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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ug 29. 2021

인스타그램의 성공을 돌아보다

『노 필터(#No Filter)』가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들

  글쓴이가 인스타그램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5년 전쯤이었을 것이다. 네트워크 세상에서 활발한 편이 아니었던 대학생에게 스마트폰 속에 가진 SNS 앱은 기껏 해 봐야 카카오톡, 페이스북에서 끝이었고, 그마저도 사실 자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의 생각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인스타그램이 컨텐츠를 대량으로 제공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SNS를 잘 이용하지 않는 이의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매력으로 어필이 되는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고 소통을 한다는 콘셉트의 앱이라면 다른 것도 많은데, 왜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빠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인스타그램이 어떻게 10억 달러에 이르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받아 페이스북에 인수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몇 년 동안 글쓴이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SNS를 잘 쓰지 않던 절친들마저 인스타그램에서 소통하기 시작한 것을 보며 궁금함은 드디어 임계점을 넘었다. 이 세대 가장 성공한 앱의 반열에 선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인스타그램에 대해 절실하게 알고 싶어진 손이, 서점 한 코너에 놓여 있던 『노 필터』를 놓칠 일이 없었다.




그들은 한 가지만 하기로 했다. 사진만 잘 하자. 그것이 두 사람의 목표였다. …뭔가 새롭고 과감한 것을 발명하는 대신, 다른 앱들이 갖고 있는 기능을 향상시켰다.
(『노 필터(#No Filter)』, RHK, p.70~71)
"생각해 보세요. 트윗하려면 할 게 너무 많아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거든요. 하지만 사진을 올리는 일은 아주 쉽죠."
(위의 책, p.73)


  험난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스타그램이 내민 출사표에는 '사진'과 '간단'만이 적혀 있었다. 다양한 필터를 적용할 수 있는 설정을 탑재해, 사진을 단시간에 편집하고 업로드해 편리하게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특징으로 내세웠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달리 사진 업로드 하나에만 집중하는 대신, 업로더의 편의를 극대화한 것이다. 앱의 기능들을 직관적으로 구성하여 초입자에게도 진입 장벽을 낮추었다.


  사진을 주력으로 하는 콘셉트는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 사진 분야의 대세 앱으로 떠오르면 그 시장을 독점에 가깝게 장악할 수 있지만, 반대로 영상과 글 위주의 업로드도 가능한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존재하기 때문에 자칫 특징 없는 앱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인스타그램은 사진 하나로 출발했지만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람들의 심리를 파고든 그들의 혜안이 적중했기 때문이었다.



"사진이 어떻게 파괴력을 발휘했는가?"



  살아가다 보면, 인상적인 풍경과 마주해 그것을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온다. 사진은 기본적으로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단 한 번의 손동작으로 순간을 디지털화해 영원으로 만들 수 있으며, 소중한 장면을 타인에게 전달해 의미를 확장하고 감동을 연장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의 가치를 배가한다. 놓치고 싶지 않은 모습을 빠르게 포착하고, 생생한 감명을 공유하는 과정의 효율을 최대화할 수 있는 도구라면 사람들은 그것을 쓰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사진은 텍스트보다 해석의 폭이 매우 넓다. 업로더는 여러 가지 하고 싶은 말을 함축해 사진 하나로 표현할 수 있고, 단 하나의 개체로 많은 시각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투고된다면, 이것은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표현하는 것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지구온난화로 얼음덩어리들이 녹아내리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이미지 단 한 장으로 많은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두고 다채로운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사진은 절묘한 비교 우위를 가지는 매체라는 이점이 있다. 보는 사람에게 줄글을 읽는 것보다 이미지를 보는 것이 빠르게 뇌에 흡수되며, 기억에도 깊이 각인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주목도를 극대화하는 매체는 동영상이지만, 동영상은 촬영과 편집의 난이도가 모두 높아 사진보다 업로드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투입되어야 한다.


