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희 한동일, <명랑 주교 유흥식>
오늘은 북토크 때문에 팝콘이 산책을 짧게 시키고 부랴부랴 선릉역으로 향하였다. 공기가 매우 습했지만 하늘은 맑고 화창했다. 선릉역과 역삼역은 인도가 매우 넓어서 늘 갈 때마다 편안하고 기분이 좋다. 높은 빌딩 숲 사이로 뭉게구름이 까꿍 고개를 내민다. 찰칵. 글을 쓰고 나서부터 구름을 찍는 게 습관이 되었다. 자연에 더 집중하고 바람을 음미하게 된다. 퇴근길 시간인지라 차도에는 차가 줄지어 달리고 있다. 태극기가 여기저기 꽂혀져 있는 차도라 아름다움을 더 자아냈다. 골목길에는 직장인들이 담배를 피우며 회포를 나눈다. 오늘의 고단했던 하루, 여자친구와 싸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까지. 담배를 전혀 필 것 같지 않은 여자들도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진짜 사람은 겉만 봐서는 모르는구나. 르네상스 사거리를 지나 중간쯤 왔을 때 오른쪽에 뾰족하고 웅장한 성당 건물이 보인다. 올해 겨울에 세례를 받고 난 이후로 단 한 번도 성당을 가지 않은 나 자신. 반성합니다 아멘.
얼마 더 걸으니 오른쪽에 큰 규모로 보이는 카페 유리창 너머로 책들이 책장에 높게 꽂혀져 있다. 뭐지 북 카페인가. 이쁘다. 새로 생겼나 보다. 인스타에서 얼핏 본거 같기도 하고. 다음에는 여기도 가봐야지. 돈 많은 백수가 되면 전국 카페 투어를 할 거다.
그런데 계속 걸으면서도 선릉역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 내가 역을 지나쳤나. 우리 집까지 한 정거장 차이인데 뭐지. 생각보다 도보로는 20분 이상이 소요되는 거리였다. 책방에 도착하기 전에 빵집에 들러 간단하게 미니 토스트와 소시지 빵을 계산했다. 큰 목소리로 기계적 말투인 여자 직원이었다. 저 사람들도 일하기가 싫을 거야. 저도 그래요. 근데 왠지 스타벅스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책방 입구를 들어서자 만원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층으로 향하였다. 문을 열자 마르고 키 큰 남자가 종이와 펜을 들고 나에게 묻는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남자는 북토크 예약자 명단으로 보이는 차트를 보며 확인한다. 40분 먼저 일찍 왔는데도 불구하고 책방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먼저 디카페인 커피를 주문했고 오늘의 북토크 책도 함께 골랐다. 같이 계산하면 30프로를 할인해 준다. 계산을 도와주던 중년 여성 직원분이 반갑게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더 이뻐지셨어요. 에이, 화장빨이에요. 나는 속으로 삼킨다. 직원분은 책방 2호점 대표님이셨다. 내가 작년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서로 얼굴을 더 익히게 되었고 부득이하게 책방이 닫게 되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러 갔을 때 더 친밀감이 쌓였다. 단번에 나를 알아보시던 대표님에게, 선생님 앞으로 여기 계속 계시는 거예요? 올 때마다 볼 수 있겠네요.라고 말하자 네 그럼요.라고 대답한다. 항상 밝고 차분한 사람들은 정말 신기하다.
중간 가운데쯤 의자에 가방을 올려놓고 책방을 둘러보았다. 어, 내가 좋아하는 김애란 소설이 있네. 이건 무조건 사야 해. 그리고 다른 소설책도 함께 총 두 권을 더 계산했다. 나는 책을 고를 때 꼼꼼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누구는 책표지, 제목을 보고 고른다는데 나에게는 그냥 느낌이다. 그 느낌은 책을 한두 번 훑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리고 글을 쓰고 나서부터 닮고 싶은 소설가들이 생겼다. 그 작가들의 책은 무조건 사게 된다. 이를테면 정세랑, 류시화, 김애란, 황정은, 김연수, 박완서. 이러고 보니 나 제법 문학소녀 같은데. 비밀인데 이 중에 제일 닮고싶은 소설가는 류시화와 김연수다.
매번 책 플렉스를 할 때마다 내면의 충만함이 생긴다. 도서관에서 대여하면 돈도 아끼고 좋지만 서점을 방문할 때의 그 기쁨과 거실에 쌓여가는 책들을 보면 마치 부자가 된 것 같다. 무거워진 가방 안에 텀블러에 담긴 디카페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그리고 어디선가 낯익은 멜로디가 들려온다. 어, 이거 내가 많이 듣던 노래인데. 그레고리오 성가였다. 자기 전 눈을 감고 종종 들은 적이 있었는데 저음의 남자 합창단 목소리가 마음을 늘 차분하게 해주었다. 나 이거 아는 노래에요. 아무나에게나 자랑하고 싶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종교를 떠나 모두에게 추천해 주고 싶고, 모두가 들었으면 한다.
