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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ug 06. 2021

인류의 주무대, 도시의 이야기

『메트로폴리스』 속에 담긴 역사의 서사시

  도시의 이미지는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양 극단으로 묘사되는 경향이 있다. 현대인이 '도시'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파생되는 이미지라면 누군가는 윤택하고 편리한 생활을 떠올릴 것이며, 혹자는 삭막한 도회지의 풍경을 연상할 것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이러한 차이는 예전부터 존재해 온 것이며, 양측의 생각 모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리가 있다. 자연을 인간이라는 한 생물의 편의에 맞게 개발함으로써 우리가 더 많은 효용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며, 자연과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면서 생물로서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의 DNA에 각인되어 있는 도시의 양면적인 이미지란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도시는 고도화한 모든 문명의 출발점이었고 인구수만큼이나 많은 산업적 공급과 수요를 창출하는 인적·물적 자원의 집산이었으며, 동시에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필요에 의해 자연환경을 착취하는 역설적인 공간이자 수많은 이해관계가 부딪히는 끝에 파멸적인 유혈 충돌을 유발하는 투기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떠한 관점에서 보아도 도시는 항상 역사의 흐름을 주도해 왔고, 항상 역사의 최전선에 있었다. 그말인 즉 역사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역할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메트로폴리스』의 저자 벤 윌슨은 도시를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평가했고, 그가 인류문명사를 읽어내리면서 캐치한 스토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의 약도와 매우 닮아 있다.

  도시로부터 뻗어나간 역사와 그로부터 다시 뻗어나간 도시. 양측의 거듭되는 상호작용을 들여다보면 몇천 년 길이의 대서사시가 눈앞에 펼쳐져 보인다.



우루크는 각자의 부와 기능과 권력에 따라 등급이 정해지는, 계층사회가 되었다. … 서로 합의한 공동의 과업으로 출발했을 법한 것이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매우 불평등한 사회로 변질되었다. … 자비로운 신전에서 노동의 대가로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던 관행이 결국 할당량 관리를 통해 힘겨운 노동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변질되었다.
(『메트로폴리스』, 매일경제신문사, p.65)


  이러한 뉘앙스의 문구는 역사 교과서에서 청동기 시대와 농업혁명을 소개할 때에 등장한다.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생겨난 잉여 생산물의 차이가 빈부격차를 만들었고, 그리하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비극적인 대조가 생겨난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로 인해 빚이라는 것이 생겨난 순간부터, 인류의 역사는 불평등과 계층(혹은 계급) 개념을 떼어낼 수 없는 운명으로 들어섰다.


  냉정한 생존 경쟁이 존재하는 자연계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는 후대에 유전자 풀을 이어줄 수 있는지의 여부로 직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 역시 생물의 일종이므로 생산 과정에서 경쟁 의식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지만, 종의 진화 과정에서 길러온 집단 규범이 그 본능에 절묘하게 스며들었다. 자연 상태에서라면 도태되었을 약자들은 경제적·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강자들에게 귀속되어, 그들의 이익을 위해 애써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초기 도시는 이러한 구도의 확장판이었던 셈이다.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의 각 가정에서 배출되는 분뇨는 토관을 통해 인근 거리의 하수구로 흘러갔고, 거기서 다시 주요 도로 밑의 대형 지하 하수도 시설로 빠져나갔다. …  도시 자체가, 아니 적어도 도시의 하수구, 우물, 저수지, 목욕탕 따위로 구성된 기반시설이 일종의 수상 신전을 이루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책, p.84)
도덕적 기준이 낮은 곳, 저열한 퇴폐업소가 있는 곳, 매력과 재력을 갖춘 곳. 이것은 대도시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대도시의 상반되고 불온한 성격이다. 도시는 유토피아인 동시에 디스토피아이다.
(위의 책, p.118)

    

  사회의 리더로 올라선 이들이 구성한 초기 사회 집단은 도시의 원류가 되었다. 많은 이들이 모이면서 그들의 필요에 맞는 초기 인프라를 구성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상하수도와 공중 목욕탕 및 병원이 생겨났다. 거듭되는 대규모 토목 공사가 만들어낸 기반 시설로 도시는 이전보다 큰 흡인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불어난 인구는 더 많은 경제력과 정치력을 만들어냈다.


  더 큰 풍요가 필수재를 넘어 사치재에 대한 수요를 창출시켰다. 잉여생산물의 확대로 더욱 확대된 시장에서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재화 및 서비스가 거래되었다. 상업의 성장은 분업의 메리트를 키워줬으며, 그로 인해 특수한 기술을 가진 장인이나 고부가가치의 상품을 거래할 수 있는 이들이 특혜를 누렸다. 도시 역시 이들이 창출하는 가치를 앞세워 부국강병으로 나아가, 공동체를 보호하고 세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다.


