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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Dec 12. 2023

다정함 속에 숨겨진 비밀

투덜거림 속의 다정함이라 더 소중한 거였다.


'다정함'이란 주제를 툭 건드려지고 갔다.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 나 키움 스터디에서 한 줄기 문장을 남기고 갔다



새벽까지 뭘 붙잡고 몸부림치느라   새로운 하루 시작이 남들보다 늦었다.

이젠 익숙한 듯 내 몸에 젖어들었다.

아뿔싸~





잠을 실컷 잤다는 포근함과 더불어 늦었다는 조급함이 밀려왔다.

벌써 각자의 놀이터로 떠난 반쪽이와 딸의 빈자리만 남겼다. 

세상모르게 자고 나니 10시가 넘은 시간을 확인하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사무실 일거리가 있어서 출근해야 하는데 너무 늦게 일어났다.


"이제 일어났어.


좀 있다 갈게


아침 안 먹고 갈 테니 이때 같이 점심 먹을까?"


어느 때 세상 친절한 신사가 되어 내 말에 고분고분 잘도 들어주는 남편이었다.

생각해 보니 내 말을 들어주는 날이 70프로 

아주 자상한 것 같은데 가끔씩 훅 올라오는 감정을 나에게 막 쏟아부을 때는

그 사람의 몸에 마귀가 들어있는 느낌이었다.

좋은 부분보다는 모난 부분이 크게 다가와서 상대적으로 커 보였다.


"괜찮다며 천천히 와

그래, 이따 나가서 먹자"


나긋나긋한 한마디 말에 다시 침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오전이 저물어가는 시간에 사무실로 향했다.

이럴 때 남편이 사장인 게 천만다행이었다.



허둥지둥 사무실로 이동하고 어수선한 책상 위에 초코파이 하나가 허기진 나를 끌어 앉았다.

한 입 베어 물고 현장에 일하는 남편에게 인심 쓰듯 입으로 쑥 내미니 아기처럼 잘도 받아먹었다.

손바닥만 한 초코파이를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세 조각씩 다정다감하게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작은 행복이 찡한 코드에 스쳤다.

우리는 부부라는 같은 배를 타고 서로를 의지하며 항해하듯 이끌고 있었다.


늦게 출근한 나를 위해 이미 본인이 할 수 있는 내 일들은 다 해놨다. 

내 영역(명세표 출력) 간단히 끝내고 자주 가는 동태 집으로 다정스럽게 함께했다.

 소주 한 잔 걸칠 생각에  차를 놔두고 내 차로 가잖다.

아마 힘든 마음을 달래주는 최고의 선물은 '소주'였다.

바쁜 일정이 한 자락 잡히니 약간의 여유가 생긴 것 같지만 아직까지

본인에게 휴식이란 자유는 너무 멀고 먼 여정이었다.

매 일상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는 나이기에 남편의 분주함이 미안할 때가 많다.


혼자만 자유를 누려도 되는 걸까?

이런 소소한 행복을 함께 누리면 좋을 텐데...



식당에서 먼저 나온 밑반찬을 먹더니 두부 한 조각을 내 입에 넣어준다.


 "배고프다며"


카톡에 온 메시지에 댓글을 다느라 분주한 나를 위해 이번에는

남편이 나를 챙기는 모습이 쨍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초코파이를 내가 매겨준 것처럼...

끓어오르는 동태탕에서 고니를 건져 남편의 냄비에 살며시 넣어주니

그 보답으로 기다랗고 고소한 알을 꺼내 내 그릇에 담아 주었다.



오랜 시간 함께 한 세월인지라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했다.

딱 거기까지가 다정함의 끝이었다.


시원한 동태탕으로 딱 30분 마주하는 시간은 우리를 38선보다

못한 갈등과 상처로 서로를 짓눌렀다.

현재, 지금 상황만 얘기하면 되는데 자꾸 과거를 꺼내와서 서로의 상처를 건드렸다.

남편이 몇 달 전의 엇갈린 상처를 꺼내왔다.

그에 질세라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 더 큰 화를 불러왔다.

이번에는 몇 년도 넘은 묵혀놓은 감정 찌꺼기의 딱지를 건드려서 꺼내왔다.

자존심 싸움이라도 하듯 우리는 오래된 상처 하나를 꺼냈더니 줄줄이 끌 여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온 상처들은 우리의 맛있는 점심을 망쳐 버렸다.


누구의 탓이라고 하기에는 서로 너무 건드렸다.

시원한 동태탕은 쓰디쓴 상처를 곱씹느라 힘들게 쑤셔 넣었고

그나마도 쓰디쓴 소주는 더 쓴맛을 추가해서 상처의 쓴맛까지 가해진 상황이었다.

마지막은 늘 먼저 손 내민 남편의  사과였지만 그마저도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사과할 생각도 없으면서....

내 잣대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 모순을 버려야 했다.


왜?

나는 가끔씩 남편의 넋두리를 받아주지 못한 걸까?


그냥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굳이 내 관점 해서 충고하고

결론 내리면서 남편의 감정은 자극하고 말았다. 

자기 시간 없이 일만 하고 사는 남편의 푸념을 들어주기만 해도 위로와 힘이 될 텐데..

다른 사람 말은 공감도 잘하고 이해도 잘하면서~남편에게는 무뚝뚝하고 인색한 나였다.

제일 소중한 남편에게는 그런 배려가 없는 내가 미웠다.

지금 현재의 남편은 마음에 여유가 일도 없는 상황인 걸 알면서 그런 사람에게 내가 좀 더 다정다감하게 대했어야 했다.


사무실에 혼자 남겨두고 납품 길에 오른 내 마음은 또 늦은 후회의 알아차림 이였다. 

삶은 어리숙한 행동 끝에 반성이란 단어와 마주하며 삶의 끝자락을 붙들고 아우성 중이었다.


다정함은 평범한 일상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어우러짐과 투덜거림 속에 다정함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납품하고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남편은 벌써 기분이 다 풀린 모양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아련하기 들리는 남편의 구성진 노랫소리가 내 마음을 달래줬다.


허물없이 편한 사람.

많은 걸 이해해 주는 사람.

작은 단점에 집중하지 말고 수없이 많은 장점에만 집중하자.

그 사람이 가진 매력은 나에게 분하게 넘친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다정함이 더 빛나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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