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의 마티스 미술관

by 틈새


남프랑스 니스에 있는 마티스 미술관.

전시실 벽 한 면을 다 차지하고 걸려있는 「폴리네시아, 바다」 앞에 서있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태피스트리로 제작된 작품이다. 태피스트리는 여러 가지 색실로 그림을 짜 넣은 직물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종이를 오려 붙인 작품은 이를 위해 도안이다. 미술관에 오면서 「폴리네시아, 바다」와 「폴리네시아, 하늘」이 전시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뜻밖에 직물로 되어있는 작품을 만난 것이다.

몇 년 전 파리에 갔을 때 퐁피두센터에 있는 전시실에서도 이 작품을 만났다. 태피스트리가 아니고 우리가 미술책이나 전시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종이를 오려 붙인 작품이었다. 사실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된 것은 서울에서 열린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 특별전에서였다. 전시회의 제목은 「화가들의 천국」이었다. 파리에 가기 전 일이다.


그날은 섣달 그믐날이었다.

섣달 그믐날 오후 세시. 설날 음식 장만으로 가장 분주해야 할 그 시간에 퐁피두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미술관의 전시실, 앙리 마티스의 「폴리네시아, 바다」 앞에 서있었다. 마티스가 타히티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그렸다는 그림이다. 격자무늬 배경에 진한 파랑과 연한 파랑이 동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주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캔버스에 하늘색과 파란색을 칠하고 그 위에 종이를 오리고 붙여서 만든 작품이다. 해초 모양의 테두리 안에 바닷속 풍경이 전개되고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의 모습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담겨있었다.

미술관으로 향하는 눈 덮인 덕수궁 돌담길을 혼자 걸었다. 조금도 춥지 않았다. 즐거운 여행 중이니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어느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여행, 나 혼자서 즐기는 혼자만의 여행이었기에 비밀스럽고 은밀했다.


그 시간, 서해안의 폭설 소식이 시간마다 주요 뉴스로 보도되고 있었다. 서울의 거리거리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있는데도 나는 한없이 포근했다. 기온은 내려가지만 내 마음은 따뜻한 봄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창밖은 꽁꽁 얼어있는 눈 세상인데 미술관 안은 아주 따뜻했다. 외투를 벗어 들었다.


타히티의 바다는 이러했을까? 그가 타히티에서 바라본 하늘은 곧 바다이고 바다는 하늘이었단 말인가? 하늘과 바다가 같은 푸르름으로 안겨오는 남태평양의 작열하는 태양빛과 에메랄드빛 바다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난 지금 타히티의 해변을 거닐고 있다. 동이 트는 새벽의 해변도 좋고 강렬한 햇빛이 내리쏟아지는 정오의 해변이라도 좋아. 아니, 해가 지고 있는, 석양의 노을빛이 아름다운 저녁 시간의 해변이라면 더욱 아름답지 않겠는가.


섣달 그믐날 오후 세시,

지금쯤 서너 가지 나물을 무쳐 그릇그릇 담아 내놓고, 앞치마에 기름 냄새 묻혀가며 대여섯 가지 전도 부쳐 채반에 펼쳐 놓고, 고기를 양념에 재다가 흘러내리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구부러진 허리를 잠시 펴고 있을 시간. 20여 년을 그렇게 살아온 세월을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오랜만에 찾아온 자유로움을 한 치의 버림도 없이 만끽하려 타히티의 해변을 걷는 비현실 속의 나를 즐기는 시간, 화가들의 천국이 나의 천국이었다.

니스에 오면서 꼭 가보려고 마음먹은 마티스 미술관에 오려고 마세나 광장 라파예트 백화점 뒤에 있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탔다. 25분쯤 걸린다는데 버스에는 노선도도 다음 정류장에 대한 안내 방송도 없었다. 길치, 방향치인 내가 엉뚱하게 다른 곳에서 잘못 내릴까 봐 20분이 지난 다음부터 차창 밖으로 시선을 고정하고 정류장 이름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듯, 뒤쪽 의자에 앉은 잘 차려입은 할머니가 점잖은 목소리로 나에서 “뮈제 마티스?” 하고 물었다. 너무 반가워서 “예스”하며 웃었더니 두 손으로 손사래를 치며 걱정하지 말란다. 자기가 알려줄 테니까 안심하고 있으라고 몸짓으로 말해준다. 정말 그때부터 마음 놓고 있었더니 내릴 곳을 알려주고 창밖으로 미술관 입구로 들어가는 길 방향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마티스 미술관이 있는 시미에 지구가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 하더니 부잣집 마나님의 품위 있는 친절이 빛이 난다.

빛바랜 빨간색 미술관 건물은 17세기 말에 완성한 이탈리아식 건물이라는데 낡아 보이지만 주변의 자연과 참 잘 어울린다. 이곳에는 마티스 자신이 기증한 작품과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내가 기증한 작품, 그리고 그의 자녀들과 상속인이 기증한 작품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미술책이나 전시회에서는 볼 수 없는 작품들이 많다. 특히 작품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드러난 연습작들에서는 화가의 호흡과 체취가 느껴졌다. 오랜 세월이 지난 고풍스러운 작품들에서 화가의 땀방울이 느껴진다. 그림뿐 아니라 드로잉, 조각품, 그가 사용했던 개인 물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로사리오 성당을 설계, 건축하고 인테리어 일체를 맡아 진행하면서 모든 기법을 동원하고 열정을 쏟으며 얼마나 고심하였는지 알 수 있는 과정도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되어 있다. 이 성당의 설계과정은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선물해 주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오니 미술관 옆에는 마티스가 산책을 즐겼다는 올리브 나무숲과 로마 유적지가 있다. 이곳에서 마티스는 노년을 보냈다. 73세에 니스에 돌아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노년의 열정을 불태웠다. 마지막에는 휠체어에 앉아서 작업을 했다는 그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의지를 생각하며 천천히 올리브 나무 사이를 거닐어 본다.



섣달 그믐날 오후, 이제 편안해도 괜찮다고 날 위로하던 화가. 이곳에서 그를 만나 오늘 또 위로를 받는다. 그가 그림에서 이루고자 했던 균형과 순수와 고요를 생각하며 그가 걸었을 길을 따라 걷는다. 내 인생의 균형과 순수, 그리고 고요를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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