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마디가 나오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같이 일하시는 분들께서는 모두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계셨기에 특별히 저 말이 의외성을 갖는 주제일 리는 없었다. 다만 일을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신입의 입장에서 다른 이들의 인사이동이 필요한 휴직을 요청한다는 것은, 그렇게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답변을 들을 때까지의 몇 초 동안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 문제는 없었다. 대학을 반년이라도 빨리 졸업해야 한다는 것에 팀장님께서 공감을 해주셨고, 개학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인력 보충에도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팀장님의 지시를 받아 작성한 휴직 신청서는 얼마 뒤 손을 떠나 시청으로 향했고, 그렇게 이듬해 봄부터의 휴직이 확정되었다.
겉으로는 평온한 척을 했지만, 속으로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일을 하면서, 휴직을 하고 대학생활을 다시 하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학교로 돌아가 고학년으로 다시 시작하는데, 어려운 전공과목들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기도 했다. 대학생으로 성공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옅어질 때면, 방구석에 박힌 채 몇 년간 관심을 받지 못한 전공 책을 찾아보곤 했다.
그때는 마침, 열정을 다 바친 브런치북을 완성하고 나서 한동안 글쓰기를 위한 소재와 에너지가 모자랐던 차였다. 새해 들어서 글쓰기를 위해 사용되는 부분의 뇌를 쉬어주기 위해, 그리고 예비 복학생으로서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1학년에 보았던 경제원론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새 학기가 다가오기 전에 어느 정도 난이도가 있는 계량경제학까지 공부하는 것이 목표였다.
계획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틀어지고 말았다. 대통령 선거(이하 대선)를 준비하기 위해 지자체 단위 제반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선거 준비 작업 자체는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고, 그로 인해 야근을 한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선거 업무 매뉴얼에 적힌 일정표를 본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눈에 봐도 한 달에 10번가량 초과근무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퇴근 후 여유 시간을 전공 공부로 보내고 있었던 입장으로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위안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전까지의 통상적인 선거 업무는 야근을 해도 10시 이전에 모두 끝이 났으니,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계획은 어긋났다.
단순히 주민등록 시스템 상에 정보를 입력하고, 그를 바탕으로 선거구와 관내 선거권자에 관한 데이터를 취합하기만 했던 이전과는 달랐다. 1월부터 재외국민, 거소투표자 등 세세한 그룹화가 이루어졌고, 선거권자를 확정하는 등 매우 무게감 있는 작업이 줄을 이었다. 전보다 매뉴얼이 길어진 만큼 작업 시간도 길어졌고, 모든 선거구가 같은 작업을 마무리할 때까지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어 이쪽만 잘한다고 해서 끝인 것도 아니었다.
근무지는 그리 입지가 좋은 곳이 아니었다. 밤이 되면 근처에 끼니를 해결할 만한 곳이 딱히 없었으며, 편의점에 간다고 하더라도 차로 10분 넘게 달려야 했다. 출근하기 전에 먹을거리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야근을 하는 이들의 배를 채워줄 만한 것은 창고에 있는 컵라면과 과자뿐이었다. 발이 묶여버린 이들에게 대안은 없었다.
반복되는 야근, 그리고 반복되는 컵라면. 평소 같았으면 미각 세포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먹을거리로서 두 팔 벌려 환영할 음식이었겠으나, 컵라면으로 점철된 야근 속에서 컵라면의 존재란 어쩔 수 없이 먹는 불량식품 정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야근을 하는 직원들은 그러한 악순환을 잊기 위해, 컵라면을 먹는 시간에라도 유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보통 오가지 않던 화제가 튀어나올 때면, 어느새 모두가 귀를 기울였다. 이전 근무지에서 있었던 해프닝, 어린 자녀와 나이 든 부모님에 대한 고민, 그리고 최근 급락한 유명한 주식에 대한 이야기까지.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간 들여다볼 기회조차 없었던 주위의 분들의 내면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비록 그 자리에서 말을 많이 하면서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는 않았지만, 이쪽의 생각을 다른 분들이 읽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다 순번이 돌아와 갑자기 날아들어온, 짓궂은 질문을 받아 머뭇거리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주사님, (대학 복학하고 나서) 다시 안 돌아오실 거죠?
출발할 때는 장난, 떠보기에 불과했던 말이, 도착할 때쯤에는 인생의 행선지에 대한 갈등을 품은 이의 의표를 찌르는 물음이 되어 있었다. 머릿속에 흐르는 생각이 물리적으로 비쳐 보였을 리는 없다. 하지만 그 한 마디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도발적으로 들렸던 질문으로 극심하게 동요했던 사고 회로는 이윽고 자신만의 답을 내렸다.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사람은 확신이 없을 때 모호함을 이용하곤 한다. 하지만 말끝을 흐린 선택은 확신이 없음에 연유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일상에 찌든 스스로의 모습부터 순전한 우연이었던 작가분과의 만남,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본 자신의 가능성까지 모든 순간의 기억이 하나의 퍼즐을 맞추어 갔다.
대학으로 돌아가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1년만이라도 후회 없이 살아보자.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느껴보자.
2022년의 1월과 2월, 20번의 야근과 함께 굳은 다짐이 겨울을 관통했다. '예비 복학생인 공무원'으로서의 시간은 겨울과 함께 그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