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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Oct 14. 2021

동경과 욕망의 결정, 보석 이야기

『세상이 탐한 보석의 역사』에서 경제의 면면을 들여다 보다

  인간이 오감 중 시각에 가장 많이 의존한다는 것을 일상에서도 쉽게 절감할 수 있다. 외모지상주의나 좋은 디자인을 가진 가구, 인테리어에 대한 열망이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겉모습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에 죄책감이나 위화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장점부터 위험 요소에 이르기까지 뭐든 눈으로 판별하려 하는 것은 DNA의 설계이기 때문이다.


  많고 많은 것 중에서도, 우리가 시각에 가장 크게 휘둘린다는 것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보석이 아닐까 싶다. 무수히 쌓여 있는 돌 중에서도 유달리 고운 빛을 내는 보석은 자연계에서 그 희귀성이 돋보이는 것은 맞지만, 사실 그것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까 하면 마땅한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단순히 보기 좋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빛나는 돌을 특별 대우한다.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역사를 움직이는 것의 시작이다. 『세상이 탐한 보석의 역사』는, 눈도 없고 팔다리도 없이 그저 남다른 외양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연인을 위해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하는 관례 이상으로 보석들이 어떤 방식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지 소개하고 있다.


  


유리가 개발되지 않은 신대륙에서 놀랄 만큼 투명하고 선명한 색을 지닌 데다 대칭이 완벽히 맞는 원통 모양의 유리구슬은 분명 무척 아름다운 보석처럼 보였을 것이다. 원주민들은 유리구슬을 훌륭한 보석으로 받아들였고 1626년 5월 4일, 작은 굴 섬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팔렸다. 섬을 판 원주민들은 거래 당시는 물론이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거래에 매우 만족했다고 전해진다.
(에이자 레이든 著 『세상이 탐한 보석의 역사』, 다른, p.60~61)


  원시인들이 흑요석을 거래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집단 단위로 교역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돌 조각을 사려고 배를 타는 위험을 감수하는 미친 짓을 왜 했나 싶을 수 있지만, 흑요석은 칼이나 화살촉부터 장신구까지 만들 수 있는 다재다능한 재료였다. 희소성이 있는 데다 쓰임새도 많았기에 리스크를 짊어질 이유는 충분했을 것이다. 진귀한 것에 대한 열망은 때로 이보다 특이한 형태로 표현되기도 했다.


  현시점에서 보면 유리구슬 하나와 맨해튼 섬을 바꾼 원주민의 선택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건의 가치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섬과 구슬의 교환이 합리적이라고 느껴지게 했다. 지반이 화강암 재질이라 농사를 짓기도 힘들며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굴밖에 없는 섬은, 인디언의 기술로 복사가 불가능한 예쁜 유리구슬 하나 이하의 가치밖에 없었던 것이다.


희소성은 제3자에게 말도 안 되는 것으로 보이는 거래를
당사자 간에서 말이 되게 만든다

  물론 그들에게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었다면 이런 거래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를 이미 봐 놓고 사후적으로 과정을 평가하는 것은 합리적인 처사가 아니다. 이 거래는 누군가에게는 흔한 공산품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유일한 보물인 유리구슬과, 누군가에게는 쓸모없는 바위 섬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상업적·군사적 요충지인 맨해튼의 교환이었을 뿐이다. 보석은 희소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른 잣대로 평가될 수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는지 알려준다.



진실은 이렇다. 다이아몬드는 희귀하지도 않고 그 자체로는 가치도 없다. 다이아몬드가 가진 가치는 대부분 소비자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지위적 재화 이론은 가치 있는 물건이라서 가지고 싶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기 때문에' 물건의 가치가 생긴다고 말한다.
(위의 책, p.71)


  희소성은 돌을 보석으로 만들고, 보석이 냉장고나 세탁기보다 비싸지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경제학에서 흔히 '정보의 비대칭성'이라 부르는 것을 활용하면 없었던 시장 가치도 만들어진다.


