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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때만 할 수 있는 일

키 크기

by 친절한 곰님

기말고사를 앞두고 딸은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공부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는데 그렇다.

중간고사 때 점수가 기준이 된 것인지, 아마 그것보다는 잘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딸, 공부는 고2 때 가서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어. 네가 지금 해야 할 중요한 일은 키가 크는 거야."


우리 집은 남편도 나도 큰 키가 아니라 아이들이 공부는 못해도 키가 크기를 바란다. 한약은 못 사주고, 주사는 못 놔줘도, 배달음식은 자제하고 10시 전에는 불을 끄고 아이들과 같이 잠든다. 그런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듯하다. 평소 자존심이 세고, 경쟁에서 지는 걸 싫어하는 딸은 공부도 잘하고 싶은 모양이다. 엄마, 아빠가 공부는 못해도 되니 키 먼저 커야 한다고 말하는데도 들은 척 만 척 11시까지 공부하면 안 되냐는 말을 한다.


"안돼, 공부하고 싶으면, 낮에 핸드폰 보는 시간 아껴서 공부해. 10시 전에는 불 끌 거야."


딸은 방문을 닫고 공부한다. 닫힌 방문 사이로 딸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제 고작 중학교 1학년인데,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걸 보니 심난하다. 앞으로 고등학교 3학년까지 5년이 넘게 남았다. 지금은 공부할 때가 아니라 딸의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키가 클 때인데.


내 경험이 비추어보면 나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다 컸다. 지금의 키 159.8cm.

160cm인 사람과 아닌 사람은 이미지가 확 달라지는데, 딸은 키 크고 마른 여자 아이돌을 동경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런 키를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키 큰 사람은 청바지에 흰 반팔 티 하나만 입어도 옷 태가 나던데.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딸은 건성으로 듣고 있다.


나중에 후회하게 멋대로 하라고 할까?라고 내가 화가 나서 남편에게 말을 하면,

그건 부모가 할 소리가 아니라며,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일을 만들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며 남편은 조용히 딸을 타이른다.


나도 알고 남편도 아는 것을, 딸은 모르고 있다.


우리 집은 지금 키 크기 전쟁이다.

나는 지금 14살 딸에게 쭉쭉이를 해주고 있다.



1998년 출간된 류시화 시인의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내용도 좋지만, 유독 제목만이 인상 깊게 생각난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키 크는 데 집중하고, 후회 없이 놀았을 것이다.

중학교 때는 수업 시간에만 집중할 것이고

본격적인 공부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토라지는 친구에게 집착하지 않고

혼자서도 당당하게 학교 생활을 할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을 것이다.

경제에도 관심을 갖고 뉴스와 신문에 관심을 둘 것이다.


나 자신을 제일 소중하게 여기며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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