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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ug 18. 2021

인간의 필연적 파트너, 딜레마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인간 딜레마의 모든 것』 속 숨은 이야기

  인간은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힘들게 '지성을 가진 유일한 동물'로 거듭났다. 하지만 갖은 고생을 해서 어렵사리 얻은 고도의 지적 능력에는 인간만이 직면할 수 있는 딜레마라는 사용료가 따라붙었다. 자연계에서도 자원의 유한성은 존재하지만 다양한 선택지를 놓고 편익과 비용을 일일이 계산하며 고민에 빠지는 존재는 인간뿐이며, 대립되는 이해관계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깊이 고뇌하는 것도 인간뿐이다.


  딜레마에 부딪혔을 때 사람이 고르는 선택지의 방향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설명이 제시되어 왔다. 종교가 사회를 지배하던 시대에 그것은 신의 뜻이었으며, 왕정이 연이어 무너지고 시민들에게로 권력이 이양되던 시대에는 자유 의지가 해답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현대 생물학과 경제학은 기존의 모든 설명을 뒤엎고 가장 강력한 행동 유인이 유전자 풀의 보존임을 내세웠다. 다소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과학과 심리학의 빈틈없는 해설에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긍하고 있다.


  딜레마가 왜 일어나는지, 그리고 딜레마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설명하는 모델은 이미 많이 공개되어 있다. 그러나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딜레마와 인간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본서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인간 딜레마의 모든 것』은 딜레마를 해부하여 간접적으로 인간의 해부도를 보여줌으로써, 둘 사이에 어떤 교류가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도와준다.




아비는 아내가 임신한 아이가 자기 자식인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아비는 어미보다 자식을 기르는 데 관심이 덜하다. … 일부일처제는 이러한 의심을 제거할 수 있는 효과적 시스템이다. …아비는 어미가 낳은 아이가 자신의 핏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으므로, 아비는 더 열성적으로 육아에 참여할 동기를 갖는다.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인간 딜레마의 모든 것』, 노마드, p.342)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라는 생물학자와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한정된 자원만이 존재하는 경쟁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생물의 한계로 부정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치열한 경합을 뚫고 살아남은 이들의 피를 이은 우리가 이기주의의 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은 필연이다. 그러나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가 이기주의와 경쟁뿐이라면 오늘날의 혼인 제도는 일부다처제였을 것이다. 일부일처제는 역사적 전통이 깊은 딜레마의 소산이다.


  야생에서 집단을 이루는 여느 동물들처럼, 인간이 이루는 집단에도 대체로 구분 가능한 계층이 있다. 재력을 틀어쥔 남성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아이를 보호해 줄 강한 남자를 원하는 여성을 여럿 받아들여 많은 후손을 남길 동기가 있다. 그러나 부와 권력을 갖지 못해 짝을 구하기 어려운 많은 남성들의 반발로 인해, 일부다처제 사회는 늘 폭력의 위협에 처할 수밖에 없다. 본능적 욕망의 해소와 잠재적 위협의 제거라는 딜레마 속에서 타협이 이루어진 결과가 일부일처제인 셈이다.


본능과 현실이 충돌하며 만들어진 딜레마는 인간을 고뇌에 빠뜨렸지만,
결과적으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워줌으로써 또 다른 진화를 안겨 줬다
 

  남성의 본능은 일부다처제를 향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모 아니면 도'의 피 튀기는 경쟁의 리스크는, 많은 이들이 짝을 이루어서 서로의 영역이 침범되는 것을 막는 것에 합의할 동기를 제공했다. 유전자에 좌우되는 개인 단위의 미시적 목표가 수없이 많은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사회 속에서 변형되어, 일부일처제라는 새로운 거시적 지향점으로 수정된 것이다. 본능에서 양보한 대가로 인간이 사회의 팽창을 얻었으니, 유전자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장사를 했다고 할 수 있다.



'집합적 행동 함정'을 해결할 유일한 수단은 이타심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타심을 발휘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이타심을 발휘하는 순간 누군가가 그것을 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 이타심을 가진 존재가 점점 많아진다 해도 이를 이용하려는 소수의 이기주의자들은 뻔뻔하게 살아남는다.
(위의 책, p.20)
식량을 모으는 개미가 사라졌을 때 베짱이는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이타주의자가 없는 세상에서 이기주의자는 장점을 발휘할 수 없다. 
(위의 책, p.195)


   유한한 자원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점유할 수 있는 몫이 존재하는데도 그것을 가지지 않을 이유가 없으며, 양보와 희생은 자신과 유전자의 미래에 데미지를 가하는 행위이다. 중립적 상황에서 이기적 선택은 디폴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기성에도 필연적인 딜레마가 따른다. 이기성을 뒤로 밀어두면 자신의 몫은 다른 이의 손에게 돌아가지만, 모두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한정된 자원은 금방 고갈되어 결국 공멸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난해한 이 딜레마가 교차하는데도 세상이 작동하고 발전하는 이유로, 저자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공존이 서로에게 장기적으로 유리하다는 설명을 제시한다. 이타주의 세상에서는 이기주의자의 독식이, 이기주의 세상에서는 지리멸렬한 경쟁이 균일한 집단 형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집단의 생존을 위해, 인간이 개인별로 차등적인 이기성을 가진 구성원을 품은 사회를 구성하도록 진화한 셈이다.


