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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루 Apr 04. 2022

먼 길을 돌아온 캠퍼스라이프

새 무대에서 새 옷으로, 다시 한 번 출발

  휴직 신청을 한 뒤 가장 먼저 머리에 맴돌았던 것은 주거 문제였다.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어디서 생활할 것인지 정해야 했다. 시간적인 여유를 중시하는 성격상 학교와 최대한 가까운 곳이 필요했고, 모아놓은 돈이 적어 생활비 충당마저 벅찬 조건에서 월세를 최대한 낮추는 것이 목표였다. 희망사항에 상당한 모순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으나, 어느 한 쪽도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다.


  매물로 나온 방들을 보여주는 애플리케이션을 보고, 필터링에 필터링을 거듭해 후보군을 추렸다. 월 50만 원 이상 나가는 비싼 곳들은 가장 먼저 조건에서 걸러졌고, 캠퍼스로부터 걸어서 15분 이상 걸리는 곳들 역시 즉각 제거되었다. 대로변에 있어 시끄러울 것으로 예상되는 곳과 다른 방들에 비해 옵션이 너무 적은 곳들이 차례로 떨어져 나갔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곳은 그렇게 많지 않았고, 언제 팔릴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속 1~3순위 중 하나는 잡고 말겠다는 의지로, 새해가 밝자마자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탁월한 조건을 갖춘 방을 잡겠다는 결연한 다짐, 그리고 처음으로 월세 계약 현장에 혼자 뛰어드는 긴장감이 뒤섞여 머릿속은 반나절 간 무척이나 요란하게 울렸다.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소개를 받고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방들로 찾아갔다. 네트워크 상에서 볼 수 있던 모습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몇 번이고 실망을 거듭한 끝에, 다행히도 원하는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을 발견했다. 확신이 생긴 이상 주저할 필요 같은 것은 없었고, 계약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이런 매물들은) 다 나가고 없었을 거예요.
제가 봐도 이 정도 가격에 이만한 데가 없어요.

  손님의 결정을 거들면서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이 비즈니스의 일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포착한 매물이 복잡한 방정식의 최적해였다는 생각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계약서의 가장 밑 부분에 서명을 하고 선금을 지불함으로써, 몇 주간 뇌를 고통스럽게 만든 걱정거리가 사라졌다.


  물론, 이는 삶의 무대를 다시 대학으로 돌려놓는 과정의 시작에 불과했다. 고학년 전공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전공 서적을 보며 틈틈이 공부를 해 두어야 했다. 별 볼 일 없었던 캘린더는 새해 시작과 함께 복학 신청, 수강신청, 등록금 납부일과 같은 일련의 일정으로 메워지기 시작했다.




  전공 책들을 볼 시간이 예상 외의 변수로 인해 줄어들었듯, 이러한 준비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돌발 변수가 나타났다. 휴학을 하고 있던 동안 수강신청 제도가 바뀌어 재학생으로서 가지고 있던 경험의 의미가 없어진 것이었다. 더구나 두 번으로 나뉜 수강신청 과정은 모두 근무시간과 겹치는 평일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간 쓸 수 있었어도 쓰지 않았던 연가는 결국 수강신청을 위해서 쓰이게 되었다. 자리를 비우고 다른 분께 자신의 일을 부탁하는 죄송함을 감내했기에, 어떻게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전쟁터는 승리할 방법을 모르는 이에게 보상을 내려줄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바뀐 시스템이 선사한 생소함으로 인해 졸지에 신입생의 처지가 되어 버린 고학년은, 결국 원하는 과목들을 전부 놓치고 말았다. 


  머리로는 엎어진 물을 보고 아쉬워해 봤자 의미가 없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슴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성과 감성의 충돌은 마음을 온통 불편함으로 몰아넣었다. 대학 수업을 들은 지 오래되었어도, 수강하는 과목이 학교 생활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탄치 않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긴장감 속에 2월은 더욱 더 가속하여 지나갔다.




  어느 새 다가온 2월의 마지막 주. 학생에서 공무원이 되었을 때 일어났던 일이 반대 방향으로 작용한 시기였다. 같은 곳에서 일하시는 분들께 드린 인사는 작별 인사가 되었고, 20일은 월급일로써 돈이 들어오는 날이 아니라 등록금을 수납함으로써 돈이 나가는 날이 되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마지막으로 같이 한 식사만큼은 처음으로 같이 한 식사와 대조를 이루지 않았다. 첫 식사에서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신입을 독려해 주신 분들께서는, 마지막 식사에서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할 이의 미래에 기대를 실어주셨다.


여기로 돌아올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자네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 잘 될 거라 믿네.

  옆 부서 팀장님의 한 마디가 남긴 여운은, 시간을 뛰어넘어 서울로 가는 차에 몸을 실은 복학생의 심장까지 도달했다. 그 잔향과 무거운 짐들을 이끌고 새 방에 도착한 순간, 대학생으로서의 생활이 다시 한 번 삶에 찾아왔다. '공무원 신분인 학생'으로 정체성이 재차 역전된 삶은 캠퍼스를 새 무대로 하여 미지수로 가득한 한 해를 수놓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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