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면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며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화장실 조명 때문인지 얼굴에 생긴 기미며, 잔주름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오른손에는 양치를 하며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쓱- 쓸어 넘기는 순간 흰머리를 발견한다.
내 나이 마흔.
부리나케 양치를 마무리하고, 호들갑스럽게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부른다.
"아들, 엄마 흰머리 보여? 엄마도 이제 할머니 되기 시작하나 봐. 어떡하지?"
라며 울상을 짓는 내 모습을 보며 아들의 표정도 사뭇 진지하다. 엄마가 할머니가 되는 건 싫은 눈치다. 급기야 눈물을 글썽거리며 흰머리를 없애주겠다고 말한다. 평소 머리숱이 없어서 머리카락 한 올도 애지중지하는 나지만 아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기꺼이 내 머리카락 한 가닥을 희생한다.
아들은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얇은 흰머리 한 가닥을 잡는 그 어려운 일을 하느라 초집중 상태다. 미끄러운 손가락으로 흰머리는 자꾸 미끄러지고, 그 흰머리는 파마를 한 냥 꼬불거린다.
족집게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머리카락을 잡아야 잘 잡을 수 있다는 팁을 주니, 왜 이제야 말했냐며 집중력을 발휘해서 엄마가 할머니 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기 위해 애를 쓴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아들을 바라본다. 당황한 아들의 얼굴을 보니 손에는 흰머리카락이 아니라 검은 머리카락이 들려있다. 순간 나는 아들에게 한번 더 기회를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아이들에게 사소한 성공의 경험을 많이 겪게 해줘야 한다는 책의 내용이 생각난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아들에게 기회를 준다. 전보다 더 진지한 표정으로 나의 흰머리카락에 집중한다. 손에서 자꾸 땀이 나는지 무릎에 손바닥을 문지른다.
이번에는 전 과는 다른 따끔함과 시원한 느낌이 든다. 흰머리카락을 뽑으면 시원한 느낌이 든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들은 앞으로도 나의 흰 머리카락을 뽑아주겠다며 의기양양한다. 아들에게는 사소한 성공의 기회를 주었고 나는 마음 한편이 허전함을 느낀다.
앞으로도 불쑥불쑥 솟아올라올 흰머리카락을 생각한다. 두 살 차이 나는 남편은 2주에 한 번씩 염색 샴푸로 염색을 한다. 염색샴푸를 흰머리카락이 나는 구레나룻과 다른 부분에 바르고 시간을 벌기 위해 집안을 왔다 갔다 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다른 세상의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의 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지만 벌써 슬프다.
흰머리카락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 찾아본다. '유전적 요인', '과도한 스트레스', '나이 들어서'가 대표적이다. 나는 흰머리카락이 늦게 나는 유전을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특히 흰머리카락이 늦게 난다. 스트레스? 다행히도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나는 안정기이다. 스트레스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흰머리카락이 솟아날 정도의 스트레스는 아니다. 그러니 유전과 스트레스는 나와는 크게 상관이 없다. 마지막으로 '나이 들어서'.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진실이다. 나의 흰 머리카락은 내가 나이가 들었음을 알려준다.
나이가 들었음을 알려주는 신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찾아본다.
노화란 시간이 흐르면서 생명체의 변화가 축적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출생, 성장, 성숙이 모두 노화과정의 일부라고 적혀있다. 흔히 노화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건강이 나빠지는 늙어가는 현상으로만 간주하지만, 성장과 노화현상은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성장도 노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노화는 보편적으로 피할 수 없는 정상적인 삶의 과정이라고 한다. * 출처 : 삼성서울병원
이 말은 노화에 대한 나의 편견을 없애주었다. 나이가 들어 주름이 생기고, 눈이 잘 보이지 않고, 흰머리카라이 나면서 노화가 시작되는 줄 알았더니 출생, 성장, 성숙도 노화의 과정이라고 한다. 이 말이 나에게 조금은 위안이 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장함과 동시에 노화가 된다. 갑자기 나이 드는 것이 아니다.
흰 머리카락 한 가닥으로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