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마음공부>

by 진다르크

생각해 보면 난 참 이웃복이 많다. 올해 이사 온 지금 집에 간혹 저녁에 콘이가 짖을 때가 있는데 다음날 낮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우리 강아지 이름을 상냥하게 불러주신다. 물론 반려견이 허용되는 빌라이기도 하고 다른 강아지의 이름을 불러주는 귀여운 실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전에 오래 살던 집도 아랫집 이웃과 우연히 바뀐 택배로 인하여 친하게 지냈었다. 그래서 가끔 이웃 주민들 사이에 살해 사건이 생기거나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인 뉴스를 보면 그래도 난 참 이웃복이 있구나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지역사회 주민들도 마찬가지다. 팝콘이가 아기였을 때부터 진료해 주셨던 동물 병원 의사 선생님과 늘 친절하신 간호사 선생님, 그리고 요즘 들어 자주 가는 도서관 사서 분들, 팝콘이의 단골인 애견카페 사장님과 친절한 직원분들까지. 그래서 종종 베이킹 원데이 클래스를 하러 가는 날에는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다 나누어 드린다. 내가 먹는 기쁨보다 선물을 받고 더 기뻐해주시는 모습을 바라보는 기쁨이 몇 배는 더 크기 때문이다. 인연복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감사생활하는 기반이 되어주는 것 같다. 그런데 그렇다고 항상 인연들과 잘 지내고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약 2,3년 전 우리 집 앞에서 묻지마 폭행과 비슷한 사건을 당한 적이 있다. 우리 집에서 전철역까지 걸어가려면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맞은편에서 내려오던 남자가 너무나도 고의적으로 나의 왼쪽 어깨를 아주 세게 쳤다. 순간 악 소리를 내며 오르막길에서 굴러떨어진 나는 사과도 안하고 지나가는 남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 일도 없는 듯 그 남자는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하고 무서운 경험이다. 그리고 그 순간 뛰어가서 그 남자에게 다가갈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이유는 폭력을 다시 휘두를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평온하게 팝콘이와 산책을 하고 동네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정말 황당하고 반협박에 가까운 일을 경험하였다. 참 세상은 나쁜 사람이 많고 부당한 일도 많이 겪는다. 그래서 이런 날에는 무기력해지면서 분한 감정이 든다. 그런데 이런 사소한 것들에,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감정 소모하고 있는 이 순간이 아까워진다. 그러면 마음을 얼른 바꾸고 좋은 생각을 떠올리며 좋은 사람들과 대화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것이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보다는 단지 그런 경험을 했다고 그 자체로 보려고 한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도 많고 부당한 일도 겪긴 하지만 선하고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오늘 하루도 타인에게 더 친절할 수 있도록, 나의 내면에 사랑과 충만함이 가득하도록, 가득할 수 있도록 감사함으로 채운다.




할머니는 그릴 미래가 없으니 추억이라도 떠올린 것인데, 그걸 하지 말라니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

나는 미래가 꼭 추억처럼 느껴진다. 그 둘은 하나다. 추억은 곧 다가올 미래인데, 어째서 할머니에게는 모든 것이 금지되었을까. 왜 오늘만 살라고 할까.


이소호, <세 평자리 숲> 본문 중에서




곧 펄롱은 정신을 다잡고는 한번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정리했다. 각자에게 나날과 기회가 주어지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가 없는 거라고. 게다가 여기에서 이렇게 지나간 날들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게, 비록 기분이 심란해지기는 해도 다행히 아닌가 싶었다.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과를 머릿속으로 돌려보고 실제로 닥칠지 아닐지 모르는 문제를 고민하느니보다는.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본문 중에서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본문 중에서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이미 지나갔다.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 은 지나갔다. 지금부터 마주하게 될 고통은 어떤 것이든 지금 옆에 있는 이 아이가 이미 겪은 것, 어쩌면 앞으로도 겪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자기 집으로 가는 길을 맨발인 아이를 데리고 구두 상자를 들고 걸어 올라가는 펄롱의 가슴속에서는 두려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압도했으나, 그럼에도 펄롱은 순진한 마음으로 자기들은 어떻게든 해나가리라 기대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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