며 묻고 답한다. 내 목소리는 나처럼, 남편의 대화는 좀 굵은 목소리로...

내가 앉는 식탁의 맞은편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지 않다. 그가 떠난 후 우리 집에 온지 15년 된 곰돌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체 그는 어디로 떠났을까?

그의 손길이 구석구석 어느 하나에도 미치지 않은 곳이 없어서 정갈하고 아늑하고 쾌적한 내 집 곳곳에 그의 모습이 남아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뭣에 쓰는 물건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들여다보지도 않았던 물건 하나하나 그가 떠난 뒤 어디에 놓여있는지, 무슨 용도에 쓰이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1층 거실에 높이 걸려있는 시계가 조금씩 조금씩 느려지더니 어느 날 갑자기 10분씩이나 떠져 있는 것을 안 순간 아침 출근시간 분초를 다투며 채비하는 나의 머릿속에 두려움부터 확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간단하게 건전지를 교체하면 될 일인데 사다리를 들여와야 하나, 저 높은 곳에 있는 시계를 내가 꽤 내릴 수 있을가. 탁자위에 의자를 놓고 또 그 위에 무엇을 놓고도 까치발을 하고 손을 뻗쳐야 닿을텐데, 그리고 올라갔다가 뒤뚱뒤뚱 떨어지면 어쩌지?

그가 떠난 후 그가 쉽게 해왔던 사소한 집안의 모든 일이 내 손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문득문득 나를 지배하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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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갈 길이 그리도 급했어?

당신이 해오던 이런 자잘한 일 조금씩이나마 가르쳐 주고 떠나지.

그가 떠나면서 나에게 그와 내가 살던 이 집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일언반구도 안하고 간 것 같지만 내 생각에는 적어도 작년 9월부터 천천히 떠날 준비를 해왔다고 생각된다.

우리 두 사람은 암묵적으로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일상생활을 해 나갔지만 언젠가는 우리에게 들이닥칠 폭풍우를 기다리며 사는 심정이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집안 여기저기에서 나의 밝고 큰 목소리가 울리게 하였고 그도 짐짓 썰렁한 개그를 하며 살 빠진 얼굴에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지냈다.

올 4월이 시작되면서 그는 간간히 몸의 불편함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 때 마다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그를 안고 등을 쓸어 주군 했다.

그도 나도 생각하던 그 일이 드디어 오고 있다고 전율을 느꼈지만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4월 보름째 되는 날 우리는 세브란스 응급실로 가자는 결단을 내리고 서울로 향했다. 그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 둘이 꺼내지 못했던 말을 주치의의 입을 통해서 들었으나 둘 다 설마 하며 애써 아닐 거라고 장담하려 했지만 나를 향한 그의 목소리가 생전 처음으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3년 동안 매달, 아니 보름에 한번 마주한 주치의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느니 그래도 첫 항암치료제가 그중 말을 잘 들었으니 그것으로 전신항암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무조건 다 하겠다고 했고 나는 말렸다.

그 어떤 만류도 삶의 의지를 가다듬는 그의 용기를 꺾지 못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그는 아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그 때부터 열흘 동안 나와 그, 그리고 우리들의 아들이 또 서로 묵묵히 일상생활을 이어나갔다.

난생처음 내가 괭이로 흙을 고르고 계분마대를 질질 끌며 뿌려놓고 해서 제법 만들어 놓은 밭고랑을 보면서 슈퍼우먼 납셨네 하며 일그러진 웃음을 띠우던 그가 진통제의 힘을 빌어 통증이 몇 시간 사라지면 그 틈에 밭에 나가 무언가를 하군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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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정원 앞에 즐비하게 서있는 철쭉이 금방 터질듯 한 꽃망울을 달고 있고 또 집 뒤 켠 밭 양지쪽 바위짬들에 우르르 여기저기 몰려있는 진한 핑크 철쭉은 활짝 피어 집 둘레 어디를 보나 화창하고 생생한 5월이 시작되고 있었다.

활짝 핀 철쭉을 배경으로 키 낮은 간이의자에 앉아 사과나무 밑 담쑥담쑥 돋아난 풀을 매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여기서 시간이 멈추어 영원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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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또 5일이 지난 어린이 날 아침 우리 세 식구는 겨우내 2층 끝 방에서 꽃망울 보전하고 벌써 잎이 파랗게 돋은 나의 수국 다섯 개 화분을 정원의 제일 좋은 자리에 정성스레 심었다.

그리고 수국이 소담하게 핀 여름을 상상하며 그 애들이 드디어 땅에 뿌리를 옮겼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리 셋은 시골집을 뒤로 하고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이틀 뒤 그는 홀연히 먼 길을 홀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가 그렇게 멀리까진 가지 않았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냥 나와 아들, 며느리에게 그 성미대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고 불편해지는 일상생활을 우리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감당하고 싶어서, 중요하게는 나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훌훌 털고 조금 먼 길을 떠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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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하던 5월도 가고 여름이 접어들어 그가 6년 전 심은 푸르싱싱한 소나무에 빙 둘러싸인 시골집이 갈수록 짙은 녹음 속에 묻히고 우리들이 옮겨 심은 수국이 소담하게 색색이 예쁜 꽃을 피우고, 긴 장마 끝에 서서히 가을이 와서 산들산들 최적의 날씨를 보이더니 내 집 정원에 그렇게 도 많은 철쭉이 예년에 없이 빨갛게 단풍이 들어서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감탄을 연발하며 그가 가있을 저기 북쪽의 하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서성이 군 한다.

여보 그 곳은 어때? 몸성히 잘 있는 거지?

벌써 10월의 마지막 밤이다.


2022년 10월 31일

그를 기다리며 신관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