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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Nov 09. 2021

능력주의, 그 이상과 현실의 비정한 괴리

『공정하다는 착각』이 담은 사회의 무거운 과제

  최근에 서점에 들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에서 시대의 흐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가장 잘 팔리는 책들은 주식이나 가상화폐, 부동산 관련 서적으로 자산을 증식할 수 있는 경험자들의 노하우를 소개하는 부류다. 그리고 시사 구역에서는 막강한 재력과 권력을 가진 이들의 그림자가 세상에 어떻게 드리우고 있는지 알려주는 책들이 꼭 몇 권쯤은 배치되어 있다.


  책을 사러 서점에 오는 사람들을 '요즘 사람들'을 대표하는 표본 집단으로 삼는 것이 다소 부적절함을 내포하는 행위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갖가지 통로를 통해 돈을 벌고 싶어 자산 증식의 비결을 터득하기 위해 책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고,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 정확히 알고 경계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최신 경향을 대표하는 책들 가운데에서도,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 최근 몇 달 동안 서점 가판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 역시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꾸준한 노력, 공정한 경쟁, 정당한 보상을 표방하는 능력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 사이의 괴리는 대다수 젊은이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스며 있기 때문이다.


  자산 증식과 영향력 있는 이들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그 괴리로 느끼는 분노가 큰 젊은이 중 한 사람으로써, 글쓴이 역시 샌델의 저서를 집어들었다.




요즘 우리는 성공을 청교도들이 구원을 바라보던 방식과 비슷하게 본다. 행운이나 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얻은 성과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이다. … 내가 많은 세속적 재화(소득과 재산, 권력과 명예)를 손에 넣는 데 스스로 책임이 있다면, 그러한 '취득의 자격'이 있을 것이다. 성공은 미덕의 증표다.
(마이클 샌델 著 『공정하다는 착각』, 와이즈베리, p.105)


  생존을 갈망하는 DNA가 있는 한, 물질적인 풍요에 이끌리는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안정적인 생존과 자손 번창에 직결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정된 자원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풍요를 얻으려면, 결국 다른 이들과 겨뤄 승리해 자원을 쟁탈해야 한다. 더 많이 갖기 위한 경쟁은 인간으로서 죄책감을 느껴야 할 만한 짐승 같은 일면이 아니라, 생존과 안정을 추구하는 본능의 편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의 정도는 시장 가치 창출 능력으로 환산되어 평가되곤 한다. 시장 가치는 소비자의 수와 지불 금액으로 규정된다. 많은 이들이 그저 실없다고 생각하는 컨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이들의 지불 의향을 자극한다면, 학생을 잘 가르치는 공립학교 교사나 인명을 구하기도 하는 소방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돈을 많이 벌어들였다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재화와 서비스에 돈을 내줄 소비자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면 소비자들이 그것을 소비할 만하다고 생각했기에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한 것이므로, 시장에서의 가치 창출량이 사회 공헌도와 다름없다는 주장은 굉장히 합리적으로 들린다.


  단순히 지불의향의 합으로 사회 공헌도를 결정하고자 하는 방법은 간단명료하다. 윤리와 보람과 같이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의 경제적 환산도 필요하지 않으며, 오로지 실질적인 거래 행위를 통해 남겨진 숫자를 바탕으로만 평가된다. 사람들은 시장 가치의 창출과 사회적 공헌도를 등가로 치는 것에는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경쟁의 승리와 그에 따르는 보상에 대한 열망으로 인해 시장에서의 성취를 개인의 노력과 가치 실현의 척도로 삼는 현 시스템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싱어의 부정 입학 서비스 요금은 결코 싸지 않았다. 어느 유수 로펌 회장은 싱어의 돈을 받은 센터 감독관이 딸의 대입 시험 성적을 알맞게 조작해 주는 대가로 7만 5,000달러를 냈다. 어느 가족은 싱어에게 120만 달러를 주고 그 집 딸이 축구 특기생으로 예일대에 들어가게끔 했다. 놀랍게도 그녀는 축구를 해본 적도 없었다.
(위의 책, p.28)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의 모험적이고 탐욕적인 행동이 세계 경제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 갔다. 세금을 털어서 막대한 구제금융이 동원되었다. … 그러나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은 얼마 뒤 스스로에게 수백억 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어떻게 그토록 후할 수 있었으냐고 질문받자, 골드만삭스의 CEO였던 로이드 블랭크페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위의 책, p.81)


