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을 알려주셨어>

by 진다르크

우리 집은 다섯 식구가 10평도 안되는 집에서 오래 살았었고 푸세식 화장실이 있었던지라 변기를 처음 사용했을 때는 신기하고 낯설었다. 초등학생 당시에 밤만쥬라는 작은 빵이 있었는데 슈퍼마켓을 지나칠 때마다 그게 그렇게 먹고 싶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떡꼬치와 컵 떡볶이를 200원, 300원으로 팔았는데 사먹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바라보며 먹고 싶어도 티를 안내려고 꾹 참았었다. 초록색 박스에 흰 우유가 담겨 각 반으로 들어왔는데 우유 신청을 한 아이들만 먹을 수 있었다. 우유를 다 먹은 친구들은 우유곽을 접고 밑에 있는 숫자를 보고 서로 물어보며 장난을 치거나 제티를 타먹기도 했다. 어릴 적 우유나 음식들을 많이 못 먹고 자라서 키가 확실히 덜 큰 것 같다. 보이스카웃 하는 친구들이 멋있고 부러워 보였고 운동회 때 부모님 오는 친구들은 더더욱 부러웠다. 피아노 콩쿨대회 나가는 친구들도 부러웠고 고등학교 때 제주도 수학여행 가는 친구들도 부러웠다. 못가는 학생들은 남아서 교실에서 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고 3 때는 오전 일곱시 이십분까지 등교를 했어야 했는데 아침마다 엄마에게 교통비를 달라고 하는게 그렇게 눈치 보이고 망설여졌다. 친구들이 노스 패딩을 입고 다녔을 땐 나의 겨울 잠바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한 번도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어리광을 피운 적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어머니가 매우 단호하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대신에 좋은 기억도 있다. 피자를 일 년에 한두 번씩 시켜주셨는데 그게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나서도 피자를 먹을 때마다 어릴 적 흥분한 감정이 계속 남아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생까지 전단지 아르바이트부터 시작하여 고깃집까지 정말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돈을 벌어서 먹고 싶은걸 사 먹고 사고 싶은걸 살 수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부모님도 경비, 건어물 장사, 청소부 등 안 해본 일이 없으시고 나의 마지막 어린이날에도 일하러 가서 미안하다고 남긴 쪽지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르바이트는 대학교 때 제일 열심히 했었고 졸업 후 처음 서울살이를 시작할 때 바닐라라테를 먹고 싶어도 참은 기억이 있어서 지금까지도 바닐라라테를 제일 좋아한다. 부족한 가정환경에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제일 부럽고 원망스러운 건 화목한 가정이 아니었던거다. 단지 가난했어도 화목하고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아 친구처럼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나의 결핍을 무척이나 잘 알고 있기에 상처와 결핍들을 잘 알아차려서 좋은 방식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곧 추석이 다가와서 옛 추억을 더듬어 보았다. 결핍은 어쩌면 나의 원동력과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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