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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Jul 24. 2021

중국의 야망과 신냉전 전선의 확장

클라이브 해밀턴이 『중국의 조용한 침공』을 통해 전하는 충고

  세계 뉴스에 아무리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미국과 중국이 세상의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 세계 경제를 긴장시킨 미중 무역 전쟁부터 팬데믹의 근원 및 대유행에 대한 책임 논란까지, 양국을 둘러싼 사실상 모든 이슈는 사실상 패권 다툼의 편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세계 곳곳에 대한 영향력을 잃고 싶어 하지 않는 최강국 미국과, 그들이 가진 패권을 빼앗아 새로운 패자(覇者)로 도약하려는 도전자 중국 사이의 파열음은 무척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채로 으르렁거리면서 '신냉전'을 벌이는 두 강국을 놓고 우리나라는 고민에 빠져 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미국의 외교적 우방이며,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 성장해 영향력 있는 나라로 도약했다. 하지만 동시에 권위주의 체제이자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이 황해 너머에 있어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20%가 넘어 경제적으로도 상당 부분을 그들에 의지하고 있다. 올여름에 미국과 반도체 업계에서의 상호 협력을 강화함과 동시에 한국 기업의 진출로가 될 한중 경협 시범 구역을 중국에 조성한 것은, 딜레마 상황에서 두 나라 중 어느 한 곳과 손을 뗄 수가 없는 한국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당장 우리가 두 패권국 사이의 마찰을 실감 나게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어 잘 의식하고 있지 못했지만,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전선은 '뜨거운 감자'인 동중국해를 중심으로 우리의 방향인 북쪽뿐 아니라 남쪽으로도 길게 확장되고 있었다. 야심에 찬 중국의 팽창은 동남아시아를 넘어 남반구까지 뻗어 갔고, 그로 인해 전선에 들어가게 된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호주'로 대칭) 역시 새로운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클라이브 해밀턴이 쓴 『중국의 조용한 침공』은 이러한 현실이 던지는 거대한 질문에 대한 호주인의 솔직한 답변이라 할 수 있겠다.





호주는 뉴질랜드와 더불어 '서구 진영의 약한 고리'로 여겨졌고, 지금까지 중국 당국이 체제 침투와 전복 방법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었다. … 호주의 다문화주의와 개방성, 비교적 적은 인구, 수많은 중국인 이민자 같은 요소들이 중국의 위협을 인식하고 방어할 방패를 무디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조용한 침공』, 세종, p.24)


  호주는 대륙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국토를 가졌으며, 한국 국토의 70배도 넘는 광활한 땅에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인 철광석 등의 자원이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또한, 인접한 곳에는 군사 강국 혹은 경제 강국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 만한 나라가 없다. 남아시아를 대표하는 강국인 인도의 본토와 호주는 5000km 이상 떨어져 있고, 동아시아의 강국인 중국 본토와도 4000km 이상 떨어져 있다. 호주는 미국 진영의 일원으로서 군사적인 지원을 받아 왔지만, 저자가 1951년 이후 미국의 보호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p.395)도 인근에 큰 지정학적인 위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호주가 가진 지정학적 이점은 오늘날 중국이 내미는 유무형의 침투에는 취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호주와 전 세계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중국이 뇌물을 주고 정치 영향력을 사는 거대한 구조에서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 중공이 호주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정당에 기부하는 것이다.
(위의 책, p.141~142)


  저자가 본서에서 일관되게 지적한 가장 큰 문제점은, 호주의 각 기관이 중국으로부터의 자본에 쉽게 포섭되어 왔다는 것이다. 호주 인구 중 중국 혈통을 가진 인구가 약 5%인 120만여 명에 달하는데, 그중 공산당의 요원이나 그들의 직접적 지시 혹은 압박을 받는 이들이 섞여 있다. 이들이 벌이는 공작의 범위가 소속 기관의 정보를 몰래 빼내는 스파이 행위부터 공당의 정치 자금 후원에 이른다는 것을 지적하며, 저자는 중국 공산당이 사실상 호주를 장악하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음을 역설한다.


