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길을 따라 믿고 가는 것
소설 쓰기는 한밤중에 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당신으로 오로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그런 방법으로 여행지까지 다다를 수 있다. (앤 라모트_쓰기의 감각 62쪽)
나는 작가도 아니고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다. 읽는 것이 좋아 읽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생각하는 문장들이 생겨나서 쓰기 시작했을 뿐이다. 한 때 미라클 모닝이 유행했을 때는 일어나자마자 연습장 한 페이지 가득 생각나는 대로 무언가를 1년간 적었던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때는 매일 쓰는 일이 습관이 되어서인지 글이든 아니든 망설임 없이 썼던 기억이 있다.
직장에서 부서가 바뀌고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쓰는 일을 멈췄고 읽는 일에 더 집중을 하고 있다. 가끔 무언가를 쓰고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아 빈 공간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에 이처럼 막막한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싶은 마음이다. 어떤 단어로 시작할지 어떤 내용으로 시작할지 막연할 따름이다. (감사하게도 이런 내 브런치를 구독하는 분들이 무려 11명이니,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무언가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럴 땐 책상 위 작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을 꺼낸다. 예전에 읽으면서 띠지를 붙여 놓았던 부분을 발췌독한다. 마음에 드는 부분을 읽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나는 쓰는 사람'이라고 최면을 건다.
나는 지금 가로등 불 빛만이 듬성듬성 있는 시골길을 자동차로 운전하고 있다. 눈치 없는 내비게이션은 상냥한 목소리로 열심히 안내를 한다. 운전대에 몸을 바짝 붙이고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곳에 시선을 집중한 채 운전을 한다. 과연 내가 원하는 장소가 나올까 하는 의심이 들지만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에 집중하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결국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목적지가 보이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쉰다.
작가는 소설을 쓰는 것이 이와 같다고 말한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보며 앞으로 꾸준히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소설의 끝에 와 있을 거라고.
나는 기꺼이 이 어둠 속에서의 막막함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지금도 짧은 글이지만 쓰긴 썼다.
*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