책방 중년여성 대표님의 인사말과 함께 북토크가 시작되었다. 대표님의 말투는 들을 때마다 늘 차분하고 잔잔하다. 마치 새벽 라디오를 듣는 듯하다. 어쩜 저렇게 차분할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이미지가 있다. 요가강사처럼.
단아한 여성의 진행자와 함께 유흥식 신부님이 등장하였다. 참여자들은 열렬하게 환호와 박수를 건네주었다.
유흥식 신부님은 우리나라 네 번째 추기경님이시다. 책 제목 그대로 작은 얼굴에 명랑한 이미지를 안고 계셨다. 김수환 추기경님 이후로 47년 만의 나온 추기경이라고 한다. 작년 예비신자 교육 때 수녀님에게 2층 성당 문 입구에 걸려져있는 남자 사진 액자를 가리키며 물었다. 수녀님 저분은 누구예요. 아 김주환 추기경님이세요. 추기경? 그게 뭐지.
1년 전, 혼자 로마 여행을 갔었는데 바티칸 성당에 들러 수많은 인파들 속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을 감상하였다. 한국에 도착한 후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였는데 운이 좋게도 내가 들르고 난 이후로 바티칸에서 큰 행사가 있어서 하마터면 못 볼 뻔했거나 인파 속에 묻혔을 것이라고 했다. 우연치 않게 운이 좋았던 시기였다.
"종종 우리는 사랑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이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하지요. 한 사람을 구체적으로 사랑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책을 펼치니 인터뷰 형식으로 되어있었다. 추기경님은 정말 책 제목 그대로 밝고 명랑하셨다. 자신이 밝아야 사제들과 신자들을 더 기쁘게 해줄 수 있다면서. 독자들은 신부님의 말 중간중간마다 박수와 큰 리액션을 하며 웃는다. 마치 아침마당 방청객을 연상케했다. 난 사실 안 웃긴데 다들 즐거워하네. 한 끼도 안 먹고 졸음도 오는 바람에 연달은 하품을 하며 꼬르륵 소리 나는 배를 움켜잡는다. 아, 이따 택시 타고 집 가야겠다. 가방도 너무 무겁고 힘이 없어. 저기 피아노 위에 있는 큰 강아지 인형은 뭐지 귀엽다. 어디서 산 걸까. 아 그새 발에 물집이 잡혔네. 로퍼만 신으면 이런다니까. 나는 따끔거리는 물집 통증을 느끼며 신부님 말씀에 다시 집중하였다. 아, 역시 나는 성인 ADHD가 맞는 거 같아. 어쩜 사람들은 저렇게 차분하고 집중을 잘할까. 뒤를 돌아보니 이층까지 사람들이 경청하고 있었다. 와 오늘 진짜 많이 왔네. 근데 저 높은 책은 도대체 어떻게 꺼내는 걸까. 아 저기 사다리가 있구나. 근데 높은 책을 읽는 사람이 있을까.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사랑하세요"
마이크를 들고 온화하게 말씀하시는 신부님. 인상이 선하고 귀여우시다. 나도 한때는 성직자를 꿈꾸었는데 진작 포기하고 지금 삶을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사실 내가 성직자가 될 깜냥도 아니었고 엄마에게, 그럼 화장도 못하고 남자친구도 못 사귀는 거잖아 라며 큰 소리로 덤벼든 사춘기 시절 나의 선택을 매우 칭찬한다. 심지어 올해 세례까지 받았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성당을 간 적이 없다. 그런데 희한하게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니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는 했다. 전의 우유부단하고 자존감 낮은 모습은 사라지고 잔다르크처럼 용감해지고 당당해졌다. 정말 내 이름처럼 되었다. 그리고 주눅이 들때마다 주문을 외울거다. 너 잔다르크잖아! 그런데 아무래도 힘들 때만 신앙을 찾는 야비한 신앙인이 될 것 같다.
종교가 없거나 신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는 여성 진행자의 질문에 신부님은 이렇게 답했다.
"나는 누구에게 어느 종교를 믿냐고 물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종교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믿는 것은 다 때가 있다."