  인스타그램은 영상과 텍스트에 비해 사진이 가지는 상대적 이점을 파악하고, 그 메리트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진을 효율적으로 편집하고 보기 좋게 보정할 수 있는 툴을 제공하는 데에 주력하여 고속 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작가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 공간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크게 성장했다. 또한 대중적 이미지를 다듬고 그것을 자본화하는 도구로 변신했다. 셀럽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인스타그램 계정은 창업자들이 의도했던 대로 누군가의 생생한 경험을 들여다보는 창이 됐을 뿐만 아니라 각자의 개인 미디어가 됐다.
(위의 책, p.240)


  인스타그램이 틈새시장을 공략해 빠르게 성장하면서, 사람들의 일상도 서서히 그 모양이 바뀌어 갔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녹여내 다양한 매체에 담아 SNS로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스타그램 역시 사람들의 표현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개인 단위 미디어가 되었다. 온라인 세상을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면서도, 주도적으로 세상과의 넓은 접점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양방향적인 욕구가 현실화했다.


  업로더들은 자신의 일상 중 일부만을 사진화하고 의도를 담아 편집함으로써 사생활을 적당한 선에서 드러내고, 동시에 긍정적 이미지를 강화해 더 많은 관심을 유도할 수 있다. 현실에 비치는 모습 중 불만족스러운 곳이 있으면 도려내거나 보정을 가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조각을 실제보다 더 가치 있게 보이도록 할 수 있다. 앱이 제공하는 툴을 활용해 인터넷 상에서 비치는 모습을 더 매력적으로 가꾸어 가며, 사람들은 물리적 현실에서보다 더 매력적이고 영향력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만들 수 있다.



"무엇이 인스타그램을 특별하게 만들었는가?"


  인스타그램은 초창기에 이목을 끌기 위해 저스틴 비버&셀레나 고메스와 테일러 스위프트 등 유명 인사를 끌어들여 성장의 원동력을 얻었다. 이른바 '셀럽'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행보에 주목해 많은 이들이 인스타그램에 진입했고, 그에 따라 세계적 스타들과 스포트라이트를 동경하던 사람들이 실제로 새로이 셀럽의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도 생겨났다. 셀럽의 범위 확장은 인스타그램의 유저 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준 마법 같은 순환적 부스터였다.


유명인이 되고자 할 때 넘어야 하는 진입장벽을 낮추어 주는 인스타그램은
수많은 일반인에게 충분한 진입 유인을 제공했다

  비슷한 의도를 가진 여러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모여들면서, 유저들의 관심이라는 파이를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붙기 시작했다. '좋아요'와 긍정적인 코멘트를 쓸어 담아 셀럽으로 도약하고 싶은 사람들이 독창적인 경험을 순간포착하기 위해 애를 썼고, '셀카'에 갖가지 보정 기법을 동원해 외모의 매력을 어필했다. 관심을 받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내면적 욕망과 경쟁에서의 쟁취 심리가 투영된 사진은, 효율적인 편집·업로드 툴로 공유될 수 있는 무대와 결합해 실로 폭발적인 열기를 뿜어 냈다.


  기존 셀럽과 신규 셀럽이 참여하는 무대에서 컨텐츠가 쏟아져 나왔고, 수많은 이들이 뛰노는 곳인 만큼 그들의 숨겨진 수요를 잡아보려는 광고주들도 속속들이 모여들었다. 브랜드의 노출 빈도를 높여보려는 이들에게 셀럽이 만들어지는 인스타그램은 더없이 매력적인 곳이었다. 제안을 받아 제품이 담긴 사진을 찍음으로써 셀럽과 광고주가 이득을 취하고, 셀럽을 동경하는 수많은 이들의 동조 욕구를 해소해 줄 창구로 올라서며, 인스타그램은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중요한 것은 뉴스나 정보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며, 그들이 세상에 내놓고 싶어 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재미있거나 창의적이거나 아름답거나 가치 있다고 생각해 주는지 여부였다. 예쁜 사진은 좋아요와 댓글과 심지어 금전적 보상으로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평가받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위의 책, p.287)


"인스타그램에 무슨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가"


  인스타그램은 거대한 경기장이자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동영상 서비스와 DM(Direct Message) 기능의 추가가 가파른 성장세에 힘을 보탰고, 샵 기능의 추가로 스크롤을 내리다 우연히 보게 된 트렌디한 소품을 쉽게 주문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이 모든 것이 경기장과 시장이 팽창을 거듭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참여자가 공급자와 수요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관심 쟁탈전의 플레이어가 되어 모두가 시장에서 자신의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이 열렸다. 인스타그램은 참여자를 위한 열린 무대다.