  그러나 소수의 엘리트에게 막대한 자원이 집중되어 있는 현대 경제를 살아가며 사람들은 상충하는 감으로 인해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시장 참여자들은 능력에 따라 보상을 분배받는 능력주의 메커니즘의 이상을 찬양하지만, 이상이 실현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며 과정의 정당함을 왜곡하는 요인에 분노한다. 뒤틀린 경쟁으로 인한 분배의 왜곡과, 보상의 지나친 편중으로 인한 박탈감에 분개하는 것이다.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경쟁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객관성이 필요하다. 그래야 사람들이 결과를 보고 납득할 수 있다. 지금 세상이 객관성을 납득시키는 방식은, 철저한 시장 경쟁을 통해 결정되는 가치 창출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계량화한 결과에는 레이스의 주자들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과정에서 그러한 불투명성에 의문이 제기되면, 사람들은 결국 과정과 결과 모두에 승복하기를 거부하게 된다.


  시장 경쟁은 결과에 따른 보상과 함께, 이전 회차에서 승리한 이들이 그 다음 차례의 경기가 벌어질 운동장을 자신들의 의도에 따라 편집할 수 있는 권리까지 부여한다. 효율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현대 시장 메커니즘이 성문화한 법 이외의 조정 장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 경쟁에서 많은 것을 얻지 못한 다수 역시 능력주의와 시장경제의 효용에 동의하지만, 경쟁이 반복될수록 변형되는 경쟁 과정과 왜곡되는 결과에는 반발심을 표할 수밖에 없다.



…하이에크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게 아닌 생득적 능력에 따라 소득을 얻는다는 관념에 반대했다. 또한 그것은 수요와 공급의 우연성에 의존한다고도 했다. 내가 가진 재능이 희귀한지 흔해빠졌는지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시장에서 갖는 위치에 따라 나의 소득은 결정된다.
(위의 책, p.220)


  현대인들은 공정, 정의, 형평을 갈구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보상이 결과적으로 불균등하게 분배되는 것에는 승복할 수 있지만, 그것은 과정의 공평함이 보장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인 동일한 출발선은 실현이 불가능하다. 모든 일들은 다른 일들과 인과관계로 얽혀 있으며, 출발선이 사람마다 다른 것 역시 이전에 이루어졌던 무수히 많은 선택과 우연의 합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능력주의 시스템이 사람들의 열망을 자극해 창조적인 성과를 유도하는 훌륭한 유인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능력주의의 맹점 역시 그러한 강점만큼이나 치명적이다. 통제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균일한 스타팅 라인과 공정한 게임 룰을 유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승자들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다음 경쟁에서 승률을 높일 수 있으며, 승리에 따르는 보상이 매우 큰 경우 이들이 갖가지 꼼수와 불법적 수단까지 동원할 이유가 생긴다.


