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버린 꽃다발

마음의 빈자리에 대하여

by 우주
작은방 뭐라도 해내라 하네
안개처럼 떨치기 힘든 내 마음
결국 행복하려 아픈 반복이라고
천천히 깨우쳐 가요 난

'신지훈, 꽃무늬 벽지'


지난 졸업식

부모님께 튤립 꽃다발을 받았습니다.

좋은 날에는 생화가 좋다고

어떤 게 제일 좋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꽃다발 무리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친구를 골랐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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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화가 좋았습니다.

향기는 새콤달콤했고

꽃잎은 부드러웠습니다.

그 아름다움이 못내 좋아

향기를 맡고 조심히 쓰다듬어보고

혹시라도 다치지 않을까

조심스레 들고 다녔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도 좋았고

맑은 햇살을 받을 땐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함께 있으매 들뜨고 웃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아 좋았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생그러웠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여러 번 바라봤기에

그저 함께 있다는 것이

못내 좋았고, 또 좋았습니다.







정성스레


집으로 가져온 꽃다발은

저의 작은 방을, 아니 모든 집을

좋은 향기로 채워주었습니다.

이 작고 적막한 공간에

살아있는 녀석이 있다는 것이

하물며 좋았습니다.



부모님은 그냥 페트병 같은 걸 잘라서

물을 채우고 넣어주면 된다고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습니다.

많은 것을 해주진 못하더라도

조금 더 정성스레 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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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소에 찾아가

한 번도 찾아간 적 없었던

정원 코너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 놓인 형형 색색의 화분들

어떤 것이 좋을까 예쁠까

크기는 어떤 게 좋을까

입구는 얼마나 돼야 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다가

투명하고 곡선이 잡힌

평범하다면 평범할

그래서 꽃이 더 빛날 것 같은

가벼운 화분을 집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물을 채우고

수돗물을 써도 될까

얼마나 넣어줘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 많은 꽃다발의 줄기가

하나의 입구에 딱 들어맞을 때

이 친구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준 것에

저는 이따 만치로 기뻐했고

어디에 두면 어여쁠까 고민하다

공부하고 작업하며 오랜 시간 앉아있는

책상 한 구석에 놓았습니다.



알록달록한 아이들의 편지지와

소중한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이

함께 있는 공간이었기에

그조차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부디, 오랜 시간 아름답길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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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아름다움을 며칠을 가지 못했습니다.

햇빛도 잘 들지 않고 통풍도 안 되는

1층 작은 원룸이었기에

꽃은 금세 시들해졌습니다.

꽃봉오리는 약하게 늘어지고

꽃잎은 하나 둘 떨어졌습니다.



너무 안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나를 축하해 주러 이곳에 왔는데

너무나 황량한 환경이

이 친구를 금세 시들게 한 것 같아

많이 미안했습니다.

어느새 반 넘게 없어진 물이

이 친구가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 쳤는지

내게 소리치는 것만 같아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나를 위하지 말고 마음을 주지 말고

더 좋은 사람, 더 좋은 환경에 갔다면

적어도 최소한 햇빛이 드는 집이었다면

이렇게 빨리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을 텐데

괜스레 이곳에 와서

금방 빛을 잃어버린 것에

나의 잘못인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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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떠나가기 전에

빛이라도 많이 받길 바라며

집 밖에 있던 작은 문턱 위에

옮겨줬습니다.



아직 날이 추워

오랜 기간 빛나진 못하겠지만

하루라도 자기 다운 곳에서

아름다운 색을 뽐내며

이곳을 떠나길 바랐습니다.

그래야 적어도 이곳에 찾아와

고생한 이 친구에 대한 미안함이

덜어질 것 같았습니다.






아프게도



부모님은 생화가 금방 시들겠지만

그래도 피어있는 동안은

충분히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으니

그래서 생화가 좋다고 말했습니다.



덕분에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었고

작은 방에 좋은 색을 남길 수 있었고

처음 정원 코너를 찾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생화가 좋았습니다.



더 좋은 환경을 주지 못해 미안해하다

스스로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평소에 생활하고 살아가며

이번처럼 소중하고, 곁에 두고 싶은 존재가

갑작스럽게 찾아올지 모르는데



나를 둘러싼 나의 환경

이것들에 빈자리를 남겨두고

마음에 여유를 만들어뒀다면

이렇게 떠나보내며

아쉬워하진 않았을 텐데



꽃이 지는 건 당연하지만

내가 마음에 여유가 없어

못해준 것, 실수한 것만 떠오르고

향기, 색채, 부드러움을 잊어버린 채

떠나보내지 않았을 텐데



아마도 저는,

식물을 기르기 정말 좋은

빛과 물과 바람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들 전부를 꽃에게 주더라도

내 생각에 여유와 빈자리가 없기에

꽃이 지는 순간 지금과 같이

아파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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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빈자리



그렇기에 아쉬움이 큰 만큼

마음을 가꾸고 여유와 빈자리를 만들고

가꾸어가는 데 집중해야겠습니다.

아름답고 소중하며 아끼고 싶은

그 어떤 존재가 찾아온다면

기꺼이, 만족스럽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도록



혹은 내게 찾아오지 않더라도

그 빈자리엔 나 자신이 살아갈 테니

그 빈자리에 살아갈 나 자신이

스스로 얼마나 가꾸었는지 알 테니

그곳에 있는 자신을 소중히 여길 테니



그러다 소중한 존재가 온다면

가장 좋은 빛과 물과 바람

그보다도 좋은 여유로움과 위로를

전해줄 수 있을 테니



함께 시간을 보내고 행복해하다

어쩔 수 없음에 떠나가더라도

못해준 것, 아쉬운 것보단

행복했고 좋았던 것을

내게, 그리고 존재에게

남겨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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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를 준비해 둬야겠습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