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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Sep 10. 2021

무교의 귀로 경청한 종교의 목소리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가 전하는 소중한 메시지

  태어나서 한 번도 어떤 종교의 신자였던 적이 없는 글쓴이가, 커 가면서 종교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 이미지는 '성가심'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종종 받아온 귀의 권유를 듣는 것이 귀찮게 느껴졌고, 특히 대학을 다니는 동안 길거리에서 행인을 붙잡고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정체 모를 이들을 뿌리치는 것에도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뉴스에서도 존경스러운 선행을 펼친 성인의 이야기보다 종교를 둘러싼 유혈 사태와 교단 내의 부정부패가 자주 보도되는 여건에서, 글쓴이와 같은 무교가 종교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받기는 상당히 어렵다.


  종교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가진 적은 거의 없었지만,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왜 종교를 믿을까'라는 의문을 마음속으로 품고 있었다. 학교에서 진화론과 생화학적 기제에 의한 생물 신체의 작동을 배우는 학생이 창조론과 윤회, 천국을 믿는 신자들의 시선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학이 종교보다는 더 맞는 세상 설명서인 것 같은데,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종교에 귀의하고 절대적인 존재를 믿으며 정신의 구원을 바라는 것일까? 


  이것 말고도 글쓴이가 가지고 있는 물음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종교와 담을 쌓고 지낸 지가 너무 오래되어 그것에 대해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탓이었다. 하지만 종교에 발을 들인 사람이 40억 명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미지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은 드디어 임계점을 넘어섰다. 종교인들을 이해하기 위해, 알지 못하는 세상을 보기 위해, 그리고 세계사의 거대한 조각을 톺아보기 위해 글쓴이는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를 선택했다.


 


빙하기와 간빙기를 극복하고 사막화현상 속에서도 살아남은 구석기시대의 인류는 자연현상 앞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인간의 나약함을 절감했다. 이는 자연스레 초월적인 자연과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감과 경배로 이어졌다.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 행성B, p.33)
프랑스계 유대인 문화인류학자 에밀 뒤르켕에 따르면, 원시시대 인류가 종교를 가진 이유는 자신의 부족이 속한 집단의 종교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믿는 종교는 종교 자체의 교리가 아니라 일종의 소속감이다.
(위의 책, p.57)


  무교의 입장에서 종교에 대해 생기는 가장 큰 의문점은 '사람들이 왜 종교를 믿는가'일 것이다. 굉장히 단순한 질문이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하면 글쓴이와 같은 사람은 종교의 세계를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사람들이 종교에 입문하는 이유가 단순히 죽음에 대한 공포와 집단에 대한 소속감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기 힘든 영적인 체험을 통해 종교에 귀의하며, 또 어떤 이들은 종교인들의 인품과 선행에 감명을 받아 그들에 동화되기도 했을 것이다. 고통받는 이들의 처절한 삶을 목격하거나 삶의 본질적인 질문에 맞닥뜨려 답을 내지 못하고 고뇌하며 헤매다 종교의 품에 안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특정한 사건이 어떻게 해서 종교에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되는 것인가?


  죽음에 대한 원시인의 두려움, 그리고 뒤르켐이 말했다는 소속감과 신도들의 다양한 입문 에피소드. 이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표현은 이것이 아닐까.


