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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Jul 28. 2021

문명의 조연, 소재를 돌아보다

스티븐 L. 사스가 『문명과 물질』을 통해 전하는 이야기

  글쓴이는 대학 전공으로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그 말인 즉 기술 및 과학 분야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은 '문과생'이라는 것이다. 이과생들과 글쓴이의 기술 과학 영역에 대한 지식 차이는 어느 순간부터 이과생 친구들의 대화 수준을 따라갈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과학 분야의 서적을 이따금 찾아 읽거나, 궁금증이 떠오를 때마다 웹 검색을 통해 해결하고 문답을 노트에 정리하는 방식으로 교양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체계적인 학습이 결여된 즉흥적인 탐구 활동은 그 근본이 허약한지라, 이과생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는 수준에 도달하겠다는 목표와의 거리는 그렇게 많이 좁혀지지가 않았다.


  결국 글쓴이가 선택한 타협점은, 가지고 있는 지식의 빈틈을 메우는 정도로 만족하는 것이었다. 인문학적 지식만으로는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이 많았기에, 관심 분야와 결합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을 접해서 소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이를 테면 '왜 청동기 시대가 철기 시대보다 일찍 도래했는가'와 같은,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맞닿은 궁금증들을 해결해줄 파트너로서 과학을 활용하고자 한 셈이다. 보름 전 서점에 갔을 때 『문명과 물질』이 시야에 확 들어왔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구리가 철보다 앞서 광범위하게 사용된 이유는 장인들이 구리 광석에서 구리를 추출하는 방법을 제일 먼저 발견했기 때문이다. … 도자기 가마는 구리 제련에 적정한 120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문명과 물질』, 위즈덤하우스, p.71, 73)


  구리는 철에 비해 강도가 그렇게 좋지 않지만, 오히려 녹는점이 상대적으로 낮고 철보다 가공이 쉽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해 석기시대를 끝낸 주역으로 떠올랐다. 구리의 녹는점을 낮추어 가공을 쉽게 만드는 동시에, 구리의 약점인 강도를 보강(위의 책, p.84)하기 위해 고대인들은 주석을 섞어 청동을 만들었다. 땅을 더 깊게 팔 수 있게 하고, 적에게 더 큰 데미지를 가할 수 있게 하는 청동이 등장하면서 인류는 농업 혁명을 일으킴과 동시에 더 큰 규모의 사회를 형성하여 더 치열한 생존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다.


  비록 더 높은 강도를 가진 철에 밀려서 '청동기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고대에 제1의 물결이라 불리는 농업 혁명을 일궈냈고 현대에도 여전히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범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구리가 인류의 문명과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인들이 구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면, 그보다 가공이 힘든 금속들의 활용도 늦어지면서 문명이 아직도 걸음마 단계에 머물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금과 은은 오래도록 가치가 유지되고 공급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기에, 곧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거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금본위제'가 시작된 것이었다. …은은 저장하고 분할하고 녹여서 새로운 형태로 만들기가 쉽기 때문에 주요 통화 수단이 되었다.
(위의 책, p.100)
납은 아주 무르고 모양을 만들기가 좋았기 때문에 기원전 1000년대 후반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납으로 상수도관을 만들었다. 그래서 로마가 멸망한 원인으로 납중독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위의 책, p.95)


  사람들은 편의를 위해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개발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때로는 혁신이 만들어지고, 때로는 소위 '흑역사'라 불리는 참극이 생겨나기도 했다.


  화폐경제의 발전은 농업혁명에 버금갈 만큼의 역사적 파급력을 가져왔다. 세계 각지에 분포한 사회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무역이 발생했는데, 가치의 척도가 되는 통화(通貨)가 없으면 서로 다른 재화들을 교환하는 데에 불편함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역사적 실험을 통해 보편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희소한 자원이자 화폐 주조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은이 통화로 채택되며, 거래 비용이 크게 줄어들어 장거리 무역이 한층 더 활발해졌다. 교역이 여러 곳의 문명에 새로운 문물을 공급하고 부족한 자원을 채워주며 각국의 경쟁적인 발전에 일관적으로 공헌해 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은이 세계사의 한 축을 지탱했다고 할 수 있겠다.

  

  구리와 은이 각각 농업과 상업 발전의 기폭제가 되어 세계사의 발전 속도를 가속했지만, 저자는 광물이 반드시 인류의 밝은 역사와만 함께한 것은 아니었음을 밝히고 있다. 광물 중에는 납이나 비소, 카드뮴 등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가할 수 있는 중금속이 제법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가 없었던 과거에는, 체내에 서서히 누적되었을 때 발생하는 리스크보다는 그 광물을 활용할 때의 이점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상수도와 같은 필수 인프라를 쉽게 구축할 수 있게 해주는 메리트가 있다면 더더욱 그랬을 테다. 하지만 납 배관은 시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로마 제국의 기둥을 좀먹고 있었고, 끝내 대제국이 붕괴하며 이후 약 1000년의 시간 동안 유럽의 문명 발전이 더뎌지는 '중세의 암흑기'가 도래하고 말았다.


