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지망하는 청년들에게 이 말을 해줘요. 꿈에 목숨까지 걸지는 않았으면 한다고….”
2022년 9월 영화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강 감독은 저작권료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황동혁(‘오징어게임’), 김한민(‘한산’) 등 국내 영화감독 200여 명과 함께 국회를 찾았는데,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가 전해준 은막(銀幕) 뒤의 세계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게 제작사와 계약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혹시 한국 영화감독들이 평생 몇 편 정도 찍는다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10편 정도는 넘지 않을까요?”
“제작사, 투자자가 갖춰진 상업 영화의 경우 평균 5편 이하에요. 30~40대 감독은 평균 3편이 안 되고요. 한 편 찍을 기회가 절실한 감독들이 저작권료와 특약 등 제대로 된 보상을 요구하며 계약을 맺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평생’ 5편 이하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내 표정을 본 그는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하는데 보통 2~3년, 더 긴 경우도 많다”라며 “그런데 투자자를 못 찾거나, 투자자를 찾아도 중간에 영화가 엎어지면 그 시간이 다 날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강 감독 자신도 30대 초반 첫 상업영화가 중간에 무산된 뒤, ‘범죄도시’를 찍을 때까지 17년 동안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30대 때는 그나마 견딜 수 있었는데, 나이가 점점 들면서 정말 힘들고 서러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죽하면 영화를 꿈꾸는 청년들에게 목숨까지 걸지는 말라고 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100조 ①항은 특약을 맺지 않는 한 제작사가 저작권을 갖도록 하고 있다. 투자 계약 시에 감독이 저작권은 안 넘기거나,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특약을 넣으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그건 초특급 유명 감독이나 할 수 있는 일. 한 편 만들기 위해 필사적인, 을 중의 을인 무명 감독에게 ‘특약’이란 언감생심이다. 그래서 대부분 감독, 작가 등 창작자들은 계약금만 받을 뿐, 작품이 히트해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을 거의 받지 못한다. 계약금조차 원하는 대로 부를 수는 없다. 한정된 제작비에서 감독, 작가 등 창작자들이 자기 계약금을 올릴 경우, 다른 곳에 쓸 돈이 줄기 때문이다. 천신만고 끝에 작품을 만들 기회를 잡은 감독들로서는 자기 계약금을 올려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는 자해행위를 할 수가 없다.
강 감독 등 유명 감독들이 국회를 찾아 저작권료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열악한 처지에서 인생을 갈아 넣는 후배들을 위해서 이런 무지막지한 현실을 조금이라도 개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창작자들이 제작사에 저작권을 양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추후 TV 재방영, 넷플릭스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유튜브 판매 등으로 생기는 부가적인 수익에 대해서는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저작권법에 넣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로 인한 수익을 적립해 세계의 저작권 관리단체들이 창작자들의 생활 및 의료 지원금. 복지 등에 사용하는 것처럼 활용하자는 것이다.
물론 제작사로서는 당장은 수익이 줄 테니 달갑지 않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창작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것이 자신들에게도 더 이득이다. 창작자들이 생계 걱정을 하지 않고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다면, 더 좋은 작품이 더 많이 나올 테고, 자신들의 수익도 커질 테니 말이다. 물고기(창작자)가 사라지면 어부(제작사)는 살 수 있나? ‘오징어게임’, ‘킹덤’, ‘폭삭 속았수다’ 같은 작품이 속출하면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볼까.
황동혁 감독 등 유명 감독들이 국회를 찾은 그날, 그 자리에는 국회의원들도 함께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영화계를 위해 정당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하며 기념 촬영을 했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현실은 거기까지였다. 늘 그렇듯 그들은 일을 하지 않았고, 이 글을 쓰는 2025년 5월 현재까지 관련법은 속된 표현으로 ‘1’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유명 감독과 작가, 배우 등을 제외한 대부분 예술계 종사자는 열악한 처지에서 자기 피를 갈아 작품을 쓰고, 만들고, 연기를 하고 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온다. 수없이 이어지는 작은 이름들. 작품을 땀이 아닌 피로 만들면, 명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검은 배경 뒤의 그 이름들이 왠지 신문 부고란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