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는 다니기 싫어서
새벽 5시. 졸렵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챙기고 식탁에 앉았다. 작은 주방 한편에 놓인 식탁은 내가 내 일의 방향성을 찾고 나를 알아가는데 새벽 시간을 쓰는 공간이다. 스터디 과제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노트에 각종 고민과 어려움을 적어 내려간다. 그 대부분의 시간은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멍하니 계속 이 일을 하려면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나 언제부터 내 앞날을 고민하는데 시간을 썼지?’
나는 성적순으로 들어가는 고등학교 인문계를 진학했다.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잘하지도 못하는 열심히 해 보이는데 성과가 나지 않는 중간 성적의 고등학생이었다. 그렇게 공부를 잘하지도 하고 싶은 일도 찾지 못한 채 고3이 되었다. 성적은 여전히 중간이었기에 타지 생활비라도 아끼고자 동네에 있는 대학 보건행정과에 들어갔다. 대학 또한 중간 성적으로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고 흥미도 느끼지 못한 상태로 다니다가 졸업시즌 학교에서 우연히 보게 된 취업 공고 중 하나에 이력서를 넣고 조기 취업이 되어 21살에 서울로 올라갔다.
그렇게 나는 진중한 고민을 가지고 선택해야 할 것들에 대해 흘러가는 데로 지내 왔다. 그 당시의 나름의 고민을 했을 테지만 ‘어느 학교 가지?’ ‘어디 취업하지?’ 정도였다. 내가 가진 것들 혹은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내가 경험할 수 있는지 찾아 나서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유튜브도 없었으며 인터넷 강의라고는 국영수사과 등 대입을 위한 강의들만 있었고 책과도 거리가 멀었다. 작은 시골에서 우연히 다른 무언가를 경험해 내 시야를 넓힌 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
조기취업으로 서울의 4층 규모인 백반증 치료가 유명한 피부과에 입사를 했다. 여주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나를 두니 모든 게 신기했다. 부모님 품을 벗어나 자취를 해보는 일도, 조용한 시골에서 사람이 북적이는 서울에 살게 된 것도 놀이공원에 온 거 마냥 흥미로웠다. 그런 들뜬 마음으로 병원 원무과 일을 했다. 내가 생각 한 새침한 서울 사람들은 없었으며 대부분 나와 같이 다른 지역에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감사하게도 함께 일하는 병원 사람들은 친절했다. 친구와 함께 같은 병원으로 조기 취업이 되어 올라간 거라 적응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병원에서 근무한 지 세 달 정도 되었을 즘 되니 내가 앞으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차트를 정리하면서 ‘이걸 평생 한다고?’ 차트를 찾으면서 ‘너무 반복적이고 지루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월급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 사회 초년생 밖에 안되는데 벌써 무료하게 느껴졌다.
그 지루함과 무료함은 처음으로 나에게 내 앞날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 만큼 많은 직업이 있을 텐데 그중 나는 꼭 이걸 해야 할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진 않을까?’ ‘좋아하지도 않는데 지루하기까지 한 일을 계속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의 꼬리를 물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친구와 명동에 있는 커다란 문구 용품 판매점에 갔는데 설렘이 느껴졌다. 엽서에 있는 귀여운 그림들, 편지지에 있는 따뜻한 색감들을 보며 ‘내가 그린 그림들이 여기에서 팔리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거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