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서울 타령
딸은 왜 서울을 가고 싶어 하는 것인가
딸이 처음으로 친구와 서울을 가고 싶다고 말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다. 이미 친구들끼리만 서울을 가 본 적이 있는 친구라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사람 많고 차 많고 복잡한 곳을 초등학교 5학년 여자아이 둘이 간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싶었다. 아직도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지 않은가.
나는 대학교 때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 봤고 롯데월드도 처음 갔다. 물론 지금과 예전을 비교하면 안되지만.그때가 21살쯤인데 딸은 지금 12살이다. 평소 개방적인 남편도 초등학교 5학년 딸의 서울 여행은 반대했다. 다만 딸의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보호자가 동행하는 조건하에 서울행을 허락하기로 했다. 같은 시외버스를 타고 롯데월드 입구에서 아이들과 헤어진다. 나는 아이들이 롯데월드에서 놀 동안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오랜만에 수다를 나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 아이들과 정해진 장소에서 만나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같은 하늘 아래 있지만 2시간 거리에 있는 지방에 있는 것과 서울에 있는 것은 다른 일이다. 딸이 서울에 혼자 있으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했을 때를 염려하는 것이다. 핸드폰이나 지갑을 잃어버렸거나 다치는 상황 혹은 길을 잃었을 때 등이다. 핸드폰으로 원하는 곳은 나보다 더 빠르게 찾을 수 있지만 위기상황 대처능력은 아무래도 30년이나 오래 산 내가 나을 것이다.
딸이 또 다시 친구와 서울을 가고 싶다고 했다. 아마 초등학교 졸업 축하 용돈과 설 명절에 받은 세뱃돈으로 평소 사고 싶었지만 참았던 것들을 사러 갈 계획일 것이다. 1년 전 서울을 같이 갔던 친구와.
얼마 전 딸과 둘이서 일본 여행을 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니 나보다 사전 조사를 많이 해서 아는 것도 많았고 길도 잘 찾는 딸이 그 순간만큼은 어른스러웠던 생각이 났다. 이번에는 예비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 둘만의 서울 여행을 허락했다.
보조 배터리 챙기고, 이동할 때마다 카톡으로 장소 보내줘. 그리고 오후 5시 차를 타고 내려와야 하니 4시에는 터미널로 가기 시작해야 해. 고속 터미널은 엄청 복잡해. 호남선 방향 잘 따라가고. 버스 타기 전에는 꼭 화장실 가고. 안전벨트는 꼭 매고. 엄마가 세 번 전화했는데 전화 안 받으면 용돈 깎을 거야.
해주고 싶은 말은 많은데 남편이 옆에서 혀를 내두른다. 잔소리가 너무 심하다나. 그렇게 딸은 보호자 없이 엎어지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로 향한다.
'띵동, 띵동'
딸이 사용하는 용돈카드의 사용 내역이 신나게 알람을 보내온다.
‘점심으로는 햄버거를 먹었네’
‘앨범도 샀나 보다’
‘유명한 베이글 가게에 갔네’
알람음이 들릴 때마다 신난 딸의 얼굴이 생각난다. 이제 처음으로 친구와 둘이 서울을 갔으니 이런 일이 더 잦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서울 가는 일은 큰 마음먹고 가야 하는 일인데 딸은 마냥 설레나 보다.
딸이 점점 커갈수록 나의 손길이 필요 없을 것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책임져야 하는 일도 많다는 것을 알려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