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다닐 때 연말이 되면 하는 일이 있었다. 연말정산에 필요한 근로소득공제 신고이다. 어느 해에 서류를 챙기다가 문득 내 최초의 소득은 언제 무슨 일을 해서였는지 궁금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대여섯 살 때였던 것 같다. 우리 집은 학교 안에 있는 관사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는 않았지만 행동반경은 늘 학교 안이어서 수업 시작종과 끝종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냈다. 중간체조 음악이 흘러나오면 달려 나가 운동장 가의 살구나무 밑에서 체조를 하고 청소 시간이면 화단 주변에서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는 내게 심부름을 시켰다. 매일 오전 10시쯤에 학교 교무실에 가서 그 전날 신문을 챙겨다가 어머니께 갖다 드리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내 최초의 아르바이트였던 셈이다. 어머니는 내게 그 일의 대가로 한 달에 얼마간의 돈을 주시겠다고 했다. 신바람이 났다. 날마다 학교 운동장에서 혼자 심심하게 놀던 내게 일이 생겼고 거기다 돈까지 벌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나는 그 일을 아주 충실하게 수행했던 것 같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교무실에 가서 신문을 가져왔다. 집안 청소를 말끔히 끝내고 내가 가져온 신문을 읽는 어머니 곁에서 나도 그림책이나 책을 읽으며 뒹굴거렸다.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지금도 책을 손에 들고 창가에 앉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은 아마 그때부터 생겨난 습관인지도 모르겠다.
그 심부름으로 얼마의 돈을 받았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수입은 가끔 방문하는 손님들이 주시는 용돈과 함께 모두 저금통으로 쏙쏙 들어갔다.
내 위의 두 언니도 모두 저금통이 있었다. 학교 안에 살았기 때문에 군것질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유난히 정갈하던 어머니는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과자나 사탕을 사 먹는 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 가게의 물건은 신작로의 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있어 비위생적이고 불결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우리는 돈을 소비할 일이 거의 없었다. 내가 고사리 손에 돈을 쥐고 교문을 나서 그 가게로 달려가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는데 체육대회 때나 소풍 가는 날, 또는 내 생일 같은 특별한 날 엄마의 허락이 떨어졌을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세 자매의 저금통이 모두 털렸다. 엄마가 그 돈을 모아 동네 어느 집에 쌀 한말을 빌려주신 것이다. 쌀 한말이었는지 한 가마니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아마 쌀을 기준으로 돈은 빌려주고 시세에 맞게 받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돈이 이자를 달고 불어나 얼마가 되어 우리 손으로 다시 들어왔는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단지 내 기억의 조각 중에 이런 장면이 있을 뿐이다.
어느 여름날 저녁에 어머니를 따라 언니들과 함께 뒷동네 어느 집에 갔다. 울도 담도 없는 허름한 집에 들어섰더니 어른은 없고 어린아이 둘이 둥근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우리는 이미 저녁을 먹은 지 한참이 지난 시간이었는데 늦은 저녁을 먹고 있는 아이들의 밥상에 놓인 반찬이라고는 된장국 한 사발뿐이었다. 그리고 그 된장국 안에는 호박 두어 조각이 떠다니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어머니가 훌렁한 국그릇을 보더니 부엌으로 들어갔다. 빈손으로 다시 방에 들어온 엄마는 ‘호박이라도 넉넉하게 넣어 끓이지’ 하며 안타깝게 아이들의 밥상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아이들 등을 도닥여 주고 말없이 우리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 돈은 사라지고 말았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돈이 가끔 생각이 나는 건 열심히 저금통에 돈을 넣은 것만 생각날 뿐 모은 돈을 나를 위해 또는 뭔가를 위해 썼다는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돈을 모으는 것만 생각했지 모은 돈을 잘 쓰는 것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하여 나의 아이들에게도 여느 집처럼 저금통을 마련해주고 돈을 모으게 했다. 내 어린 시절의 일이 생각나서 엄마의 소유와 아이들의 소유를 분명하게 해 주고 낭비하지 않고 돈을 모으면 어떤 목적을 위해 써야 한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모은 돈으로 평소에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게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투자하게 했다.
아이들은 돈을 모아 할머니 선물을 사고 방학이 되면 수영 강습반에 등록하기도 했다. 대학생이 되자 유럽 배낭여행 계획서를 들고 와 부족한 여행비를 지원 요청하기도 했다. 자기가 모은 돈을 투자하는 일은 훨씬 더 정성을 기울이며 열심히 했다.
큰 아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더니 월급관리에 관심을 갖고 내게도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넉넉하지 않은 수입에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생활을 실천하고 있어 마음 뿌듯하다. 나 또한 주변을 돌아보며 사는 일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싶다.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마음만은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