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객관적으로 돌아 보기 부터 시작
내가 좋아하는 건 그림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일러스트레이터!! 근데 어디서부터 해야 하지? 그림을 배워 본 적도 없고, 재능도 없는데? 를 시작으로 서울에서 내 꿈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림을 배워야 했다. 서울에 있는 많은 학원들 중 어디에 다녀야 할지 막연했다. 주변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어서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중 결국 나는 상담실장님이 말솜씨가 뛰어난 학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그림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닌 프로그램을 가르쳐 주는 학원으로. 22살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귀가 많이 얇았고 기준이 없었다.
그때 몇 개월 과정을 거쳐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 인디자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배웠고 그림은 아니지만 꽤나 흥미로웠다. 교육 과정이 끝나자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는 편집디자인회사에 입사했다. 병원 일보다 확실히 재미있었다. 디자인과를 나오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배경을 날리고 문구를 수정하는 반복 작업이었으나 완성품이 나오는 일이었기에 병원일 보다 성취감이 느껴졌다. 그렇지만 박봉이었고 야간근무도 잦았다.
미술학원을 다니고 싶은데 월세를 내고 생활을 하면 남은 돈이 없었다. 편집디자인 입사 1년. 나는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이 올라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중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학벌이 없어도 되고 자본금도 안 들지만 돈은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 나에게 필요했다. 그러던 찰나 보험 영업 사원이 눈에 보였다. 성과제인 직업! 나만 열심히 하면 되는!!
그렇게 나는 강남의 한 보험회사의 영업사원이 되었다. 돈을 어느 정도 모으고 미술학원에 다닐 생각이었다. 나에게는 인생 처음으로 목표가 생겼고 그만큼 의욕이 앞섰다. 가족들의 보험을 바꿔가며 성과를 올렸다. 뉴스에서 노래방 화재사고가 나왔던 시점이라 강남 일대의 노래방을 다니며 화재보험의 중요성을 알렸다. 그 당시 23살. 어렸고 의욕만 앞서기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렇게 보험왕이 되어 돈을 많이 벌고 미술학원을 다녀 일러스트레이터로 밥벌이를 하고 살았으면 낭만적이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내 의욕과 다르게 내 끈기력과 체력 그리고 종종 무례한 사람들의 말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이 내게는 없었다. 6개월 만에 나는 루저가 되어 있었다. 20살 넘어서 처음으로 갖게 된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목표. 그 목표를 위한 첫 번째 계획을 달성하지 못했다. 다른 것보다 처음으로 목표와 계획을 나 스스로 세웠고 세운 목표 위해 이것밖에 노력하지 못한 나에게 스스로 크게 실망했다. 다른 방향성을 찾아가면 되었지만 나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다.
그렇게 모은 돈도 그렇다 할 경력도 없이 나는 루저가 된 상태로 다시 고향인 여주에 내려왔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나에게 증명시킨 느낌이었다. 여주에 내려와 취업은 해야 하니 출력소에 들어갔다. 취업 후 회사에서 밥을 주는 게 감사할 정도로 내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감사한 마음에 열심히 일을 했고 일이 없으면 청소라도 할 거 없나 힐끔 거리며 최선을 다했다. 보험영업에 비해 출력소 일은 내가 최선을 다하기 쉬운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일들만 하며 다시 아무 목표 없는 예전의 나의 상태로 일하며 지며 일하다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나에게 사랑을 주는 남편은 내 자존감 지킴이가 되어 주었다. 그렇게 자존감을 찾아가는 동시에 결혼을 했고 다시 시간이 흐르는 데로 살기 시작했다.
나에게 실망했던 그 당시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다. 보험 회사를 그만두고 여주를 내려왔을 때 그토록 많이 무너졌던 이유를 10년이 지난 고요한 새벽시간 멍하니 앉아 있다 알게 되었다. 보험회사 이전의 나는 목표도 없고 될 만한 것들만 하며 20년을 살아왔다. 목표를 위해 버거운 노력을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실패 또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노력의 대한 경험치가 없는 만큼 실패를 감당할 그릇이 한없이 작았다.
그 동시에 나는 원래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실행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학원에 다녔고 강남 한복판에서 보험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과거의 실패했던 나의 모습들로부터 지금의 나는 나아갈 용기를 얻게 되었다.
‘실패에 대한 경험치를 쌓으며 그릇을 키워 나가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내가 감당하기 약간 버거운 일들이 뭐가 있지?’ 하며 내 새벽시간 생각의 꼬리를 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