  중국이 타국에 산업 스파이를 심어 기술을 빼내거나,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타국의 사회 기반 시설을 임차하거나 점유하는 일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 하지만 호주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하기 위해 중국이 벌이고 있는 일은 그 범위가 사회 전방위적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위협적이라는 인상을 준다. 저자가 용기 있게 들추어낸 중국의 마수가 신냉전의 새 전장인 호주에서 실체화하고 있는 방식은 전 세계에 경종을 울릴 만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은 지리적인 배치로 인해 호주에 직접적인 군사적 압박을 가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 외교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한계점은 중국이 호주가 가진 특성을 역이용해, 사회 내부로부터의 영향력 확대를 더 광범위하고 과감하게 시도할 동기를 부여하고 말았다.

  저자가 폭로한 중국의 행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2017년 5월 시드니 서부 배저리스 크릭에 새로 건설하는 국제공항에 중국이 눈독을 들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 현재 중국 전역에 보급되고 있는 정교한 안면인식기술을 접목해 광범위한 지역에 비디오 감시 체계를 가동하거나 항공사 예약 시스템을 통해 전체 수송 현황을 은밀히 감시할 수 있다.
(위의 책, p.196)


  중국이 세계 각지에 판매하는 제품에 보안 이슈가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산업 스파이가 중요한 기술이나 기관의 기밀 등을 빼돌리는 것만큼이나 위협적인 것이 바로 도청·감시 장비의 확산이다.


  세계에서 CCTV가 가장 많이 설치되어 있는 도시 상위 20곳 중 18곳이 중국에 있다고 한다. 일대일로로 대표되는 팽창주의 노선의 전제를 내부의 철권통치를 통한 체제 안정성 확보로 보고 있기 때문에, 공산당 정권은 감시망의 구축을 중요한 국가 사업으로 정해두고 있다. 그런데 타국의 시설에 이러한 계획을 동일하게 추진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저자가 저술을 통해 '중국의 조용한 침공'으로 말미암아 벌어질 시나리오 중, 공산당의 지시를 받는 이들의 영향력 확대만큼이나 심각한 위협으로 감시 네트워크를 꼽은 것은 굉장히 강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호주인들의 움직임이 데이터화하여 베이징으로 흘러들어 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정권의 의도가 담긴 문물이 퍼지기 시작하여 그것이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받아들여진다면, 그때부터는 흐름을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중국제 물품에 길들여지고, 중국의 시선이 호주에 주입되고, 그다음에는 호주가 국제 사회에서 미국보다 중국의 어깨에 더 기대게 되지 않겠는가?


  공자 학원을 세계 각지에 배치하고, 개인이나 기관의 보안에 위해를 가할 여지가 있는 화웨이의 제품을 타국에 납품하고, CCTV를 곳곳에 설치해 자국뿐 아니라 타국의 움직임까지 감시하려고 하는 나라. 우리가 평소에 접하는 뉴스의 헤드라인과, 저자의 목소리만 조합해도 중국의 공포스러운 그림자의 퍼즐이 완성되는 듯하다.


  자국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서라는 중국의 목적은 분명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것일까. '진짜 위험한 적은 내부의 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외부의 군사적인 공격에 의한 위기보다 국가를 더욱 위태롭게 하는 것은 내부의 부패나 변질로 인한 자멸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짚고 넘어가지 않은 것 중 중요한 사항을 글쓴이는 언급해 보고자 한다.


원교근공(遠交近攻) : 먼 국가와 손을 잡고 가까운 국가를 친다


  이 단어는 춘추전국시대에 진(秦)이 패권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먼 곳에 위치한 초(楚)와 손을 잡고, 가까운 나라들을 평정한 뒤 마지막에 초까지 정복해 천하통일을 이뤘던 것에서 나온 말이다. 갑자기 무슨 고대 전쟁 이야기를 꺼냈는가 싶을 수도 있겠으나, 지도를 보면 글쓴이가 이 말을 꺼낸 이유를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구글어스를 이용해 만든 이미지임을 밝힙니다

  위 지도에서 붉은 영역은 중국, 파란 영역은 호주이며 가운데에 위치한 보라색 영역은 최근 격한 분쟁의 중심지로 떠오른 남중국해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연안의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강한 국력을 가지고 있어 남중국해 영해 분쟁에서 가장 강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이권을 지키고 싶어 하는 베트남과 필리핀 등의 국가들은 이 지역의 외교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펴기 위해 미국과 연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거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지만, 태평양과 대서양을 좌우편에 끼고 있는 미국과 달리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출구는 동남해안뿐이다. 그로 인해 중국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제적·정치적으로 운신의 폭이 크게 줄게 된다. 일대일로와 같은 대형 구상도 동남해안에서의 세력 팽창이 담보되지 못하면 성립하기 어렵다.


