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와 글쓰기를 하고 나서>

by 진다르크


지금부터 그동안 내가 독서와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후 나에게 어떠한 이로움을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그럼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왜 해야 하는지 깨달은 중요성에 대해서도 함께 적어보겠다.


일단 내 주변에는 나처럼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하거나 독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독서를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며 신기해한다. 그래서 어쩌다 우연히 독서를 가까이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너무나도 반가운 마음이 든다. 게다가 나는 지적 호기심이 있거나 나보다 지식, 지혜가 많은 사람들을 동경하는 경향이 있어서 북토크나 브런치 스토리 등을 통해 문학인들을 접하게 되면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연대감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독서는 나에게 여러 가지 이로운 점들을 가져다주었다.


첫째, 물론 나의 기질에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동화책을 사달라고 졸랐었고 학교 시험기간 때 시험공부는 하지 않고 죽음과 종교에 관한 서적들을 찾아보며 읽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도서관과 서점을 방문하면 공간의 에너지와 종이책의 질감과 냄새 등이 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친구가 많지 않고 매우 내성적이었던 나에게 독서는 유일한 친구였다. 저자와 독자인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차츰 독서와 멀어지게 되었다. 그때는 삶이 고단하고 매우 버거웠기 때문에 독서에 대한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서서히 마음의 여유가 생겼을 때쯤 멀리했던 독서와 일기를 다시 가까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과거와 미래에 머물러서 걱정과 불안도가 높은 편인데 독서에 집중하는 시간만큼은 잡생각이 사라졌다. 덕분에 현재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평온함을 느끼게 되었고 안정감과 인내심까지 가져다주었다.


두 번째, 예전의 나는 나의 가치관과 주관이 없었던 사람이었다. 매우 우유부단하고 외부 세계관에 잘 휘둘렸었다. 심지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자기 판단도 없는 지혜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런 나에게 독서는 나만의 인생철학을 형성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작가와 나의 생각이 무엇이 다른지 분별력도 생기게 되었고 지적 호기심도 확장되어 자존감까지 매우 올라가게 되었다.


세 번째, 독서를 하게 되면 뇌가 트인다. 인지능력 향상과 사고력을 키우게 되고 인생에 대한 통찰력이 좋아진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표현의 다양화가 생기게 되었고 내가 더 지혜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그러다 북토크를 다니게 되면서부터 다양한 작가들과 문학인들을 만나게 되었고 막연하게만 꿈꿔왔던 소설가라는 꿈에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소설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연마하려고 책을 더 많이 정독하게 되었고 창의력이 올라가고 다양한 영감을 얻는 기반이 되었다.


한 달 전 아는 여동생과 강남역 스타벅스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동생이 입을 열었다. "언니는 시간이 많으니까 책을 읽는 거겠지. 나는 학교 공부도 못했고 난독증이 있어서 긴 글은 못 읽어. 어릴 적에 엄마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으셨고" 말을 마친 동생은 미지근해진 찻잔을 내려놓았다.


"우리 엄마도 마찬가지로 책을 읽는 솔선수범을 보여주지도 않으셨고 나도 학교 공부는 정말 젬병이었어. 그리고 여유로운 현대인들이 어디 있겠어.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 녹초이지 뭐. 내가 시간이 많아서 독서와 글쓰기를 한다는 건 큰 착각이야. 다만 습관과 관심의 차이이지 않을까. 난 화장실과 침대, 책상 어디에든 책을 구비해놔. 그리고 유튜브 시청하는 시간을 줄이고 의식적으로 독서하려는 습관을 만들려고 해" 가만히 듣고 있던 동생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쓰기를 하게 된 후 나의 내면은 매우 단단해졌다. 학창 시절부터 나의 내면에는 잔잔한 우울증과 슬픔이 늘 공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깊은 무의식에는 어두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 어린아이를 보듬어주고 상처를 용기 있게 직면하게 만들어 주었던 건 바로 글쓰기였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나의 결핍을 용기 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주어 메타인지 또한 올라가게 되었다.


그러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블로그와 소설 공모전 준비를 통해 본격적으로 기록을 상세히 하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 인상 깊은 문장에 밑줄을 긋거나 나의 생각을 옆에다 메모한다. 그리고 완독한 후에는 꼭 독후감을 쓰게 되었다. 영화도 처음 볼 때와 두 번 볼 때의 깨달음이 다르듯이 글쓰기로 마무리를 지으면 의미가 깊어지고 다채로워진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쓰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작문을 하는 과정은 나에게 평온함과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아주 보통의 하루도 글쓰기를 만나면 오늘 하루가 의미 있고 생산적이며 특별한 하루가 되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감정을 글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어느새 내 마음을 털어놓게 되니 부정적인 에너지를 풀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 글에 공감해 주는 독자들을 만나게 되면 위안과 자신감까지 얻게 된다.


"남들은 다 주식,부동산에 관심 있는데 넌 뭘 그리 쓸데없는 생각을 하냐" 나는 재테크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편에 속한다. 경제, 뉴스도 열심히 챙겨 보는 편이지만 그래도 나는 판타지 소설을 더 좋아하고 현실과 약간 동떨어진 엉뚱한 망상에 잠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남들처럼 현실적이지 못할까. 이상한 동화 속 상상에서만 살고 있고 말이야" 주눅이 들었던 나의 고민을 지인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지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였다. "세상이 현실적인 사람만 존재할 수는 없잖아. 너의 그 상상력이 얼마나 멋진 능력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능력을 넌 가지고 있잖아." 그동안 나는 내가 생각이 너무 많고 망상하는 것이 병이라고 생각하며 이런 모습을 싫어했다. '나도 남들처럼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나는 왜 그게 안되는 걸까'라고 자책까지 하며 계속 단점으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단점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 상상력을 소설로 승화시켜보자.‘ 그 이후 과거에 대한 실수를 곱씹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의 마음이 또 올라올때마다 나는 마음을 자각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럴 시간에 소설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상상하고 연구해보자.” 소설은 한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고 그 태어난 자리를 우리가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설을 통해 내가 남자가 될 수도 있고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이 멋진 창작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10년 전 대학로에서 연극을 했을 시절 처음에 그 뜨거웠던 열정들은 어느 순간 시들어졌고 나보다 더 잘하는 배우들을 보며 나는 애매한 재능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포기하였다. 그러나 글쓰기만큼 다르다. 내가 평생 하고 싶고 평생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물론 나보다 훌륭한 작가들은 무수히 많고 내가 특출난 작문 실력을 갖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습작이 쌓이다 보면, 꾸준히 쓰다 보면, 계속 도전하다 보면 뭐라도 되어있겠지라고 생각하며. 혹여 뭐라도 안 되어있더라도 그동안의 과정이 즐거웠기에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 등단 작가가 안되고 출간된 책이 인기가 없더라도.


현역 아이돌인 동생이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누나 저는 돈 벌려고 예술 하는 거예요. 근데 누나는 돈도 안되는데 단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게 진짜 예술인 것 같아요" 반 고흐나 유명한 작곡가들 또한 몇백 개의 작품 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은 고작 몇 개밖에 안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도 습작을 꾸준히 쓰다 보면 그중에 뭐라도 되어있겠지.


글쓰기는 나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가져다주었고 독서는 나의 훌륭한 벗이다. 쌓여있는 책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부자가 된 느낌이다.결국 독서는 우리의 정신을 깨어있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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