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라 하면, 그 앞뒤에 서 있는 고등학생과 직장인으로부터 모두 다른 이유로 선망을 받는 존재다. 고등학생의 입장에서 대학생은, 보다 넓은 공간에서 더 멋지게 살아가고 더 수준 높은 것을 배우고 있는 동경의 집약체다. 그리고 직장인의 머릿속에서 대학생은,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의 수많은 추억과 사회생활의 틀에 박힌 일상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 가득 찬 시간의 표상이다.
하지만 정작 그 구간을 살아가는 대학생은, 대개 본인의 삶이 그렇게까지 동경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킬 만한 무언가인지 좀처럼 인식하기 어려워한다. 심해지는 취업난에 새내기 때부터 학점을 철저히 관리해야 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현장에 나가야 하며, 주말에는 외국어 실력과 컴퓨터 활용 능력을 검증받기 위해 시험장에 나선다. 학년이 올라가면 이 번다한 루틴에 인턴과 봉사활동이라는 레퍼토리가 추가되기도 한다.
이러한 통상적인 길을 거부하고 학교를 다니던 도중에 공무원이 된 예외적 복학생은, 4년간 남들이 겪었던 것과 동류의 고통을 감내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안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중간고사는, 긴 공백기로 인해 학교 시험에 대한 내성이 신입생 수준으로 돌아가버린 이의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도 남는 적수였다.
학사경고만 면하면 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마다 차오르는 태평함, 그리고 전공의 난이도가 학기말에 어떠한 재난을 가져올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이 시소의 양끝에서 오르내리는 의식적 사이클. 그 거대한 의식적 순환이 차지한 구간이 곧 4월이 되었다. 시험공부와 복학생의 시선이 녹아든 인간관찰만이 그 여백을 메워갔다.
초순, 4월의 상류에서
시험에 어떻게 대비하면 좋을지 모르는 학생들의 미래를 염려한 교수님들께서, 서서히 과제로 제자들의 면역력을 증강하려고 시도하셨다. 하지만 그러한 노파심이 잘못된 형태로 응축된 과제를 투여받은 뒤로, 복학생은 격한 면역 거부 반응으로 인해 잠을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아무리 애써도 자가 치유가 될 가망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명의 우등생에게 적절한 진단과 처방을 받은 후에야 그 부작용을 온전히 해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기습적인 시련이 찾아왔다. 하루 분의 공부를 끝내고 돌아온 방에서 화장실의 물을 내리는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화장실 벽 먼 곳 어딘가로부터 들려오는 괴이한 소리는 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갖가지 방법을 써봐도 해결되기는커녕 화장실의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못 볼 꼴을 본 뒤에야 절박하게 업체에 연락을 걸었다.
건물 내부 시설의 문제로 인해 이러한 참사가 났다는 통보로 인해 아득해진 정신은, 당장 해결이 어렵다는 부연 설명을 듣고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편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다시 교육받는 며칠이 이어졌다. 업자 분들이 오실 때마다 방에 있어야 했기에 오랫동안 집중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지독했던 고난은 4일 만에 끝을 맺었다. 야속한 시간은 어느새 팔을 강제로 붙잡아 시험기간 열흘 앞으로 몰아세우고 있었다. 가스레인지 혹은 전기레인지 위에 올려놓은 채 방치한 국처럼, 넉넉해 보였던 시간은 어느새 위험한 수준으로 졸여져 있었다. 진정한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중순, 4월의 중류에서
'F만 피하면 되는' 처지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F와 D 사이에서 위험천만한 외줄타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 정도는 갖추고 있었다. 며칠 동안 공을 들여 전 과정을 복습했고, 다행히도 과제를 복기한 끝에 수업 내용을 대체로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록 집중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수강을 했던 순간들로 인해 정리 노트에는 몇 군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지만, 그것들이 치명적인 데미지를 안겨줄 것이라는 위협은 들지 않았다.