  그래서 중국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호주를 포섭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가 중국과 손을 잡으면 호주의 막대한 자원을 지금보다 수월하게 조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먼 이웃인 호주와 중국 본토 사이에 위치한 남중국해를 지리적으로 둘러쌀 수 있다. 굳이 군사적으로 부딪히지 않더라도, 현재 미국의 우방으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호주가 그들의 우군으로 전향한다면 남중국해에 이권이 달려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호주는 미국의 대표적인 우방이며, 드넓은 인도양과 태평양의 많은 도서 국가들 사이에서 드문 경제적·외교적 대국이다. 호주가 어느 진영에 가담하는가에 따라서 남반구 일대의 지정학적 판도는 크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어떻게든 호주를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인다면, 크게 보면 상대의 일원을 이탈시키는 것이며 좁게 보면 미국 진영의 포위망을 약화시켜 대양 곳곳에서 자국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대에게 2~3중의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라면, 중국이 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호주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집착하고 있는지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이 아닐까.


  저자가 '편집증적'이라고 표현하며 비난하는 공산당 정권의 갖가지 행태는 호주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만, 본서를 통해 우리는 한국이 처한 현실에 대해서도 깊이 고민해보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 아시아의 패권을 원하는 중국이 호주의 위협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호주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은 미국과의 동맹을 느슨하게 하고 '자주적인 외교정책'을 세우라고 요구하고 있다. … 이들이 주장하는 자주적인 외교정책은 무엇을 의미할까?
(위의 책, p.395)


  혹자는 책의 초반까지만 읽고 저자의 의심을 '합리적이지만 너무 의심에만 차 있다', 혹은 '우리와는 그다지 상관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타국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할 의향이 있고, 각종 수단을 동원해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중국이 존재하는 한 한국 역시 위 질문에 대해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본서를 읽고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은 중국이 호주에서 벌이고 있는 일들이겠지만, 이 책에서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유는 가지고 있지 않을 때는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겨지지만, 막상 그것을 얻고 나면 다른 모든 것들처럼 평가절하당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이 평소에 누리고 있는 것들의 가치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잘 느끼지 못한다. 원하는 것을 사고팔고, 원하는 것을 배워서 먹고살고, 사회적 문제를 놓고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유란, 그것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는 천금을 주고서도 얻지 못할 소중한 가치일 것이다. 존엄한 존재인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들이 다른 요소와 관계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는 기본권의 가치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이런 중요한 가치를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체를 구성해서 어느 정도 원활하게 운영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역사에서 수많은 이들이 피를 흘려가며 힘들게 쟁취한 자유-평등 등의 가치마저도, 지금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태반이다. 물론 중국 역시 그들 나름대로 사회가 중요한 가치를 존중한다고 말하겠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국가들과 달리 중국이 '좋은 사회', '이상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하는 방법은 지극히 통제적이다. 현실을 편향적 이론에서 파생시킨 이상적 가치(이념)에 맞추려는 그들의 행보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있는 국가들은 권위주의 혹은 전체주의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가치를 보호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 중 누군가는 현재의 시스템에 회의감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기나긴 고통의 역사 끝에 힘들게 찾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그나마 바람직하게 실현해 온 자유민주사회를 보전하는 것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임무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사회의 작동 원리 사실 그렇게까지 당연한 것이 아님을 늘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글쓴이는 중국이 완전히 몰락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미 중국은 너무 몸집이 커졌고, 그들이 어떠한 문제로 좌초된다면 세계 경제가 심한 혼란에 빠져들 것이다. 또한 미국이 패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을 위협할 존재마저 사라진다면 세계의 모습이 또 어떻게 바뀌어버릴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어떠한 계기로든 중국이 자유민주주의로 발을 돌리게 되는 것, 아니면 최소한 지금 중국이 손을 뻗치고 있는 국가들이 기존의 시스템을 잃지 않고 지정학적인 힘의 균형이 깨지지 않는 것. 그리하여 세상에서 권위주의 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땅이 넓어지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호주로부터의 애타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 굳어진 글쓴이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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