승자에 대한 보상은 어디까지로 규정되어야 하는가?
패자에 대한 배려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승자들이 더 큰 보상을 가져간다는 조건에 반대할 참여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승자가 가지는 어드밴티지의 의미가 확장될수록 패자가 다음 회차에 승리할 가능성은 줄어든다. 뚜렷한 부의 대물림, 권력과 재력을 이용해 법과 사회 윤리를 농락하는 행태로 추가적인 이익을 보려는 유혹이 커질수록 경쟁의 과정과 결과는 설득력을 잃는다. 다수가 정당한 승부를 펼칠 기회와 권리마저 잠식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능력주의를 적용한다면 승자독식을 피할 수 없다. 돈이 모든 기회에 대한 접근 권한을 제공하므로, 승자는 시장에서 챙긴 보상을 다음 승부에서 승산을 높일 방법에 투자할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승자에게 만족할 만한 보상을 안겨주면서, 패자의 기회를 지켜줘야 한다는 미션은 굉장히 난해하다. 그러나 다수자의 불만을 누그러뜨리지 못하면 체제는 붕괴를 면할 수 없다. 능력주의는 해결이 가능한지도 알 수 없는 초고난도의 과제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성공하면 우리가 잘한 덕이며, 실패하면 우리가 잘못한 탓이다. 사기를 올려주는 말 같지만, 개인 책임에 대한 집요한 강조는 우리 시대의 불평등 상승 추세에 대응할 연대 의식이나 연대 책임을 떠올리기 어렵게 한다.
(위의 책, p.287)


  저자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능력주의의 부작용은, 소득과 자산이 능력에 비례한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사회적 위신마저 뒤처진 이들로부터 박탈해간다는 점이다. 승자가 돈뿐 아니라 명망과 자긍심까지 모든 것을 쓸어담는 극단적 승자독식주의를 만든다는 것이다.


  '능력주의의 폭정'이라 정의된 이러한 악순환이 무슨 결과를 불러올지는 자명하다. 사회 다수와 전혀 다른 것을 누리고, 상류층 네트워크를 형성해 '그들만의 리그'를 굳힌다면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의 눈에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과 동일한 세상이 비추고 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같은 세상을 보지 않는 이들이 한 사회에 살아가는데, 과연 그 속에서 공동체 전체를 위한 바람직한 정치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능력주의의 함정에 대한 고찰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영구적인 공존 가능성에 대한 거대한 질문으로 직결된다

  능력주의 논쟁은 본질적으로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과, 그 욕망의 집합에 브레이크를 거는 윤리와 동정심이 세상에서 격하게 충돌한 결과다. 경쟁과 효율의 기치를 내걸어 시장 가치를 철저히 계량화하는 냉혹한 판도에 풍파를 일으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장 평가로 승부에 객관성을 덧씌움으로써 '이성적 논리'를 들이미는 능력주의의 냉정함에는 상당한 마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능력주의에는 분명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 공정성에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이슈가 나올 때마다 광범위하고 격렬한 비판 여론이 비등하는 것으로부터, 능력주의의 작동 양상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쉽게 알 수 있지 않은가. 능력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 체제의 효율성과 승자에 대한 보상의 적합성, 패자의 권리에 대한 보호가 이루는 삼각형 사이에서 장기적인 사회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무게중심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어떠한 추상적 대상에 윤리와 당위성을 투영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현대의 경제 담론은 당위적인 명제라는 것이 작용하지 않는 경제 영역에서도 공정, 정의, 형평의 가치를 이룩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시장경제는 아무런 외부 간섭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유의미한 불평등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더 가지고 싶은 목표를 성취할 방법을 왜곡된 시스템이 차단해 버리고, 분배되는 경제 성장의 과실이 보여주는 불균등함이 임계점을 넘어가자 사람들은 기본적인 법규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있다. 공정 경쟁이라는 이상적인 목표를 이루는 데에 현행 법 체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경쟁에 지친 사람들은 기회와 불공정에 어느 때보다 예민해져 있다.


  시장 논리에 의해 점점 많은 것에 자유 경쟁과 실적에 따른 보상 체계가 도입되고 있다. 우리는 점점 많은 경쟁을 소화해야 하는 처지에 있으며, 꾸준한 자기개발과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실력이 새로운 덕목으로 자리잡았다. 경쟁이 전방위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원대한 초심을 잃지 않으려면, 참여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경쟁 구도를 유지해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 일상과 바쁜 삶에 파묻혀 지내면서,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능력주의에 매몰되기 쉽다. 그러나 치열하게 살아가며 개인적인 영달을 이루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능력주의가 자정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할 사회적인 제어 장치의 설치에 합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 아래에서 우리가 시민으로서, 경제 주체로서 누리는 권리에는 이러한 과제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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