종교는 세상이 내미는 여러 난제에 대해 가장 간단명료한 답을 제시한다

  수렵과 채집으로 먹고살았던 선조들에게 일식과 월식, 태풍과 가뭄 같은 자연현상을 합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었으며, 자연재해로 동족이 죽어나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죽음에 대한 그들의 공포도 매우 컸다. 살아남아 후손을 남겨야 하는 본능이 이식된 생물로서, 생존 열망과 무지의 공포 간의 충돌은 영속적인 불안을 유발했을 것이다. 늘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인류가 종교의 손을 잡은 것은 필연이었다. 종교는 모르는 것이 가득한 세상에서 가장 쉬운 답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종교로 진입하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를 것은 없다. 사후세계와 절대자 혹은 유토피아의 건설법과 관련된 답은 이성의 범주에서 내리기 어렵다. 하지만 신앙에서는 그에 대한 답이 글 몇 줄로 간단히 정리되어 있다. 수학과 과학, 논리학을 총동원해 존재하는지조차 분명치 않은 답을 구하려 애쓰는 대신, 절대자가 건설했다는 세계관을 따르면 삶의 난제에 대한 직관적 해답을 단번에 얻을 수 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 객관적 진리에 최대한 가까운 풀이보다 빠르게 얻을 수 있는 간단한 풀이를 선택할 동기가 충분하다. 종교가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다.



농경생활 이전에 같은 믿음을 소유한 종교공동체가 먼저 이루어져 신전을 짓고 정기적으로 모여 제사를 지내다가, 나중에 농경이 시작되어 함께 모여 살면서 도시국가로 발전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 종교가 …사회체계를 이끈 동인으로 작용해 인류의 발전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이는 농업혁명이 아니라 '종교혁명'인 것이다.
(위의 책, p.56)
인류사에서 종교 갈등으로 인한 전쟁으로 무수한 인명이 살해되었다. 엘 산토 그링고의 《종교로 인한 죽음》에 의하면 1억 1천만 명이 종교전쟁으로 죽었다고 한다.
(위의 책, p.589)

  

  개인의 정신적 탈출구이자 소집단을 동질감으로 묶는 유대로 시작된 종교가 문명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는 것 역시 필연이었다. 종교를 중심으로 더 많은 사람이 뭉칠수록, 종교의 파급력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불어난 사회 규모가 집단을 통제할 강력한 우두머리를 필요로 했고, 권력자는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해 줄 도우미가 필요했다. 그렇게 권력과 종교 사이의 계약이 시작되었다. 삶의 난제를 해결해 주는 선생님으로 시작한 종교는, 삶의 지향점과 사회의 규범을 제시하는 통치자로 도약했다.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자리잡은 뒤로 종교는 세계사를 움직이는 거인이 되어, 제국의 수장인 황제마저 교회 지도자 앞에 무릎 꿇게 하고 수십 만의 남성을 성전에 돌입하게 했다.


종교는 개인의 안식처로 시작했으나 사회에 스며들어
권력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집단의 세계관 그 자체로 진화했다

  종교가 탄생 시점부터 집단의 지배와 팽창을 목표로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집단이 대형화하며 종교는 권력을 지탱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변화했다. 모든 과정이 의도된 것은 아니었으나, 역사적 인과관계가 수없이 축적되면서 종교는 문명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끄는 힘을 갖게 되었다. 삶의 지향점과 집단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규정하는 막강한 파워를 얻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이끈 문명의 발걸음은 세계사의 거대한 명암으로 기록되었다. 믿음을 뒷받침하고 절대자의 뜻에 따라 도시와 신전을 만드는 과정에서 모든 문명이 첫걸음을 뗐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사실상 모든 서양 문명의 원류이며, 유수의 예술 작품과 유서 깊은 철학이 신앙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종교는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유대교 핍박과 잔혹한 십자군 전쟁, 그리고 현대 중동 분쟁의 근원으로서 역사를 피로 물들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교의 양면을 균형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문명의 인도자이자 역사적 광기의 촉매이기도 하다. 종교는 문명을 이룰 수 있는 규모의 집단을 만들게 해 준 존재이며 삶의 난제를 해결해 주지만, '뭉쳐진 믿음에 욕심과 권력이 결합되었을 때 발생하는 광기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난제를 던지는 양면적 속성을 가진다.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우리는 종교에 대한 통찰을 갖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종교는 인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퍼즐 조각이다.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의 숫자는 현재 8억 4천만 명 이상 이며, 특히 이 비중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일수록 더 높아지고 있다. 1950년대 미국인 중에서 종교가 없는 사람은 5퍼센트에 불과했다. … 2001년 14퍼센트, 2013년 19퍼센트, 최근 조사에서는 30퍼센트로 치솟았다.
(위의 책, p.639)


