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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Mar 18. 2022

7년 전 떠나보낸 꿈과의 운명적인 재회

공무원, 브런치와 만나다

  고등학교 시절 장래희망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받았을 때, 친구들에게 전하는 대답과 장래희망 조사에 적어내는 답변이 일치하지 않았던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서로 편하게 말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앞에서는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꿈을, 희망 학과와 연결되는 생활기록부에 가감 없이 적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한 괴로움을 피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이다.


  브런치에 입문했을 때, 대학 입시를 위해 '해야 하는 것'을 '하고 싶은 것'처럼 위장하는 불편함을 감내했던 때를 떠올렸다. 번역가, 작가, 시인을 동경했지만, 그런 목표를 지지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본인마저도 글을 쓰는 일이라는 꿈을 지켜줄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결국 소년의 '공식적'인 장래희망은 투자분석가가 되었고, 결별한 첫 꿈에 엮인 추억은 무한히 반복되는 국영수 공부에 밀려 어딘가에 파묻혀 버렸다.


  하지만 소년의 인생은 7년간 기묘한 궤적을 그린 끝에, 자석에 이끌리듯 다시 첫 꿈 앞에 도달했다.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 먼저 이별을 고했던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어 오래 전의 꿈을 찾아 다시 자신의 삶을 이끌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다소 비굴한 요구였음에도, 글쓰기는 돌아온 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한 줄, 한 문단씩 늘어난 글이 어느새 계정의 첫 번째 글이 되었다.




  연수가 끝난 뒤에도 퇴근 후에 책을 읽는 습관은 유지하고 있었다. 몇 달간 여러 권을 읽어 내려가며 실타래처럼 얽혀 있던 생각들을 한 올씩 풀어내는 시간은, 고스란히 브런치에 글을 하나씩 올리는 과정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글의 주된 테마는 인상 깊게 읽었던 양서를 소개하는 리뷰로 굳어갔다. 자신의 시간을 가치 있게 해 준 좋은 책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의 시간을 가치 있게 해 줄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생각하고, 읽고, 쓰는 새로운 루틴은 점점 많아지던 하루의 빈 공간을 조금씩 파고들었다. 점심을 먹고 시간이 남으면 책을 꺼내 읽었고, 민원이 뜸한 때면 작성 중인 글을 채워 넣을 논지를 구상했다. 그리고 오후에 머릿속을 오가던 아이디어는 퇴근 후 한 곳에 모여 글을 완성시켰다. 300쪽이 넘어가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휴식이라는 개념을 잊어버린 뇌는 습관적으로 다음 작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낮에는 공무원, 밤에는 작가. 빈틈없는 하루의 완성은 삶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작가는 공무원이 시간을 무의미하게 때우지 못하게 했으며, 공무원은 작가에게 글의 소재와 영감을 제공했다. 삶을 바꿔야겠다는 다짐과 바라 왔던 일에 대한 열망은 매섭게 상호 보완의 사이클을 돌렸다.




  쉴 새 없이 쳇바퀴를 돌면 누구든 지치지 않을 수 없다. 두꺼운 책을 몇 권이고 정독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며, 그 책을 바탕으로 의미를 구성하고 논리를 전개하는 과정은 의욕만 앞세워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바쁜 하루가 거듭되며 누적되는 피로와 이전에 쓴 글에 대한 후회가 쌓여가면서, 글쓰기를 지속할 추진력을 더해줄 무언가가 필요해졌다.


  계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재난 지원금 지급을 위해 총무팀 직원 분들과 단기 계약직 한 분께서 모여 한창 바쁠 즈음이었다. 지원금 지급의 근거로 사용될 문서를 발급하는 민원 부서의 업무량도 급격히 늘어나, 오전 내내 30초도 쉬지 못하고 민원을 받은 일이 있을 정도였다. 대기열이 점심시간까지도 끝나지 않아, 배고픔을 참으며 오후 일과를 버티는 일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물론 매일이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고, 운 좋게 평소보다 오는 이가 적은 날이 종종 있었다. 소소한 행운을 처음 경험했던 날에, 이전부터 총무과에서 가장 업무적으로 접점이 많았던 분께서 스쳐 지나가다가 발걸음을 잠깐 돌려 민원대 쪽으로 오셨다. 당연히 복잡한 업무상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것이라는 예상은, 생각보다 큰 오차범위로 빗나갔다.


이번에 들어오신 분, 자네만큼 책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던데?


  감사하게도, 이틀 혹은 사흘에 한 번씩 가방에서 꺼내는 책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봐 주셨던 것이다. 물론 그 한 마디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던 만큼, 그날만큼은 자발적으로 점심시간을 비워 두었다. 점심을 희생해서라도 접점이 있는 사람과 대화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분 역시 밖에서 점심을 드시지 않으신 덕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과연, 그분이 앉은 테이블 앞에는 노트와 책이 몇 권씩 놓여 있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 불리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아웃라이어를 만나 반가웠던 나머지, 부족한 말주변이 바로 티가 나고 말았다.


혹시 글을 쓰시나요?

  인사말의 바로 뒤를 이은 질문은 좋게 말하면 단도직입적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뜬금없는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하셨다. 접점이 생긴 이야기의 시점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었다.


  점심시간에 해당하는 60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분은 대학 시절 문예창작을 전공으로 하셨던 이야기부터 작품을 완성했던 경험, 그리고 성공한 작가라는 꿈을 이루지 못한 지금 느끼고 있는 아쉬움까지 모든 것을 말씀해주셨다. 10년이 넘는 여정을 지나온 이의 목소리에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스토리의 끝에 따라온 결론은 이야기의 무게감과는 결을 달리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걸 포기하고 싶진 않아요.

  강산이 바뀌도록 긴 시간 동안 결과가 기대를 배반하더라도 한결같이 한 곳만 바라보는 것은, 그렇게 해본 적이 없는 사람조차 어렵다는 것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삶 속에서 그 어려움마저 품고 나아가겠다는 한 마디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실패와 몇 번이고 마주하게 될지라도, 그것을 뛰어넘어서 가고 싶은 지향점이 자신에게는 무엇인가?




  글쓰기를 관두고 싶지 않다는 말씀에는 꿈을 이루기에는 다소 늦었다는 자인과 미련이 섞여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꿈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그분의 의지를 응원해 드리는 동안, 글을 계속 써야 할 자신만의 이유가 생겨났다.


  한 번쯤은 무언가에 후회 없이 삶을 불태우고 싶다는 로망은, 항상 대상을 찾지 못한 채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의 교점에 있는 것은 항상 현실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폐기되곤 했다. 하지만 마음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는 일을 무한정 유예하는 행위는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현실성 같은 것은 제쳐두고 순수히 앞을 향해 달려 나갈 이유에 집중할 수 있었다.


  꿈을 놓지 않는 사람과 닿음으로써 꿈을 꾸는 법을 배웠다. 다른 것을 잊고 미친 듯이 달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꿈을 이뤄서, 누군가에게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9월의 만남으로 시작된 작년 가을은, 첫 브런치북을 낸 10월 넷째 주에 막을 내렸다. 1시간의 대화로 시작된 1달의 여정. 하지만 소년의 심장을 이식한 청년은, 머릿속으로 그 여정에 연장선을 그어보고 있었다. 글 쓰는 사람,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그렇게 처음으로 삶에서 싹을 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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