맞다. 나 또한 하느님이 어디 있어. 성경은 다 거짓말이야. 이해할 수 없다며 비관적인 편이였고 원불교 교도로써 신앙생활을 오래 했었다. 그랬던 내가 가톨릭 신자가 되었으니,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것 같다. 자신의 가치관, 신념, 믿음 또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이웃과 비교하지 마세요. 그리고 고통과 시련도 선으로 바꾸세요. 그러지 않으면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의미가 없어요."
나 또한 겉멋으로만 신앙생활을 한건 아닌지. 늘 책상에 꽂혀져 있는 성경을 왜 펼쳐보지 않는지. 왜 묵주기도와 저녁기도를 하지 않는지. 내가 정말 하느님을 믿고 있는 건 맞는지. 오늘 내가 이웃에게 친절과 미소를 베풀었는지. 그런데요 신부님. 혐오의 시대, 가치 상실의 시대, 다 아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물질 만능주의 사회에서 비교하지 않기란 쉽지 않고요. 사랑해야지 포용해야지 싶다가도 윤어게인 집회 나가면 또 화가 나요. 난 성직자가 아니니까 그냥 미워할래요. 아직도 엄마가 밉고요 용서할 마음도 그닥 없어요. 다만 늘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감사생활은 매일 하고 있어요.
"추기경님의 마음은 어디에 계세요?"
차분한 여성 진행자의 질문이었다. 언니, 아기 엄마라는데 너무 이뻐요. 아나운서 같아요.
"저는 현재에 있어요. 현재에만 은총을 주세요. 꼰대는 과거와 미래에 가있어요. 그래서 꼰대들이 과거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나도 최대한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하, 독자들은 큰 웃음소리로 답한다. 예전의 나는 티는 안냈어도 엄청 꼰대였다. 늘 마음이 과거에 머무르며 내가 그때 왜 그랬지 자책하고 후회하고 미래로 가있으면 늘 불안해했지. 정말 나도 많이 성장했다. 다 마음공부 덕분이다.
집안에 가톨릭 신자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신부님이 되었다는 마지막 말씀에는 동질감을 느꼈다. 나 또한 집안에 가톨릭 신자가 아무도 없다. 가족들은 원불교이고 외가는 불교 쪽이다. 그래도 대모님도 계시고 미래의 남편이 가톨릭 신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뭐 어떠랴.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게 마음공부인 걸. 그래도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은 건 나의 로망이다.
북토크가 끝나고 싸인을 받으려고 줄을 섰는데 앞줄인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줄은 입구까지 이어졌다. 신부님과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이는 묵주를 가져와 축복을 내려달라고 했다. 신부님도 참 귀찮고 힘드실거야. 아 배고프고 졸리다. 그냥 집에 갈까. 아니야 그래도 북토크는 사인받으려고 오는 건데. 아야, 순간 누군가 내 발을 실수로 밟았다. 죄송합니다. 상대방이 사과를 하는데도 계속 넋이 나가있는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바닥만 응시한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신부님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세례를 받았어요. 요안나 드아르크에요"
"아 그래요. 축하드려요"
책방을 나오니 여름밤의 공기가 나의 얼굴을 기분 좋게 쓸어준다. 배가 고파 도저히 걸을 힘이 없었다. 택시를 잡고 도착하기 전까지 아까 구매한 빵을 가방에서 꺼내어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허겁지겁 빵을 삼킨다. 아 살 것 같다. 역시 배가 고파서 예민해져 있던 거야. 집에 콘이가 늘 혼자 있으니 잠깐 외출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좌불안석이다.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고 나왔는데 아기가 괜찮겠지. 게을러서 에어컨 필터 청소도 안 했다.
올해 세례를 받자마자 원래는 청년 성가대 활동을 하려고 했다. 총 3번을 출석해야 성가대 단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하여 알겠다고 씩씩하게 답했다. 충분히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놈의 게으름 때문에. 죄송합니다 오늘은 못 갈 거 같아요. 이 말만 여러 번 반복하며 괜한 죄인이 되었다. 아, 세례 증서도 받으러 가야 하는데. 게으른 나 자신 반성합니다. 올해 안에는 꼭 성당 갈게요. 하느님 그래도 가끔 자기 전에 기도는 하고자요. 아멘.
"불일치 중에 최선을 택하기보다, 일치 중에 차선을 택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그릇을 바라보기보다 국민의 그릇을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하길 바랍니다.
아버지(Father)에겐 아흔아홉 마리 양도 소중하지만 길 잃은 한 마리 양도 똑같이 소중합니다.
저는 그 길 잃은 양 한 마리가 있는 곳이라면 좌든 우든 어디에든 갈 것입니다."
김민희 한동일, <명랑 주교 유흥식>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