  자연의 일부이고 유전자를 담고 있는 존재로서 우리의 1차적인 행동 방향은 이기주의이지만, 자연과 다른 성질을 가진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집단의 붕괴를 막아줄 사회적 동물로서 심리적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다. 개별 개체로서 이익을 도모하려는 목표와 집단 구성원 중 하나으로서의 목표라는 이중적 양립은 개인에게 갈등 요소가 되지만, 집단에는 존속의 조건이 된다. 75억 명도 넘는 인간이 존재하는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가장 큰 동력이 바로 이것이라 할 수 있겠다.



주치의는 그녀를 안락사시킨다. 그때 동료 의사가 병실 앞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다. … 당신이 목격자라면 주치의를 고발할 것인가? 목격자는 당신뿐이며, 당신만 눈감는다면 주치의는 무사하다. 그리고 국가는 안락사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당신은 안락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위의 책, p.63)


  인간은 생존 문제 이상의 고민을 하는 유일한 동물일 것이다. 개인 생존 차원에서의 딜레마를 넘어서면 그에 맞먹을 정도로 골치 아픈 사회 규범 속에서의 딜레마와 마주한다. 존엄사 논란, 트롤리의 딜레마는 생존 문제를 해결해 파워업에 성공한 인간의 발전 과정에 맞게, 더 높은 난도의 고민거리를 던진다.


  도덕적 딜레마에 부딪혔을 때 과정과 결과 중 어느 쪽을 중시할 것인지 답하는 것은 굉장히 까다롭다. 개인이 고통을 줄여 죽음으로 향할 선택의 자유와, 생명을 의도적으로 끝낸다는 행위의 부도덕성은 저울 위에 올린다고 해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영역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편에든 설 수 있고, 다른 이들이 반대 편에 선다고 해서 비난을 할 수도 없다. 어떤 이유를 바탕으로 어느 쪽에 설지 결정할 것인가.


  고도의 지능과 정교하게 발달한 문명이라는 환경은 개인이 여러 개의 정체성과 역할을 지니도록 한다. 그리고 정체성과 역할에 따라 다르게 부과되는 의무는 한 가지 주제 위에서 충돌할 수 있다. 우리는 행복을 자유로이 추구할 권리가 있는 존재로서 환자의 고통에 공감해 감정이입을 할 수도 있고, 다양한 규칙을 적용받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현행 법률에 따를 수도 있다. 행동 준거에 따라 선택지가 달라진다는 것은, 윤리적 딜레마의 근본적 원인이 문명사회에서 필연적인 역할 충돌에 의한 것임을 시사한다.


  자연 상태에서 매일을 생존 문제로 씨름하던 인류가 갖가지 생존 딜레마를 정복했지만, 그 고난의 과정을 거친 이들의 후예는 더욱 성장한 지적 능력으로도 풀기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다. 지독한 애증의 파트너인 딜레마는, 이번에도 인류가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지켜보고 있다.





  대개 딜레마라고 하면 진퇴양난의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꺼려한다. 심사숙고하면서 딜레마를 해결할 궁리를 하는 것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도 본인이 딜레마의 상황에 놓이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트롤리의 딜레마에서 폭주하는 기차가 지나다니는 철로 위 잠재적 희생자의 역할을 자처할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인류의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딜레마는 우리의 DNA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해 왔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호각의 라이벌인 셈이다. 마주치고 싶지 않지만, 라이벌과 맞서 싸우고 그를 넘어서지 않으면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오랜 혈투 끝에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등극했지만,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화해야 할 임무가 부여된 존재인 것은 여전하다. 딜레마라는 끈질긴 파트너와 결별할 수 없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딜레마와의 오랜 다툼을 통해 자기 조정 능력을 단련해 왔고, 집단의 규모를 팽창시키는 미션을 성공시키며 계승과 진화를 원하는 유전자의 요구도 충족했다.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현재 우리 앞에 던져진 딜레마들은 언젠가 인류가 함락한 수많은 요새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딜레마 역시 새로운 조건에 맞추어 쉴 새 없이 진화할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다. 앞으로도 양측 간의 전쟁은 인류의 발전 궤도를 그려 나가며,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연대기를 써내려 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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