  도시 확장의 부산물이 비단 문명의 풍요와 강화만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몰려든 사람들과 함께 얼키고설킨 이해관계의 교차는 먹고살기 위해 현실과 타협을 한 이들과, 금전적 여유가 생겨서 생계 유지 이상의 욕구를 가진 이들을 매칭시키기도 했다. 그로 인해 도시의 도덕적 문턱은 시장 어딘가에서는 필연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음울한 밤거리의 이미지 역시 그 기나긴 역사의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 세계의 물산과 자원이 지구상에서 제일 부유한 상업 제국이 거둬들인 세금의 형태로, 제국의 새로운 수도로 흘러들었다. … 바그다드에는 제국 각지의 무슬림뿐 아니라 소규모 집단의 유럽인과 아프리카인, 아시아인도 몰려들었다.
(위의 책, p.210)
1800년대까지 유럽의 기대수명은 농촌이 도시에 비해 50% 더 길었다. … 유럽 도시들은 불결했기 때문에 사망사고 다발지역이었다. … 늘 전쟁에 시달렸기 때문에 도시는 요새화되었고, 따라서 물리적으로 성장이 억제되고 밀집도가 증가함에 따라 병원균 증식에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었다.
(위의 책, p.266)


  상업의 발달은 항해 기술의 발달을 불러왔고, 더 우수해진 항해술은 문명의 활동 반경을 대폭 확장시켰다. 아라비아는 중국과 유럽을 이어주는 중개상 역할을 하면서 중세에 시대를 앞서가는 문명을 구축했고, 그들로부터 지식을 받아들이며 성장한 유럽이 아메리카를 선점하며 타 대륙보다 빠르게 근대로 도약했다.

  세계 각지의 도시에서 상업적 성장과 도시의 풍요, 그리고 문물 발달의 톱니바퀴는 끊임없이 서로 맞물려 돌아갔고, 도시와 문명의 흥망은 그 톱니바퀴를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회전시킬 수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 


  세계사의 흐름을 주도한 지역에는 언제나 대도시가 존재했다. 로마 제국의 로마부터 아바스 왕조의 바그다드, 수-당 왕조의 장안 등은 세계 각지의 이들을 끌어들이면서 다원적인 도시를 구축했고, 각국의 문물 교류로 문명의 성장이 가속화했다. 중국의 제지술과 활자 기술이 유럽까지 전해지면서 르네상스와 근대화에 가속도가 붙었고, 유럽에서 먼저 발달한 화포가 이슬람권에 전해지며 오스만 제국이 1000년을 존속했던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을 멸망시켰다.


  넘치는 도시의 부가 정치적 리더들뿐 아니라 상업가들에게도 흘러들어가면서 자본가 계층이 만들어졌고, 이들은 신대륙 개척과 금융 시장의 급성장에 힘입어 역사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자본가의 영향력 증대와 중산층의 확대가 민주 공화정으로의 시대적 전환까지 일궈냈으니, 도시가 시대의 새 문을 열어젖히는 열쇠라고 평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을 거듭해도, 도시의 물질적 팽창과 사회 병폐의 심화가 비슷한 속도로 이루어졌다는 아픈 역사는 쉽사리 떨쳐내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몇백 년에 걸쳐 누적된 불평등의 확대는 계층의 고착화로 이어지며 점점 많은 인구를 열악한 여건에 노출시켰고, 산업 성장에 경도된 도시는 환경 파괴와 사회적 약자들의 보호를 등한시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의 덩치가 빠르게 커진 만큼, 그 그림자 역시 놀라울 정도로 넓어진 셈이었다.



대도시의 전반적인 정신적 특성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힘은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인간적 요소를 없애버리는, 화폐경제와 고도의 분업이었다. … 그런 처지는 무감각한 태도와 회의적이고 냉담한 행실을 통해 드러났다.
(위의 책, p.423)
바르샤바가 맞이한 운명은 다른 도시들이 현대전에서 겪은 모든 경험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바르샤바에서는 전체 건물의 80퍼센트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위의 책, p.524)