  어느 시대에나 기술을 혁신한 선구자들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소재가 무엇이었는가에 따라 문명이 급격하게 전진하기도 하고, 반대로 역사가 후퇴하기도 했다. 구리와 은은 각각 농업혁명과 상업혁명을 촉발하여 인류사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납은 유럽 사회에 오랜 시간 동안 짙은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문명의 시곗바늘을 멈춰 세웠다.



…중국은 활자를 이용한 인쇄술로부터 그리 큰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중국의 문자는 표의문자여서, 복잡한 사상을 전달하려면 수천 개나 되는 글자가 필요했다.
(위의 책, p.177)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은 흔히 한 범주에 묶여 중국의 4대 발명품이라 불린다. 나침반은 인류가 해상을 개척하게 해 주었고, 화약은 전쟁 무기의 파괴력을 대폭 끌어올렸으며, 종이와 인쇄술은 지식의 전승과 배포를 원활히 해줌으로써 지식 정보 사회의 초석을 다졌다. 이러한 선구적인 발명이 없었더라면, 역사의 궤도가 크게 바뀌었을 테다.


  그러나 얄궂게도 이들을 개발한 중국은 혁신적인 아이템을 네 개나 발굴하고도, 중세 이후에 급부상한 서구 열강보다 문명 발전 속도가 뒤처지고 말았다. 1000년 넘게 이어져 온 중국 중심의 동양 문명을 서양 문명이 단 두 세기만에 따라잡는 데에 성공한 압축적인 역전극의 이면에는, 서구의 도약을 가능케 한 여러 소재들의 힘이 있었다. 석탄을 태워 발생한 막대한 에너지로 가동하는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고온에 도달할 수 있는 기술로 철을 더욱 단단한 강철로 제련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건축과 수송 분야에 일대 전환이 일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섭게 쌓여간 지식이 금속활자로 빠르게 기록되고 배포되어 거대한 문명 발전의 사이클을 돌렸다.


  돌이켜 보면 인류가 만들어낸 모든 역사의 분기점에 소재가 있었다. 문명은 생활수준의 진보와 편리함의 증진을 추구하는 욕망을 원동력으로 해서 끊임없이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그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어떤 소재를 어떤 기술로 다루어 효율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도전이 필요했다. 소재는 필연적으로 문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셈이다.

  

  21세기에 이르러 세계 각지에서는 화석 연료와 그 파생물(나일론부터 플라스틱까지)을 다른 소재로 대체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 인류가 문명을 일으킨 이후 처음으로 자연을 보존하려는 동기로 신소재 발굴기술 혁신에 도전하고 있어, 생활수준의 증진과 환경에 대한 배려를 동시에 이뤄줄 복합 재료에 대한 연구의 열기도 달아오르고 있다.

  몇백만 년 동안 인류의 파트너는 돌뿐이었지만, 문명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하며 인류의 파트너가 교체되는 주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머지않아 시대의 선구자들의 손끝에서, 화석연료의 뒤를 이어 문명의 동반자가 될 소재가 무엇이 될지 결정될 것이다.





  글쓴이는 '과거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라고 하는, 역사 학습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말들의 함의를 비교적 최근에 와서 깨달았다. 역사는 수없이 많은 인과관계들의 결합이고, 그 무수한 연속체를 처음부터 읽어내리면 지금의 세상이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로부터 현실에 이르는 흐름을 파악하면 미래로 뻗어갈 역사의 궤도도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역사를 구성하는 인과관계란 모든 방향에서 모든 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기에, 어떤 사건의 발생 원인을 완전히 규명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우리가 지금 스스로의 모습을 갖추는 데에 부모님과 친구들, 주변 환경이 정확히 어느 정도의 비율로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설명할 수 없듯이, 역사적인 사건의 발생 원인과 파급력 역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수록 퍼즐에서 빈 영역은 줄어들어 간다. 역사를 논할 때의 과학의 역할도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교과서의 내용만으로는 뭔가 부족한 '2%'를 과학이 메워줄 수 있다. 교과서나 문제집을 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궁금증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한 채 넘어간다면, 역사 공부는 그저 사건의 중심인물과 연도를 통째로 암기하는 기계적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지루한 과정에 영혼을 불어넣어 주는 것 중 하나가 과학적인 스토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제품들에 들어 있는 철, 알루미늄, 고무, 리튬 같은 소재 중 어느 것 하나라도 없어진다면, 우리는 늘 누리던 풍요로운 삶을 더는 향유할 수 없게 된다. 모두가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기계들은, 역사 속 선구자들이 다양한 소재를 놓고 긴 연구와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활용 가능한 방법으로 가공한 엄청난 노력의 집산이다. 사실은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주위를 돌아보며 세상의 모습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비록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한순간의 호기심을 통해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잘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문명과 물질』의 역할은, 바로 그런 과정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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