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해 보면 사람들을 만나 밝게 수다를 떨고 재미있고 무탈하게 보낸 하루도 내가 뭐 실수한 건 없나, 곱씹곤 한다. 워낙에 자기 검열이 심하고 자기 비난, 자책도 하고 잡념이 많은 터라 그러려니 했지만 내가 실수한 것도 없고 즐거운 날에도 그렇다는 것은 나의 깊숙한 무의식 어딘가에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유년기 시절, 엄마에게 물건을 사달라고 표현하면 줄곧 큰소리를 내시며 무섭게 혼이 나곤 했다. 늘상 그랬다. 학창 시절에는 엠피쓰리를 사달라고 나의 기어들어가는 작은 목소리에도 엄마는 고함을 지르시며 사람들에게 망신을 주기도 했다. 종종 우리 엄마는 친엄마가 아닌가, 정말 나를 다리 밑에 주워와서 이렇게 나를 미워하고 늘 큰소리를 내는 건가 싶었다. 워낙에도 말이 없고 숫기가 없는 내성적인 아이였는데 그러한 불안정한 엄마와의 관계로 인해 나는 더욱더 표현을 못 하고 늘 어두운 아이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 무작정 독립을 한 후부터는 나의 결핍, 무의식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마음 수행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너무나도 밝고 씩씩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평생 어두운 과거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닌 그것을 극복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포옹하며 밝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조금이라도 장난을 치면 엄마는 가만히 좀 있으라며 호되게 나무라 하셨다.
아무래도 그 상처가 무의식, 결핍에 박혀서 사람들과 즐겁게 보낸 날에도 늘 불안하고 자책하는 건 아닐까 하는 사유가 들었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 괜찮아, 이제 자책 그만해도 돼,라며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고 안아준다. 말실수를 했나, 또 곱씹는 날에는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뭐, 그 사람은 신경도 안 쓸 거야, 너도 생각이 많아 참으로 괴롭고 힘들겠다 그렇지?라며 나를 토닥여준다.
오늘도 나의 내면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수행하고 마음공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