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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Jul 31. 2021

'유토피아'는 '미션 임파서블'인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 우리에게 던지는 무거운 물음표

  나이 든 사람들이 종종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무의식적으로 "세상 참 좋아졌다"라고 말하곤 한다. 암울한 식민 통치와 처절한 전쟁을 연달아 겪으면서 회복 불가능한 최빈국으로 여겨졌던 한국은 전후 60년 만에 고소득 국가로 탈바꿈했고, 사람들의 고민도 당장 다음 끼니를 해결하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효과적인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지로 바뀌었다. 한국이 유달리 극적인 20세기를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20세기를 지나며 생활수준의 향상이 이루어졌다. 더 잘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의 열망이 치열하게 부딪히면서 세계는 정치·경제적인 격통에 시달렸지만, 결과적으로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랜 숙원이었던 더 많은 자유와 더 평등한 사회가 실현되며 많은 이들이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려고 하는 도전은 20세기보다 21세기에서 더 큰 벽에 마주하고 있다. 인류는 이전에 비해 고도화한 기술을 바탕으로 더 많은 것을 창출할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더 많은 것을 파멸로 몰아세울 수 있게 되었다. 끝 모르게 팽창하는 세계 GDP에는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라는 그림자가 서려 있고, 지구 반대편의 이들과 우리를 이어주는 네트워크는 권력자들이 돈과 힘을 무차별적으로 쓸어 담는 화수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전에 비해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그만큼 더 많은 미션을 짊어지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짐의 무게를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짐이 존재하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려고 한다. 결국 우리가 짊어져야 하지만 그 누구도 자진해서 어깨에 메어 발걸음을 떼기 쉽지 않은 것들에 대해, 유발 하라리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통하여 과감히 논의를 열어젖힌다.




지난 수십 년 신경과학과 행동경제학 같은 분야에서 이룩한 연구를 통해 … 인간의 의사 결정 과정에 대한 이해가 이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어떤 신비로운 자유 의지가 아니라 아주 짧은 순간에 확률을 계산하는 수십억 개의 뉴런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 또한 인간의 생화학적 알고리즘도 완벽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나타났다.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김영사, p.46)


  근현대 과학이 인간에게 선사한 충격은 여러 경로를 통해 나타났다. 우주는 인간이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이루고 있고,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는 원자들의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창출할 수도 있으며 적군을 타격해 대규모 살상을 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인류사에 미친 가장 본질적인 충격파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자신들과 동격의 지능을 가진 개체를 창조할 수 있을 만큼 똑똑하지만, 동시에 정해진 생화학적 기제의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어리석은 존재이기도 하다.

  현대 과학은 역사 속에서 인류가 갖은 고생을 하면서 만들어낸 '자유 의지'에 대한 환상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았다. 사실 우리의 뇌에 깃들어 있는 것은 숭고한 보편 규범을 좇는 자유 의지가 아니라, 수백만 년 동안 누적되어 온 생존 노하우에 관한 데이터라는 것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AI가 탑재된 기계와 인간 모두, 판단에 관여하는 회로에 누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상황에 따른 결론을 내린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이 느껴진다. 둘의 차이란, 신호의 전달이 전자는 전기적 반응으로 일어나지만 후자는 생화학적 반응으로 일어난다는 점과, 전자가 주입된 데이터와 명령에 따라 행동하는 반면 후자는 철저히 생존에 득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본능에 의존해 행동한다는 점밖에 없다.


  이것에서 끌어낼 수 있는 질문은 하나같이 무겁게 느껴진다. 인간과 유사한 사고 회로를 가졌지만 인간보다 더 객관적이고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공지능이 도래한 세상에서, 인간의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 그리고 과학의 치명적인 일격을 맞은 자유 의지 개념이 흔들리면, 인간 사회는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이 두 질문을 하나로 엮으면, 우리는 존재론적인 곤경을 피할 수 없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에 가져다 줄 막대한 효용은 우리가 점점 그들에 의존하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일상에 인공지능이 스며들수록, 우리의 삶은 알고리즘에 파묻혀 갈 것이다. 불특정 다수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되고 사회 구성원들이 자유 의지의 자리를 빼앗아 알고리즘에 내어준다면, 우리는 어떠한 존재로 어떤 모습을 한 세상을 살아가게 될까.


21세기에는 데이터가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부상하면서 기계와 토지는 밀려났다. 앞으로 데이터가 너무나 적은 손에 집중되면서 인류는 서로 다른 종으로 나뉠 것이다.
(위의 책, p.129)


  저자의 예상이 도발적이라 받아들이기를 꺼릴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모든 것을 가진 초엘리트 1%와 모든 것을 잃은 99%로 나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상으로 환언하면 많은 이들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앞의 두 문장은 실제로 미래의 같은 시나리오를 지칭하게 될지도 모른다.


  현대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만들어낸 가치만큼을 취한다'는 모토를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다.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자산에 상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희소성의 원리에 따라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이 벌어지면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이곳에서 현대 사회는 괴로운 딜레마에 놓인다.


승자가 지배하는 정글인 시장 경제의 논리와 개개인의 정치적 목소리가 모두 존중받아야 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언제까지나 안전히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오늘날에도 내로라하는 부호들과 평범한 개인이 가지는 정치경제적 영향력 차이는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크다. 그러나 세계 유수의 대기업들이 우리의 개인정보와 중요한 데이터들을 손에 넣어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면, 막대한 경제적 격차라는 문제는 시작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철저히 커스텀마이징한 알고리즘을 제공받는 데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을 그들의 의도대로 유도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사회는 민주주의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역할을 기업이 아닌 정부가 도맡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의 파멸이라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 자명하다.


