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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Jul 10. 2021

카카오뱅크의 '창조적 파괴', 그리고 그 함의

『kakao와 NAVER는 어떻게 은행이 되었나』에 비치는 세상의 격동

  20세기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가 남긴 유명한 말 중 사회와 경제 발전의 핵심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자 가장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것이 '창조적 파괴'이다. 서로 모순이 되는 단어가 뭉쳐 있지만, 이것만큼 진리에 가까운 말도 드물다. 창조적 파괴란 기술의 거듭되는 발전(창조)으로 기존의 시스템이 신식으로 대체(파괴)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본래 이러한 과정을 주도하는 기업가의 도전 정신과 발전에 따라 창출되는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만들어진 어구다.

  

오늘날 사회의 모습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기술들은 이전 세대의 낡은 기술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버리고 우리 삶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다. 정보 통신의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 인터넷, 전화나 메시지부터 시작해서 즐길거리(게임, SNS 등)와 결제 기능까지 겸하고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 스마트폰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는 현대인은 팔과 다리가 모두 묶여버린 것과 다름이 없으며, 그 둘이 없는 세계는 19세기의 사회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인류사를 관통해 온 창조적 파괴의 누적이 개인의 생활 속에 스며든 의미는 단어 하나로 담아내기 힘들 만큼 크다.



글쓴이의 스마트폰 카카오톡 화면 캡처


  2021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2011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못한 개념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현금 대신 카드를 사용해서 결제하는 것만으로 편리하다고 여기던 사람들은, 10년 만에 스마트폰을 결제 단말기에 갖다 대는 것만으로 몇 초만에 결제가 완료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2011년은 카카오톡에 선물하기 기능이 막 생겨났던 시점이지만, 이제 카카오의 이름을 딴 인터넷 뱅킹 브랜드가 주식 시장 상장을 앞두고 있다. 기술의 한계, 발상 전환의 부족으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감내해 왔던 불편함이 10년 만에 빠르게 해소되어 왔고, 그에 따라 당연하게 생각되던 일상의 조각들도 ATM(혹은 계좌이체)에서 '토스'와 '카카오뱅크'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kakao와 NAVER는 어떻게 은행이 되었나』는 세상의 이러한 다이내믹한 변화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밀레니얼(세대)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서비스 자체를 극도로 잘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몇몇 핵심적인 기능을 어떻게 완벽하게 잘 만들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kakao와 NAVER는 어떻게 은행이 되었나』, 미래의 창, p.216)

  

  저자 김강원 씨는 핀테크 회사에서 경력을 쌓으며 사업 기획을 담당한 적이 있다. 젊은 세대에 속하는 만큼 시대의 젊은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체감하고, 어떤 프로젝트를 시행해야 기업의 이윤 창출에 도움이 될지를 오랜 시간 고민해 왔을 것이다. 그러한 고뇌의 시간은 책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자신 있게 낼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을 만들어냈다. 저자의 서술은 경제가 아무리 역동적으로 움직여도 모든 서비스의 시작은 결국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불변의 진리에 맞닿아 있다.


"마이너스의 미학. 당연시되는 불편함을 혁파하라."


  핀테크 분야 대표 주자 카카오뱅크의 전략은 단순 명료하다. 기존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간편한 루틴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게 함으로써 소비자가 느끼는 피로감을 최소화하는 것이 우선적인 목표이다. 공인인증서를 발급하고 설치해 금전적인 거래를 할 때마다 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했던 소비자의 불편함은, 간편 비밀번호 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게 했다. 여러 가지 앱으로 분산돼 있는 서비스로 인한 불편함은 예적금부터 주식 투자, 신용대출까지 망라한 다기능 앱의 개발로 해소했다. 각 기능을 사용할 때 앱의 작동 속도를 최대화한 것은 덤이다.

