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땅에서 푸르른 생각을 싹틔우며
농촌에서 며칠을 보내면 환갑을 넘지 않은 듯한 사람을 하루에 몇 번 보기가 힘들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시골에서 공무원으로 일을 하며 보낸 몇 달 동안 마주친 젊은이의 수보다 서울역에서 옆과 앞을 스쳐 지나간 학생 수가 더 많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2년 전 마지막으로 몸을 담았던 삶의 무대가 다시금 눈앞에 다가왔다.
3학년 때 머물렀던 곳보다 훨씬 널찍한 방은 한아름 들고 온 거창한 짐을 여유롭게 품어주었다. 돈을 아끼려고 여름옷과 겨울옷만을 갖고 있던 대학생의 모습에는 어느새 계절당 몇 벌씩을 챙겨 입는 직장인이 겹쳐졌다. 학교에 갈 때 통과해야 하는 문 역시 정문에서 후문으로 바뀌어, 단 한 학년 차이로 복학생의 거의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맞이하는 학기. 인생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보내는 것일지 모르는 1년을 앞둔 마음은 한껏 들떠 있었다. 똑같은 20대여도 대학생에게만 허락된 모든 것들을 다시 한번 누려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고 싶은 것들로 채우기에 1년은 한없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주어진 조건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후회 없는 4학년을 보내기 위한 도전이 그렇게 막을 올렸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기 전에 휴학을 한 뒤로 학교를 다닌 적이 없었던 복학생은, 캠퍼스 역시 마스크와 거리두기의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진한 아쉬움을 뱉어낼 수밖에 없었다. 3월이면 캠퍼스는 수업이 끝나고 같이 밥을 먹으러 밖으로 향하는 학생들, 꽃구경을 하러 찾아온 방문객들로 붐비는 곳이라는 인식이 워낙 강하게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대면 강의 역시 머릿속에 정의된 캠퍼스라이프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굳이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수업을 이수할 수 있다는 편리함에 감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새 그러한 편의를 당연시하면서 노트북 화면으로 수업이 아닌 다른 창을 띄워놓는 태만을 태연히 저지르는 자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대학생이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당연한 일상이 그리워졌다.
다행히도 학교의 방역 조치는 싸늘한 초봄의 저녁 바람과 함께 한 발짝씩 뒤로 물러서 갔다. 따스한 봄기운이 밀려들어오는 낮은 사람들을 다시 캠퍼스와 대학로로 불러들였고, 기억 속의 캠퍼스가 마스크를 걸친 채로 다시 돌아왔다. 교수님들의 육성 강의를 듣고, 학생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에 방으로 돌아오는 참으로 복학생스러운 일상도 다시 찾아왔다.
수업을 듣고 독서와 운동으로 남는 시간을 보내는, 나름대로 알찬 일상을 재구성했지만 모든 시간을 혼자서 보내는 것은 사회적 동물의 본능적인 불안감을 유발하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늘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손길을 주지 않아 거리감이라는 이름의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을 연락처들에 손을 뻗었다. 다행히 모두가 소중한 시간을 흔쾌히 내어줌으로써, 오랫동안 접점이 없었던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신입생 시절, 서로 택한 동아리가 달라지거나 관심 있는 진로가 달라진다는 이유만으로 곁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쉽게 떠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간관계 경험이 어느 정도 축적된 시점에 이르러,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옆에 남아주는 이들의 존재와 소중함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보낸 일련의 연락들은, 그 하나하나가 사람들을 붙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휴복학 타이밍이 엇갈리며 오랫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이들은, 오랜만의 재회를 통해서 어느 새부턴가 거리가 확 멀어진 서로의 인생길에 대해 논하며 아쉬움과 동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화의 전개는 누구를 만나든 크게 다를 게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20대 중반 청년의 대화란, 어쩌다 길이 이렇게까지 달라져서 얼굴 보기도 힘들어졌는지, 원하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가 주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만남은 각기 다른 이유로 가슴에 진한 잔향을 남겼다. 풍문으로는 상경계 학생 절반 이상이 준비 중이라는 CPA 대열에 합류한 후배의 절실함부터,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이어가다가 다시 취업시장에 나가겠다는 또래의 계획, 스타트업에 뛰어들어 밤낮없이 프로그래밍 작업을 하면서 벤처 기업의 기적을 꿈꾸는 친구의 로망까지. 스토리의 색은 다르지만, 모든 꿈이 간절함과 희망, 그리고 불안이란 3원색을 갖고 있었다.