  남아프리카의 보츠와나만 해도 1년에 2000만 캐럿이 넘는 다이아몬드를 생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시중에서 팔리는 다이아 반지의 가격에 의구심을 품을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본질적으로 연필심과 입자 구조만 다른 탄소 덩어리이며, 우리가 이 보석을 써먹을 수 있는 곳은 자기 과시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확실히 그러할 것이다. 사실 다이아몬드는 넘쳐나지만 공급량이 제한되어 희소성이 인위적으로 조절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회의를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다이아몬드 악세서리를 선망하고, 빛이 나는 탄소 덩어리에 수백 수천만 원을 쓴다. 신체 어딘가에 장신구로 달아서 길거리에 나가, 다른 이들의 눈길을 받아야만 기능을 발휘하는 비실용적인 재화를 거래하는 인간의 행태란 참 묘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꼭 집단적 어리석음의 표상에 불과한 것만은 아니다.


보석은 경제적 사고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창구이다

  화폐나 보석이나 본질적인 가치가 거의 없는 것은 매한가지이다. 철은 여건만 갖춰진다면 숟가락부터 건물의 뼈대까지 수많은 것들의 재료로 쓸 수 있지만, 다이아몬드는 무인도에서 쓸모가 전혀 없다. 가치의 원천을 유용성에만 국한하지 않고 희소성으로 확장하는 행위는 일견 사상누각에 불과해 보인다.


  하지만 무언가에 새롭게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은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할 여지를 만들 수 있다. 보석을 '좀 빛나는 돌'이 아니라 '고귀함을 나타내는 재화'로 취급하면 보석 시장을 만들 수 있으며, 새로 생긴 시장은 기존에 없었던 가치를 창출해 경제적 파급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500만 원의 다이아 링은 탄소 결정에 월급을 부으려는 욕망과 선망을 표현함과 동시에, 본질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도 수백 수천 배의 시장 가치를 창출하는 상상력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오늘날 남성용 손목시계 시장의 규모는 다이아몬드 약혼반지 시장만큼이나 크다. 명품 손목시계는 남성의 지위를 보여주는 최고의 상징이다. … 하지만 다이아몬드 약혼반지와 달리 손목시계가 특별하거나 희귀하다고 주입하려는 독점기업은 없다. 단지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물건에 지나지 않는 손목시계에 감정적, 성적, 정신적 의의를 부여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위의 책, p.437)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필립 파텍의 명품시계가 몇억 원의 가치를 지닌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세상에 이런 사람만 있었다면 명품시계는 몇억 원은커녕 몇 만원대에 거래됐을 것이다.하지만 고가의 시계가 소유자에게 안겨주는 사회적 인식의 상승 효과를 누리기 위해, 지구상의 누군가는 5억 원을 주고서라도 최고라 불리는 제품을 산다. 명품 시장은 그런 이들의 지불 용의에 의해 유지된다.


  모든 보석에 이런 원리가 작용한다. 우리 모두는 전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평가 기준도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다이아몬드가 달린 고가의 액세서리를 연인에게 주려는 남자를 보고 '과대평가된 상품을 사주는 바보 같은 소비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남자는 연인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여자친구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줄 장신구라면 얼마든 돈을 쓸 의향이 있다. 이런 사람이 없으면 액세서리 시장은 소멸할 것이며, 업계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앉을 것이다.


합리성, 욕망, 선망의 기준과 대상이 천차만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가끔 잊곤 한다

  모든 사람들이 가진 욕망과 동경의 대상은 서로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 부분으로부터 나온다. 보석은 이를 시사하는 가장 친숙하고 적절한 사례가 아닐까 한다.


  중세 유럽에서 시작해 프랑스 혁명을 거쳐 현대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은 역사에 흥미가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진입장벽이 높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무수한 돌들 속에 보석이 섞여 있듯이,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는 수많은 사건 중 보석이 엮인 에피소드만 들여다 보는 것은 여러분의 흥미를 자극하는 데에 충분할 것이다. 교양과 흥미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본서 『세상이 탐한 보석의 역사』에 소중한 주말 오후를 투자해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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