  

  원스톱 서비스의 무대를 온라인으로 전환해, 사람들이 스마트폰 터치 몇 번만으로 원하는 서비스를 즉각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은행 점포에 갈 필요와, 여러 앱을 설치할 필요를 없애버린 혁신적 패러다임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사람의 뇌에 한 번 편리함이 각인되면 이전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혁신이 역사의 궤도를 어느 방향으로 돌려놓을지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밀레니얼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에서 염두에 둬야 할 요소가 몇 가지 더 있다. 첫째,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 둘째, 이 서비스를 써야만 하는 차별화된 이유를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위의 책, p.216~217)


 소비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기능 위주로 간소화하여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앱으로 정착시킨 것 역시 굉장히 효과적인 전략이다. 소비자의 사용 빈도를 높게 유지하고, 소비자를 앱에 오래 머무르게 하면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통로로 수입이 창출될 것임을 간파한 것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타사가 제공하던 신용정보 조회 시스템과 해외 주식 투자 서비스까지 기능을 확장하면서, 소비자들의 수요에 철저히 맞추어 가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빅데이터 활용이 생존 전략의 관건이 된 시대에, 소비자들로부터 얻은 데이터를 집계해 인기 서비스에 진력한 것이 실적으로 직결되고 있다.


  경쟁자들의 강점을 빠르게 도입하는 것과 더불어, 인기 있는 자사의 캐릭터를 활용한 체크카드를 발급해 소비자들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 타사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도입해 신규 유저를 끌어들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고유한 강점도 살려 기존 고객들의 로열티를 높여가는 투트랙 전략은 카카오뱅크의 숨겨진 강점이다. 어느 소비자가 보아도 '이런 앱은 카카오뱅크밖에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것이, 출시 후 2년도 안 되어 흑자 전환에 성공한 브랜드의 비결이다. 뱅킹 시스템의 흐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지만, 경쟁사가 물살에 떠밀려 내려가는 동안 카카오뱅크가 급류를 이용해 업계의 강자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핀테크의 핵심은 기술 혁신으로 소비자에게 최대한 편의성을 제공해 서비스에 흡인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시간을 절약해줄 새로운 체계에 환호하지만, 동시에 기존 체제에서 당연시되던 서비스를 제공하던 이들은 역사의 뒤편으로 서서히 사라져 간다. 막강한 핀테크의 위력 앞에 많은 은행들이 오프라인 점포를 줄여가고 있으며, 기계적인 일을 수행하던 직원들이 업계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제 오프라인 은행들은 카페와 결합된 형태로 따뜻한 분위기를 어필하거나, 베이커리와 결합해 바쁜 직장인들의 배를 채워줄 수 있는 다목적 업체로 변화해 살아남을 길을 개척하고 있다(본서 p.257~258).


  산업혁명 이후 역사에서 계속 반복되었던 모습은 오늘날 더 빠른 속도로 재생되고 있다. 창조와 파괴가 동시에 진행되는 경제에서 누군가는 창조의 주도자가 되어 시대 흐름을 이끄는 혁신의 아이콘이 되지만, 누군가는 파괴의 희생자가 되어 새로운 생존 방식의 모색을 강요받는다.

 

"사람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핀테크는 많고 많은 경제 분야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역동적인 핀테크 업계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고 의미가 깊다. 여태까지 그래 왔듯이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빠른 속도로 자동화할 것이며, 그에 맞서 사람들은 효율화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생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쓴이가 끊임없이 책을 읽고 생각하며, 세상의 흐름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이것에서 기인함을 인정한다. 본서가 이 글의 소재와 글을 쓸 동기 모두를 제공한 셈이다.


  위 책의 잠재적 독자들은 저자를 통해서, 핀테크 혁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꿔가고 있는지에 대한 평소의 감각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모바일과 금융을 결합한 선진국 기업들의 활약상과, 카드 결제를 건너뛰고 현금 결제에서 바로 모바일 결제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신흥국들의 경제 재편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나 그런 단순한 정보 취득보다는, 기술 발전으로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있는 사회상을 느낌으로써 여러분에게 의미 있는 울림을 안겨주는 것으로 본서가 더욱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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