눈동자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형형색색의 광휘 속에서도, 신경을 거쳐 유달리 선명히 파고들어 심장까지 도달하는 파동이 몇 줄기 있었다. 한적한 시골, 어르신들의 여유로움과 함께 몇 개월이고 평행선을 느릿느릿 걷고 있었던 입장에서는 전류가 타고 흘러들어오는 듯한 감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배움에는 진짜로 끝이 없더라.
결국 스스로 알아보고 필요한 만큼, 할 수 있는 만큼 파고드는 수밖에 없어.
학부 3학년 수준의 수학조차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복학생 앞에서, 대학원에서도 손에 꼽히는 우등생이 배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을 때 비로소 당연해 보이는 저 말의 의미를 곱씹을 수 있었다. 대학을 3년이나 다녔으면서도 무엇을 배운 건지 알 수가 없다면서 한탄하곤 했던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깨달음은 과거의 행보에 대한 반성에 그치지만은 않았다.
주식 열심히 해서 돈 벌어봤자 2배, 3배지.
돈 많이 벌어서 성공하려면 벤처밖에 없다.
대화할 때마다 무심코 특유의 어조 변화에 귀 기울이게 되는 영남 출신의 프로그래머 친구가 맥주를 마시며 던진 이 한 마디로, 불확실성이 존재함을 알면서도 그 길을 가겠다는 거대한 야망을 감지했다. 그 정열은 그만큼의 배포를 품어본 적이 없는 자가 자신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기억 속에 강렬하게 새겨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조각조각 흩어져 있었던 마음속의 결의를 하나로 매어주었다.
나는 역시 배우고, 생각하고, 쓰는 게 좋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열정적으로 글을 쓰자. 그게 내가 바라는 삶이다.
좋아하는 무언가를 취미로 삼아서 즐기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그러나 좋아하는 무언가를 사명으로 삼으면 그 행위에 당위성이 부여되는 시점부터 갖가지 부담이 덧씌워지면서 피로감이 쌓이기 마련이다. 시간을 들여서 노력을 해도 좀처럼 늘지 않는 역량에 한계를 절감하기도 한다. 글쓰기를 대할 때 언젠가 이런 시간이 찾아올 것이라는 상념이 근저에 있던 탓에, 갖가지 핑계를 대곤 했던 것이 바로 자화상의 그림자였다.
이제 그래 왔던 자신을 바꾸어, 바라는 스스로의 모습에 한 발씩 매일 나아가야 한다. 지난날에 바랐던 모습과 현재의 괴리를 후회로 메워보려는 부질없는 짓을 그만두자. 오늘까지의 삶은 어제까지의 삶에서 무엇이 보태진 것인지를 생각했을 때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자.
어느 해부터인가 뉴스를 통해 접하게 되었던 것처럼, 봄은 욕심 많은 겨울과 여름의 틈새에 끼어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양보하고 있다. 그런 이타적인 계절인 봄에게도 완강히 버티면서 내주지 않고 싶은 날이 있다. 낮은 따스하고 저녁은 서늘한 3월 중순과 하순은 봄에게는 보배로 여겨지며, 사람들에게는 '딱 지내기 좋은 날'로 불리곤 한다.
지내기 좋은 날, 돌아다니기 좋은 날. 그리고 벚꽃이 있는 힘껏 생명력을 분홍빛으로 불태우는 날들. 오랜 지인들이자 또 다른 청춘들은 봄에 걸맞은 싱그러운 기운을 여러 단어에 실어 서로에게 건넸다. 유감스럽게도 이쪽으로부터 건너간 말이 상대의 하루를, 혹은 한 순간을 어떻게 바꾸었을지 알 길은 없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날아온 말은 일상을 바꿀 이유가 되었다.
3년 동안 대학에 다니면서 얻은 것이 없다는 말은 이제 과거의 착각이 되어 기억의 구석으로 모습을 감췄다. 지금의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준 이들의 덕으로, 또 한 사람이 새로운 의미를 담은 싹을 틔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