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를 실패가 아닌 배움으로 만드는 시간
통근 문제로 인해 부모님께 손을 벌려 차를 급히 구한 뒤, 실질적인 운전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출퇴근을 시작하게 됐다. 집에서 그렇게까지 먼 거리는 아니었으며 비교적 한산한 길을 주로 다녔지만, 정식으로 첫 출근을 했을 때의 긴장감은 첫 운전의 긴장감과 섞여 서로를 배가하고 있었다.
쓸 곳이 있겠다 싶어 연수 기간에 쓰던 책들을 전부 가방에 넣어둔 채, 면접시험을 봤을 때 이후로 가장 말끔한 복장을 입고 면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바로 직원 분들께 인사를 드리고, 역할 인수인계를 위해 새롭게 부여받은 자리로 이동했다.
다행히 신입 공직자에게 주어진 업무는 그렇게 범위가 넓지 않았으며, 담당 인수인계를 해 주신 분 역시 굉장히 좋은 성품을 가지신 분이었다. 모르는 것밖에 없는 신입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기 위해 평소보다 일을 빠르게 처리하고, 민원 처리와 인수인계를 오가며 3중 업무를 자연스럽게 진행하셨다.
경력이 많지도 않고 나이마저 비슷한데도 그토록 맡은 일을 막힘없이 처리하는 모습에 의욕이 자극되는 것을 느꼈다. 빠르게 일을 배워서 우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벗어나고, 궁극적으로는 저렇게 프로페셔널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구성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안내받은 대로 매뉴얼을 읽어서 기초 업무를 파악하고, 복잡한 업무는 선배가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습득해 갔다.
실수를 하는 것, 그리고 실수를 지적받아 당혹스러워지는 상황에 처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기에 쉬운 일들을 빠르게 배우는 것만큼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팀장님께 공문 작성과 관련하여 지적을 받은 것 외에는, 신입임을 감안하면 이상하리만치 지적받은 일이 없었다. 한산한 곳에 있는 행정복지센터였기도 했거니와 업무 자체가 처리 건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새내기로서 기대할 수도 없었던 평탄한 일상이 펼쳐졌다.
신입 공무원이 은근히 갖고 있었던, 토대가 부실한 자신감과 안도감이 무너지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임용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발령이 이루어졌고, 그로 인해 담당자가 연쇄 이동을 하며 먼 곳으로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위치만큼이나 하는 일의 성격도 완전히 다른 민원 부서로 옮기면서, 희미하게나마 존재했던 새내기의 경험치는 다시 첫인사를 나눴을 때의 레벨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임용된 지 몇 주 되지 않아 맞이한 두 번째 인수인계는 첫 번째보다 필요한 학습량이 훨씬 방대했다. 커버하는 업무의 종류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았고, 민원의 경우에 따른 세부 조항도 이전보다 세밀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역사와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암기에는 이골이 나 있었으나, 한눈에 봐도 쉽게 숙달할 수 있는 분량이 아니었다.
업무별 매뉴얼을 인쇄해 시간이 날 때마다 읽으며, 어떻게든 내용을 전부 외우려고 애썼다. 물론 하루아침에 그 많은 양을 소화하는 것은 무리였고, 외운 내용마저도 민원인을 막상 상대했을 때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잘못된 전달을 막기 위해서는 매뉴얼에 항상 의존해야 했다. 민원 업무를 보러 오신 분들께 '일을 깔끔하게, 똑바로 처리를 못한다'는 인상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일을 잘못 진행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집중적인 인수인계 기간이 끝나고도 한동안 틈만 나면 매뉴얼을 쳐다보고, 매뉴얼에서 원하는 내용을 빨리 못 찾으면 전임자 분을 부르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세부적인 매뉴얼이 굉장히 많은 주민등록 업무를 할 때면 항상 전용 프로그램에서 처음 듣는 단어가 튀어나오곤 했고, 문서를 발급받으러 오신 분의 자격에 따라 드려야 하는 각종 신청서의 종류를 혼동해 지적받은 경우도 자주 있었다.