  역사 시대가 시작된 이후 종교는 개인과 사회에 스며들어 항상 엄청난 통제력을 발산해 왔다. 종교적 분석 없이 역사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렇기에 과거의 연장선인 현재를 정확히 이해하기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종교가 세계사에 행사하는 패권은 현대에 이르러 중대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경전은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는 과학에 의해 거침없는 도전을 받고 있으며, 시대적 요구에 맞추어 변화하는 사회 경제 구조와 변하지 않는 경전 사이의 괴리를 메우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신도로서 절대자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따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겠으나, 사회가 생존해야 종교도 존속할 수 있는 법이다. 그리고 변화하지 않는 사회는 도태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원칙을 지키며 유연한 변화를 얼마나 용인할 수 있을 것인가

  문명 수준이 발달함에 따라 인류의 보편 의식이 커져가고 있다는 점도 종교의 입장에서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세계인이 합의한 보편 의식에 부합하지 못하는 교리는 지탄의 대상이 되어, 예전만큼 강한 설득력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꾸준히 많은 신도들을 거느려야 하는 종교에게 외연 확장의 실패란 장기적인 교세 축소와 같다. 현대에 이르러, 종교가 자신들이 가진 특수성 안에 보편성을 담아내야 하는 미션을 추가로 부여받은 셈이다.


  수많은 문명 및 국가와 흥망성쇠를 같이 해온 종교는 다시 한번 역사가 제시하는 도전에 응수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교세의 확장을 놓고 여러 종교가 제로섬 게임을 펼쳤던 이전 사례와 달리, 지금은 자칫하면 모두가 루즈-루즈 게임을 받아들여야 하는 싸움이다. 그러나 몇천 년 동안 존속하며 살아남는 방법을 체득해 온 종교의 전투력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구원을 바라는 수십 억 인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믿음은 결코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인은 무슬림들의 인식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고, 무교인 사람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다름'을 '틀림'으로 바라보는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상호간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꺼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랫동안 누적된 정체성의 차이가 만들어낸 배타성은 단기간에 청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무교이든, 기독교도이든, 불교 신자이든 관계없이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신론자와 무교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인의 과반수는 다양한 종교의 신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시각에 정해진 답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힌두교 특히 샥티교(탄트리즘)에서는 육체를 신이 거주하는 사원이자 해탈을 위한 신성한 도구로 본다. 그래서 탄트라 요가에서는 성을 통해 해탈에 이르는 수행법이 개발된 것이다. 반면에 한 뿌리의 동양종교인 불교에서는 성에 대한 욕망은 극복하거나 절제해야 되는 대상이다. 이런 현상은 서양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반면에 기독교의 뿌리인 유대교는 성을 신의 창조물로 이해하고 하느님이 주신 성스러운 선물로 받아들인다.
(위의 책, p.434)

  

  수학 공식이나 물리 법칙을 제외하면, 세상에 만고불변의 절대 진리란 특별히 존재하지 않는다. 즉, 세상의 대부분은 논쟁의 여지가 존재하는 것들인 셈이다. 각 종교에는 오랫동안 지혜로운 이들이 정해진 답이 없는 것들에 대해 나름대로 설명을 부여해 온 이론이 존재한다. 수천 년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종교들은 그 이론들이 체계적으로 정립된 위대한 사유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모두가 서로 다른 목소리 하나 하나에 독자적인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과 세계관이 다른 이들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그 어려운 길을 택함으로써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엿볼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만큼, 대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빌려 지혜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무지는 불안과 단절을 낳고, 앎은 배려와 연결을 낳는다

  우리는 다른 이들에 대해 알아감으로써 더 넓은 세상과 이어질 수 있으며, 종교에 대해서도 예외는 없다. 관심을 가지고 지평의 확장을 갈구하는 이들이 시간을 투자한다면, 본서는 아낌없이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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