  이쯤 되면 유발 하라리가 데이터의 집중화를 가장 경계하는 이유를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혹은 권력)과 기술의 합에 욕망이 가미되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시나리오는 비슷하지 않을까.



 만약 그리스인과 독일인이 공동의 운명에 합의할 수 없다면, 그리고 풍족한 5억의 유럽인이 헐벗은 수백만 난민을 수용하지 못한다면, 인류가 지구 문명을 괴롭히는 더 심각한 갈등들을 극복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위의 책, p.237)
인간은 사실과 숫자, 방정식보다는 이야기 안에서 생각한다. 이야기는 단순할수록 좋다. 모든 사람, 집단, 민족은 자기 나름의 이야기와 신화가 있다.
(위의 책, p.20)


  인간을 두고 시각적 동물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우리는 '보이는 것'을 중시한다. 하지만 동시에 보이는 것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게 여긴다. 보고 만질 수도 없는 돈, 민족이라는 개념들이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얼마나 크게 관여하고 있는가.


  허구에 대해 저자가 제시하는 의견은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 허구는 사람들과 특이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인과관계에 대한 편리한 해석이나 행동에 대한 합리화 등 다양한 목적으로 서사를 구성하고 허구의 개념을 창조한다. 피조물들은 다시 감정을 고취해 사람들이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할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러한 역사적 예시는 종교적 열망을 예술로 승화한 노트르담 대성당부터 얼굴에 태극마크를 새기며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군중들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열거할 수 있다. 허구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인간의 특수한 능력은, 문명을 열어젖히는 열쇠였다.


  허구는 이해관계가 다른 수많은 사람을 한 곳에 결집시키는 힘이 있다. 그러나 공통분모가 미약한 이들까지 한 집단에 모두 품을 수는 없으므로, 결국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자신이 속한 내집단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을 수용하지 않는 외집단과 언젠가 마주할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허구를 중심으로 뭉친 두 집단이 살을 맞댈 때 흔히 사람들은 DNA에 새겨진 본능을 발동해, 자신과 내집단의 이익 및 생존 가능성에 잠재적으로 해를 끼칠 법한 이질적인 상대에게 반발심을 가지고 공격하는 모습을 보인다. 오랜 시간의 교육을 통해 사람들은 입으로는 보편적 가치의 철저한 적용을 역설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슴속으로는 삶을 생존 경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다각도의 규범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공리주의보다 이기주의를 선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또다시 난감한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기주의가 기본값인 생물 인간이 이타주의를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단기적으로 제로섬 게임인 글로벌 이슈에서, 누구도 나서서 양보하려고 하지 않을 상황을 해결할 현실적인 방법이 있는가?"



  우리는 세계화의 진척을 보고 희망을 가지지만, 국수주의와 자민족 중심주의를 비롯한 배타주의가 득세하는 것을 보고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다. 세계 문명이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보다 눈앞에 달린 국소적 이해관계가 상충하면 대부분의 이들은 후자에 신경을 쏟기 마련이지 않은가. 인류에게는 훌륭한 지능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 지능이라는 것은 현재의 행위가 미래에 어떤 파급을 불러올지 예측하는 것보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사후적 평가를 내리는 데에 적합하다. 사람들은 수많은 사실들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미래상보다는, 지나간 일들과 그것에 나름대로의 의미가 부여된 허구의 스토리에 더 쉽게 설득되며 그로 인해 내집단 단위의 이기주의를 표출하는 것이다.


  지구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인류의 앞에 놓인 선택지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모두를 아우르는 새로운 허구를 만들어 내어 본성을 거스르는 대타협을 이끌어낼 것인가, 아니면 승자들이 찍어 누르는 논리에 약자들이 불만을 품은 채로 굴복하며 속이 너덜너덜한 합의문이 만들어질 것인가.

  유발 하라리가 개인, 사회, 세계 단위로 제시하는 물음은, 실로 인류가 당면한 과제에서 정곡을 골라 찌르고 있다.





  이제껏 유토피아 건설의 기치를 내세우며 등장한 세상의 많은 이념은, 결국 부와 권력 확대라는 이익 확대에 경도된 이들에 의해 세상을 디스토피아로 이끄는 발걸음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다행히도 문명 간의 끊임없는 생존 경쟁을 통해서, 현재까지 밝혀진 모델 중 거대 집단을 지탱하는 데에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진 자유민주주의의 시장 경제라는 체제가 주류로 떠올랐다.


  그러나 발전을 거듭해 온 현대 세계는 인류 문명의 찬란한 성과만큼이나 거대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커지는 문명을 지탱하기 위해 커져 온 과학 기술이 갖는 파괴력과, 그것을 손에 넣은 이들의 전횡을 막아줄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첨단 기술이 세상을 디스토피아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위험을 차단하려면, 우리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서로 다른 규범과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과의 협상에서 때론 내키지 않는 의견을 받아들이며, 협소한 내집단의 이기주의를 지구 공동체를 위한 배려로 조금이라도 치환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 모두는 입으로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외치지만, 세상을 바꿀 만큼의 영향력이 손에 들어오면 세상의 흐름을 자신에게 좋을 대로 편집하려 하는 내적인 욕망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각자가 바라는 이상향의 모습은, 다른 77억 인구가 꿈꾸는 낙원의 모습과는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모두에게 유토피아인 세상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도전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으면 작금의 현실이 우리에게 지운 짐을 메고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미션 임파서블'에 훨씬 가까울지도 모르지만, 유토피아를 동경하는 운명인 인간이 꿰어야 할 첫 단추는 항상 처한 현실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주저하고 있는 이들의 양손을 단추로 내뻗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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