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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셨네요.

4춘기

by 친절한 곰님

중학교 입학 28일 전

오랜만에 발동한 여자의 직감이다. 딸의 사춘기 조짐이 느껴진 것이다.


일요일 저녁 치킨을 먹으며 네 식구가 모여 사소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한 달 전에 잡아놓은 여행 일정이 언제인지 물어보았다.


"다음 주 아니고, 그다음 주인 21일이야"


갑자기 딸이 22일에 서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시골동네에 살아서인지 서울에 대한 동경이 있는 딸은 서울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냥 서울을 가고 싶어서 하는 말인가 보다 하며 물었다.


"왜 그날 서울을 가야 하는데? 우리 21일에 태안 여행 갔다가 1박 하고 올 거야"


딸은 얼굴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퉁명스럽게 말을 한다.


"그날 이서 생일이라서 생일카페에 가야 하는데"


"무슨 카페? 생일 카페? 거기 가면 이서 만날 수 있는 거야? 사전 신청도 없이 그냥 가도 되는 곳이야?"


남편이 딸의 말투와 표정에 화가 났는지 따져 묻는다. 생일 카페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는 둥 정 가고 싶으면 우리는 여행을 갈 테니 혼자 서울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딸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동안 간직했던 아이 티도 같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아, 이제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생일이 중요한 나이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방에 들어간 딸은 침대에서 울다 잠들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이서 생일카페'를 검색한다. 소속사가 아닌 팬들이 자체적으로 카페를 대관하고 아이돌 사진으로 꾸며둔 장소를 말한다. 서로의 굿즈도 교환하고 공감대가 같은 팬들이 모여 덕질 관련 대화를 하는 곳이다. 1인 1 음료 구매는 기본이며 가격을 검색하니 생각보다 비싸지는 않다. 요즘 유행하는 트렌드 같았다. 이런 것들을 공부해야 알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하니 서글퍼진다.


내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 여러 명이 한 팀이 되어 데뷔했던 시초 그룹이 HOT나 젝스키스였던 것 같다. 그때 집에서 가요 프로그램을 볼 때면 어른들이 가수가 많다며 구분이 가지 않는다는 말을 했었는데 지금 내가 딱 그 모습이다. 다 비슷하게 생겼고 이름도 어려워서 외울 수가 없다. 그래도 예전에는 한글 이름을 사용했었는데 이제는 영어 이름에 국적도 다양해서 영어 단어 외우듯 공부를 해야 한다.


'나도 그때는 그랬지'


딸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생각 본다. 생일카페에 가서 인증샷도 찍고 시골에서는 구하기 힘든 포카도 사 오겠지. 초등학교 졸업식 전날 사용 허가한 인스타그램에 사진도 올리겠지. 친구들은 부럽다며 DM을 날리겠지 등등. 혼자 계획했던 일들이 갑자기 무산되면서 딸은 당황스럽고 속상했을 것이다.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을 돌봐야 했던 딸은 늘 남동생에게 까칠하게 대했다. 누나에게 '사춘기'라는 것이 오면 더 무서워질 거라는 농담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은 나에게 귓속말로 이야기했다.


"엄마, 누나 사춘기 왔어. 아까 엄청 무서웠거든"


나의 딸에게도 드디어 사춘기님이 오셨다. 언젠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WELCOME"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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