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빨리 흐르기를
등교 13일째.
딸은 생일 이후 더 이상 울지 않고 학교에 간다. 아직 친한 친구를 사귀지는 못했지만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마냥 가기 싫던 학교에서 딸은 내가 시킨 일은 어떤 것은 하고, 어떤 것은 하지 않았다.
2명의 친구와 함께 물걸레 청소 당번이라기에 '물걸레 가지러 같이 가자'라고 말해보라고 했다. 딸은 어색하지만 용기 내서 말을 했고, 딸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를 조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는 했지만 같이 갔다고 한다.
그렇게 계속 청소시간이 되면 셋은 물걸레를 같이 가지러 갔고, 이제는 당연하면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책가방 안에 작은 간식을 가지고 다니면서 도움을 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주라고 했다. 가방 안에 아직도 간식이 그대로인걸 보면 이 건 하지 않았다.
딸은 스스로 판단하며 그렇게 반 아이들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다. 등교할 때의 마음이 첫날과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요즘 주 관심사는 방송반 동아리 지원이다. 1학년 학생 160여 명 중 2명을 뽑은 방송반에 지원하겠다고 했다. 딸이 학교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건 아주 좋은 현상이라 나는 적극 도와주겠다고 한다. 우선 방송반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오라고 했고 방송반 지원신청서를 같이 고민해서 작성했다. 그리고 4일 뒤에 있을 면접시험에 대비해서 여러 가지 예비 질문들을 했다.
- 자기소개
- 왜 방송반을 지원하게 되었는지
- 청소시간에 어떤 음악을 틀어주고 싶은지
- 방송반에 혼자 남게 된 경우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
- 방송반을 하게 되면 어떤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지
내가 했던 질문 중에 두 가지가 나왔고 딸은 나쁘지 않게 면접을 봤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총 13명이 지원했고 딸은 선발된 2명에 포함되지 않았다. 딸의 기분이 좋지는 않았겠지만 좋은 경험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친구 사귀는 일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딸의 신경이 다른 일에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서로의 마음이 닿는 일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이 닿으려니 상대방의 표정, 말투, 생각 등을 세심하게 살피고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 문이 완전히 열리기까지는 시간이라는 힘을 빌려야 한다. 시간은 어떤 때는 천천히, 어떤 때는 빨리 흘러간다.
지금은 너의 시간이 빨리 흐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