실책을 저질러 지적받는 것을 무척이나 꺼리는 이에게, 모르는 것의 향연과 실수의 퍼레이드보다 자극적인 정신적 데미지는 없었다. 하지만 신입이 정신을 차릴 만큼 강한 임팩트를 가져온 시련은 따로 있었다.
무인 민원 발급기가 있는 행정복지센터에서는 민원인이 용무에 맞게 비용을 지불하고 문서를 가져가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민원 부서 공무원이 요청을 받아 신분증을 확인한 뒤, 필요한 것을 인쇄하고 전달한다. 그래서 무인 발급기가 없는 곳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인쇄 상태를 잘 확인하고 민원인에게 서류를 전달해야 한다.
하지만 신출내기는 이런 당연한 전제를 모두 깨뜨려 버리고 말았다. 평소보다 민원 유입이 많았던 어느 날, 민원인 뒤에 늘어진 줄을 보며 조급한 나머지, 신분증을 돌려 드리지 않고 서류를 전달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여러 장의 서류를 인쇄하는 동안, 주민등록 등초본의 매수를 잘못 계산하여 특수용지가 아닌 A4 용지가 섞여 들어간 줄도 모르고 유효하지 않은 서류를 전달하고 말았다.
민원대 앞에 있던 긴 줄이 20분 만에 사라지고 나서 안도보다 쇼크가 먼저 찾아온 것은 물론이다. 본 적이 있는 사람의 사진이 실린 신분증이 문서철 옆에 놓여 있었다는 것을 안 순간 느꼈던 당혹감은, 그 사람이 차로 3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서 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극도로 증폭되었다. 심지어 그때는 서류를 잘못 전달했다는 것조차 몰랐던 시점이었다.
다행히 빠르게 연락을 취해 신분증은 다시 주인에게 돌아갔지만, 백지에 내용이 적힌 마지막 장이 섞인 주민등록 등초본은 제출처까지 도달하고 말았다. 이미 오전에 저지른 실수로 신경이 곤두서 있던 상태에서, 그 기관의 담당자로부터 걸려온 연락으로 인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헛걸음을 하고 마신 그분께서는 굉장한 인격자였고, 그 덕에 전화로 날 선 몇 마디 대신 너그러운 용서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다.
민원 업무로 이동한 직후, 일련의 해프닝으로 퇴근을 하고 나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적이 많았다. 스스로에게 실망할 만큼 어이없는 것부터 미리 알아둘 수 있었던 것을 놓쳐 발생한 부류의 것까지. 각각의 실수에 색깔을 입힌다면, 잔실수들만으로 스펙트럼을 만들 수 있겠다 싶을 정도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곤혹을 통해 굵직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모른다는 것 자체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지만,
무지의 지속으로 인해 문제를 키웠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다
실수를 미래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배움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그것을 지적받는 것을 유난히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로서, 민원 업무 초기에 겪었던 일들은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순간을 나누어 생각하면 분명 유쾌하지 못한 일들이었으나, 그 일련의 사건이 가진 의미를 조합해서 해석할 줄 알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그것이 삶에 어떤 울림을 가져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괴로운 경험은 들이킬 때는 씁쓸했으나 결국 삶을 건강하게 해 줬던 것이다.
값진 교훈을 얻었을 무렵, 새내기는 어느 정도 유연한 민원 대처가 가능할 만큼 경험치가 누적되어 있었다. 우여곡절을 넘어선 일상은 대체로 평화로운 색채를 띠고 있었고, 어느새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늘 현 상태에 불만을 가지는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과연 그 말 그대로였다. 임용된 지 반년도 안 된 신입 공무원은 하루 8시간 노동과 매달 20일에 나오는 봉급이 주는 안정감에 적응할 때쯤, 다시 캠퍼스 라이프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향수가 안정감에 대등해질 만큼 피어올랐을 무렵, 청년의 삶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