주위를 돌아볼 만한 여유가 어느 정도 생겼을 때야 비로소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길거리를 지배하는 색이 벚꽃 잎의 분홍빛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자각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시선이 책에서 벗어났을 때 눈에 비치던 모든 것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20명이 둘러싸서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서, 아이패드 없이 공부하는 이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을 때 경험한 충격의 신선함도 그 흥미로움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정말로 놀라웠던 것은, 많은 이들의 집중력이 상상 이상으로 분산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밖으로 오가기 편하게 하기 위해 늘 비슷한 자리에 앉는 관성을 가진 복학생은 이따금 문을 통해 오가는 발걸음에 신경이 옮겨갈 따름이었다. 그리고 시야에 들어오는 학우들은 끊임없이 갱신되는 핸드폰의 알림, 인접한 자리에 앉은 연인의 눈짓과 귓속말에 흔들린 나머지 주의를 분산 투자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었다.
시험공부와 인간관찰의 비중이 부쩍 높아진 일상이 정형화할수록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셔츠만 입어도 걷다 보면 후덥지근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찾아왔다. 화창한 봄날, 많은 청춘들은 단출해진 옷차림으로 캠퍼스를 횡단하며, 이런 날씨에 경치 좋은 곳이 아닌 열람실로 향해야 하는 그들의 불행을 한탄하고 있었다.
하순, 4월의 하류에서
수학에 자신이 없는 범인 중 한 사람으로서 수리 논리 과목은 항상 거대한 불안의 촉매였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좀체 먹지 않는 편의점 샌드위치는, 시간을 아끼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시험이 임박한 며칠 동안 고정 메뉴가 되어 있었다. 몸에 몹쓸 짓을 많이 했다는 죄책감이 들었던 시험 전날, 고생한 신체를 독려하려 먹은 가츠동의 금액이 이전 이틀 치 저녁식사를 합한 것보다 비싸다는 사실에 실소를 금치 못했던 순간도 있었다.
길게만 느껴졌던 시험 준비 기간을 뒤로하고, 2년여 만에 처음 받아 든 학교 시험 문제는 신입생 시절 받았던 것과 유사한 감각을 체험하게 했다. 문제가 어디에서 나올지 예측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난이도의 수준을 예측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머리가 아찔해지는 일순간을 극복하고, 풀 수 있는 문제만을 철저히 파고들었다. 이러한 반쪽짜리 성공은 다른 과목들에도 비슷한 형태로 반영되었다.
시험 일정이 늦은 과목들로 인해 주말에도 어김없이 열람실에 나섰다. 그러나 며칠 전만 해도 운명을 같이 했던 수많은 학우들이 떠나간 90%의 공석은 남겨진 자들의 비참함을 처절하게도 표현해주었다. 캠퍼스 안의 꽃길을 보며 짧게나마 들었던 감상은 금세 떠나간 이들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대체되었다. 그렇다. 시험이 늦게 끝나는 자야말로 대학에서는 사회적 최약체에 다름없는 것이다.
위로받을 길이 없는 마음을 끌어안고 주말을 내달린 뒤에 맞이한 마지막 시험. 다행히도 문학 시험은 사고 회로와 그것이 이끄는 손끝이 힘껏 춤출 수 있는 무대가 되어 주었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펜은 지면을 어느새 가득 메우고 있었다. 정열이 과했던 나머지 마지막 문제에 이르렀을 무렵, 손은 탈진에 가까운 상태로 마지막 몸짓을 구사하고 있었다. 긴장이 실로 오랜만에 열정으로 승화한 순간이었다.
모든 것을 불태우고 교실을 떠난 복학생의 사유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웠다. 시험에 대한 우려가 거의 잠식해버리고 얼마 남지 않았지만, 4월을 이대로 떠나보낼 수는 없었다. 그의 발길은 평소처럼 자취방 방향이 아닌 지하철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친 정신을 회복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 예술을 접하고자 하는 욕망에 이끌렸기 때문이었다.
비록 출발이 너무 늦어 입장조차 하지 못했으나, 그런 것은 들뜬 심정을 좌절시키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바로 발길을 돌려 광화문으로 향한 청년은 이내 잠시 떠나 있었던 양서들의 곁으로 되돌아갔다. 한 달만에 다시 찾은 서점의 가판대에는 처음 보는 제목의 책들이 놓여 있었고, 그들은 몇 시간 동안이나 발걸음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앉을 곳이 없어 머무르는 내내 서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 역시 유의미한 제약이 되지 못했다.
밤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서점을 나온 이의 양손에는 음악이론 책과 과학 교양서적이 들려 있었다. 시험공부라는 압박이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열망을 얼마나 격정적으로 분출되게 할 수 있는지 실감한 듯한 표정에서,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넘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