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보건실 입성기
간호사가 된 이래, 대학교 보건실은 단 한 번도 내 선택지에 없었다. 대학 졸업 후 상급병원 병동을 거쳐 검진센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그리고 국민건강보험공단까지. 나는 나름대로 치열하고 촘촘하게 경력을 쌓아왔다.
하지만 나의 커리어 사이사이에는 늘 거대한 쉼표가 있었다. 바로 삼 남매의 육아다. 조직에 완전히 적응해 다음 레벨로 벌크업 좀 해보려 하면 어김없이 임신과 육아가 반복되었다. 그렇게 막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된 해까지, 나는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전업주부라는 다정한 일터에서 꽤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요양병원에서 근무하시는 친정엄마 이야기를 큰딸과 나누던 중이었다. 아이가 무심코, 아니 농담처럼 던진 한마디가 내 심장에 꽂혔다.
"할머니도 일하시는데 엄마는 왜 일 안 해?"
‘이러기냐...’ 싶으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날부터였다. 아이디마저 잊고 있던 간호사 채용 사이트를 수시로 드나들기 시작한 것은. 40대가 된 내가 지금 어떤 현장에 나갈 수 있을까. 왜 나는 그 좋다는 공단을 그만두었을까. 수많은 자책과 의문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아르바이트라도 시작해 보려던 찰나, 운명처럼 대학교 홈페이지에서 보건실 간호사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 촉박한 시간 속에 서류를 준비하며 경력증명서를 떼고, 자기소개서와 업무계획서를 써 내려갔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정리하는 그 글쓰기 과정에서 엄청난 힐링 에너지가 솟구쳤다. 서류 뭉치 속에서 지난날의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목격했기 때문이다. 먼지 쌓인 경력을 꺼내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너, 참 열심히 살았구나."
그 순간, 잊고 있던 내 인생의 각이 다시 잡히기 시작했다. 50대의 내가 지금의 40대를 돌아봤을 때도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육아를 넘어 교육의 시기에 접어든 이상, 경제활동이라는 현실적인 전투력도 꿈틀댔다.
"여기 떨어지면 그때부터 신나게 구직생활 즐겨보지 뭐!"라는 편안한 배짱 덕분이었을까. 감사하게도 나는 대학교 보건실에 최종 채용되었다.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대학이라는 조직, 그리고 그 안의 자그마한 보건실. 임상 현장과는 또 다른 이곳의 공기가 내 인생에 어떤 파동을 일으킬지 나는 지금 무척 기대하는 중이다. 정말이지, 내가 대학교 보건실 간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합격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명확해다. "이제 내가 번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일을 하는 목적에 대해 자아실현이나 사회적 기여 같은 거창한 명분을 붙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가장 절실한 건 무엇보다 경제력 확보였다. 조금 덜 낭만적으로 보일지라도 어쩌겠는가. 일상의 지루함을 밀어내기 위해 필요한 신선한 자극만큼이나, 그 자극을 지속하게 해줄 단단한 경제적 자립 역시 내게는 절실한 것을.
어쩌면 내 인생의 가장 정직한 동력은 이 지극히 현실적인 토대 위에 서 있는지 모른다. 이제 막 시작된 이 직업이 내 인생의 몇 막쯤 될지, 그리고 이 자립의 힘이 나를 또 어디로 데려다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