  그러나 어느 무대에도 조명이 닿지 못하는 영역은 존재하는 법이다. 모두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관심 경쟁의 확산은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관심을 받고자 하는 열망과 기대를 배반하는 현실 사이의 괴리는 참여자들의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으며,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 과도한 편집과 보정을 가하며 발생하는 현실과 사진의 간극은 일상의 초점을 자신의 만족에서 타인의 만족으로 옮겨 버린다.


셀럽에 대한 선망과 인정에 대한 갈망은
남을 위해서 자신의 일상을 악착같이 편집하는 삶을 그만둘 수 없게 한다

  다수의 참여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는 전략의 패턴은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외모로 승부하고 싶은 사람은 매력적인 외형을 강조해야 하고, 라이프스타일로 승부하고 싶은 사람은 소품이나 체험의 진귀함을 보여줘야 한다. 다른 이에게로 향할 관심을 자신 쪽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그만큼 희소성이 높은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다수의 참여자는 그 정도로 주목도가 높은 사진을 찍을 기회가 없다. 경쟁적 환경으로 인해 경쟁자들의 평균 스펙이 계속 올라가므로, 결국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자원을 소진한 채 좌절하고 승자가 관심과 돈을 독식하는 구도가 나오게 된다.


  소모적 경쟁이 일어나는 전장이 온라인으로 확대되는 것을 달갑게 받아들일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현실에서의 정신적 피로를 해소하기 위해 피난처로 택한 온라인 공간에서도 유사한 체험을 한다면 지친 영혼이 마음 놓고 있을 곳이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관심이 모이는 곳에는 돈이 유입되고, 그 돈을 가져가는 이들은 소수라는 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다. 안타깝게도 수억 명이 함께 하는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일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


  성공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유입과 그들의 활발한 활동은 인스타그램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이다. 그러나 경기 참여자가 자신의 삶을 타인의 의향에 맞추어 편집하면서 경쟁 압박을 계속 견뎌야 하는 게임이 언제까지고 멀쩡하게 움직일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스타그램 개발진이 대중 심리를 관통하는 혜안으로 하루에도 수억 장의 사진과 수억 원이 오가는 거대한 경기장을 만들어냈지만, 건축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유지와 보수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이어질 관심 경쟁에서 플레이어들이 레일을 이탈하지 않게 하고 경기의 열기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기술적인 해법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제대 후 글쓴이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인스타그램의 성공 비결이 여전히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열광하는 이유를 어떻게든 자력으로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몇 년간 풀지 못했던 의문이 한순간에 해결될 리가 없었고, 결국 본서를 읽고 나서야 인스타그램의 성공 비결에 수긍할 수 있었다.


  앱 속을 수놓는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의 집합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준다. 시각을 자극하는 사진이 끝없이 펼쳐지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알고리즘 가이드는 커스텀마이징한 목록을 상단에 올려놓는다. 한눈에 보아도 트렌디한 복장을 걸친 미남 미녀들이 고급스러운 소품과 함께 풍경 하나를 이루고 있다. 관심이 자연스럽게 금전으로 환산되는 메커니즘을 보고 있으면, 저자의 한 마디가 뇌리에 깊숙이 각인됨을 느낄 수 있다.


인스타그램은 전례 없는 규모로 개인의 삶을 개인 마케팅이나 브랜드 마케팅과 뒤섞어놨다.
(위의 책, p.429)


  인스타그램은 체험부터 우리의 얼굴까지, 삶의 모든 것을 담아내서 의미를 부여한 사진이 타인의 눈을 거쳐 시장 가치가 따라붙는 광경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특별함이 조금이라도 눈에 보이면 카메라를 꺼내 들어 계정을 통해 업로드할 생각을 하지 않는가. 인스타그램은 그들의 무의식을 장악해 일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을' 대상으로 편집하도록 한다. 사진이 상업적 가치와 결부되면, 삶을 1차적으로 편집해 사진에 담은 다음 에디터로 2차 가공해서 결국 삶의 일부를 상품화하는 것과 같다. 소유물과 인간의 능력을 넘어, 삶에도 상품화가 침투하고 있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으나, 현실은 실제로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졌을 정도로, 인스타그램이 일상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이제 생활양식의 일부로 편입되기에 이른 인스타그램을 단순히 앱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나의 경제권이자 문화 현상이라고 정의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젖어 들어 습관적으로 앱을 실행하게 하는 마력을 가진 인스타그램의 진가를 알아본 이라면, 본서의 저자 사라 프라이어가 집념을 발휘해 완성한 인스타그램의 성공사로부터 충분히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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