  도시에 따라온 그림자는 역사에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첫째는 위 문단에서 지적된 바와 같다. 두 번째 형태의 그림자는 인간의 내면에 드리워졌다. 산업 발달에 따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분업 정도가 갈수록 세분화했고, 사람들의 관심사가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집중되면서 '냉정하고 이해타산적인' 도시의 전형적인 인간상을 빚어냈다. 도시가 권유하는 개인주의적 일상은 사회적 동물로 진화한 인간의 본능과 충돌하며, 사람들에게 심리적 공허함을 안겨주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세 번째 그림자가 시대적 광기와 결합했을 때에 나타났다. 제국주의의 연장선인 나치즘은 다른 이들이 구축한 문명의 상징인 이국의 도시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했다. 근현대에 이르러, 도시는 물질적 교류의 중심지이자 여러 가지의 가치가 덧씌워진 문명의 거점으로 여겨졌다. 하나의 도시가 전례 없이 많은 것을 품게 된 만큼, 그곳을 어떻게든 완전히 장악 혹은 파괴하려는 지도자의 야욕도 커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많은 도시들이 폭력과 학살이 난무하는 비극을 피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역사의 개척자가 되었던 도시에 비친 문명의 후광이 너무나도 강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도시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몇천 년에 걸쳐 도시가 안고 있었던 구조적인 문제는 결국 세계대전으로 인해 그 심연을 내비쳤다.

  그러나 도시는 그 매력을 알아준 많은 이들의 힘을 빌어 다시 역사의 주무대로 떠올랐다. 비록 그림자도 도시와 함께 일어섰지만, 누적된 역사적 교훈 앞에 사람들은 이전과 달리 그것의 실체를 알고 있다. 



1970년대부터 쿠리치바는 15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공원 면적을 399제곱킬로미터나 늘렸으며, 몇 개의 인공 호수를 팠고, 바리기강을 따라 환경 친화적 회랑지대를 조성했다. … 오늘날 쿠리치바에서는 쓰레기의 70퍼센트가 재활용된다.
(위의 책, p.614)
라고스는 나이지리아 국내총생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 날마다 라고스로 수천 명이 유입되고 있다. … 2000년, 라고스는 재난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라고스의 경제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위의 책, p.619)


  도시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공장과 화력발전소가 환경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많은 도시에서 녹지화와 탄소 저감 시설이 설치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 인구 과밀이 사회적 혼란과 불편을 야기해 경제 성장에 데미지를 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오늘날 아프리카의 대도시들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도 급격한 산업 발달로 소득 수준이 꾸준히 오르고 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도시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이것이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근래 서구권에서 떠오르고 있는 배타적 민족주의나 자국 중심주의 이슈는 여러 인종과 민족이 얽힌 도시에서 예측 불가능한 충돌을 유발할 수 있고, 기술의 발달과 빈부 격차 심화로 1% 대 99%의 대립 구도가 현실이 되는 시나리오 역시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도시의 저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의 도시들은 시가지의 팽창에 따른 인프라의 미비, 산업혁명 직후의 극심한 대기 오염, 폭격과 포격으로 인한 궤멸적인 파괴 등을 모두 극복하고 번영을 이루고 있는 곳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결하는 만큼 예측 불가능한 트러블이 역사 속에서 수없이 이어졌지만, 삶의 터전을 바람직한 모습으로 만들어가려는 이들이 모은 소망의 힘이란 대부분의 과제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릴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도시가 역사의 대서사시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무척이나 일관적이다. 앞으로도 도시는 미래를 개척해 갈 것이라고. 잠시 한 발 물러서게 될지도 모르고 성장통에 시달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결국에는 전진해 갈 것이라고.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을 그 안에 담고 있는 도시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글쓴이는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성장기에 어촌에서 지낸 경험이 있고, 명절에는 농촌에 내려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농어촌과 도시의 환경에 모두 익숙하고, 각각 어느 점이 좋고 어느 점이 그렇지 못한지도 잘 알고 있다. 사람과 시설이 밀집되어 있는 도시는 집적 효과를 발휘하기에 탁월하고, 이해관계가 뒤엉키는 공간 속에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강구할 동기도 크다. 세상이 발전하려면 많은 이들이 좀더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을 창출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시장에 참여해야 한다.


  도시와 빛나는 발전 궤도에는 새로운 문명의 개막과 함께 으레 새로운 사회적 이슈가 따라붙어 왔다. 이러한 도시의 이중적 속성은 누군가를 기술 만능론자로 만들었지만, 다른 누군가를 환경 운동가 진영으로 들어서게 했다. 이는 개선되어 온 점에 주목하는가, 아니면 개선해야 할 점에 주목하는가에 따라서 나뉘는 것일 테다.

  역사적으로 양측으로 나뉘었던 시선은 기후 이상이라는 전지구적 미션 앞에서 혼합되고 있다. 이제 도시의 엘리트들은 기술적 역량으로 잔존한 모든 난제를 해결하는 것에 도전하고 있으며, 그 성과가 어떠한가에 따라 도시와 문명의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상기(上記)한 것처럼, 도시인은 냉담하고 이해타산적인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도시인들이 뭉친 도시는 다이나믹할 정도로 뜨겁게 돌아간다. 우리는 역사의 명암과 함께해 왔고, 앞으로도 새로운 세계사를 만들어 갈 도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메트로폴리스』를 통해서 모두의 삶의 배경이자 '인간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도시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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