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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Dec 26. 2023

마음 읽기와 마음 헤아리기

열린 마음이 다시 굳게 문을 닫았다.


피곤한 몸을 붙잡고 가만히 쉬는 거에 익숙하지 않아서 읽다만 책을 손에 쥐고 있는데

갑자기 어제 일어났던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좋은 관계에는 노력이 필요했고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 관계의 언어 -


지금 읽고 있는 책 "관계의 언어"를 접하다 보니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상호 존중과 인정욕구가 중요했다.


인간관계의 폭이 넓지 않은 돼도 사람들과의 원활한 관계가 쉽지 않은 일상이었다.




시간은 딱 하루를 되돌려 어제의 일상으로 거슬려간다.

아들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양쪽 할머니께 안부전화를 드리고 싶다고 생뚱맞게 할머니 연락처를 물었다.


이틀 전에 아빠에게 할머니 전화번호를 물어서 핸드폰에 저장해 놓았다.

나이가 있어서 두 할머니 다 병원에 계신 상황인 걸 인지했다.


특별히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없었다.

힘들게 키웠다며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구속하고 무언가 요구하는 게 싫었다.


우리 세대와 다르게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들..

힘든 일을 겪어보지도 않았고 아직 삶의 경험이 부족한 상황이라 쓸데없이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는다.

잔소리가 먹힐 리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이 스스로 작은 행동과 실패로 인해서 얻은 참된 교훈을 얻기를 바랐다.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자기만의 답을 찾는 인생 여정이기를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믿고 기다리고 지지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만 할머니에게 전화를 안 드리는 걸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무슨 이유였는지 어제는 나에게 외할머니 핸드폰을 물었다.

곧바로 번호를 알려주고 그 자리에서 전화를 드렸다.

아마 친할머니보다 외할머니가 편했나 보다.

단단한 각오로 오랜만에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는데 할머니는 누군지 알리 만무했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되어서 할머니께 장난을 쳐라고 귓속말로 슬그머니 중얼거렸다.


"할머니 저 누군지 아세요?"


가냘픈 남성 목소리에 할머니는 다른 큰 손자 이름을 내뱉었다.

그때 아들의 외마디에서


"저 누구인 돼요. 할머니 잘 지내셨나요?"


간단한 안부 인사로 어려운 첫마디를 꺼냈다..


뜻밖의 할머니의 답변에 아들의 기분 좋은 안부전화에 허탈한 마음을 안고

아무 말도 못 한 채 침묵으로 막을 내렸다.


"이놈의 새끼


그냥 집에 있지 말고 아빠 회사 가서 아빠 일 좀 도와야지!


아빠는 힘들게 일하는데 젊은 놈이 뭐 하는 거야"


한 번에 끝낼 잔소리가 아니었다.

얼떨결에 폭풍 야단으로 아들은 얼음땡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의 잔소리는 거센 진동과 함께 가까이 있는 내 귓가에까지 울려 퍼졌다.

큰 마음먹고 힘들게 전화를 드렸는데 그 얘기는 나중에 해도 될 모양인데 첫마디부터 성난 파도처럼

거칠게 내뿜는 할머니의 외마디가 마음 여린 아들의 마음에 상처로 남았다.


우리는 날마다 부지런히 타인의 속마음을 읽는다.

그런데 과연 제대로 읽고 있을까?

외할머니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던지고 말았다.


따뜻한 말 한마디 던지고 엄마가 원하는 말을 했으면 좋았을걸..

열린 아들의 문이 다시 닫혔다.


진정한 공감은 '상대의 주관적 경험을 바꾸려 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동참하거나 공유하는 것'

바로 마음 헤아리기였다.


아들의 마음을 조금 헤아렸다면 할머니가 하는 말에 집중해서 듣고 '알겠다"라고 공감했을 것이다.


옆에서 내가 전화를 가로채서 그냥 안부 인사를 했지만 엄마는 나에게까지 계속

아들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았다.

엄마의 입장은 이해는 가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존중했어야 했다.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을 모를 리 없지만 엄마는 아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몰랐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 당장 일을 하지 않는 게 어른 들 눈에는 걸림돌이었나 보다.


남과 다른 존재였다.

아들은 좀 느린 아이였고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자기만의 보폭으로 열심히 삶의 한 발자국 걷고 있는 중이었다.

내 눈에는 보였다.

아니 그리 믿고 싶었다.


외할머니의 불통으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드리려는 간절한 소망은 물 건너갔다.

닫힌 마음으로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누구에게는 작은 한마디가 큰 상처로 다가오는 법이었다.

말을 신중하게 내뱉는 거였다.

한 번 내 던져진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 '관계의 언어"를 접하다 보니 어제의 생생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자식을 교육하는 지침서가 없어서 좋은 책을 가까이 접하는지 모르겠다.

인생에 무지가 엄청난 결괏값을 가져온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소한 선택과 마주한다.

그 선택의 책임은 오로지 내 몫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완벽한 선택이 없음을 안다.

좀 더 현명한 선택을 내리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배경지식이 필요했다.

후회라는 단어와 마주하지 않기 위해 사물의 옳고 그릇을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이 중요했다.


"소중한 사람이 고통스러워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방어 상태가 되어 경계를 세운다.

이 경계는 "안전감"과 '연결감"을  느낄 때 다시 열린다.

주위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안전감과 연결감을 제공하는 것이고, 이는 해결책을 제시할 때가

아니라 상대방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할 때 가능하다.

-관계의 언어-


이 문장을 읽는데 어제의 짤막한 일화가 내 머릿속을 멤 돌아서 이 공간에 풀어봤다.


어떻게 상호 성장의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첫째 : 일상의 작은 관심과 반응이다.


둘째 : 새로운 경험을 늘리는 것이다.


셋째 : 각자의 경험으로 서로를 자극한다.


넷째 : 상대의 꿈과 성장을 응원한다.


상대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관심을 갖고 응원한다.




관계를 맺다 보면 온통 남과 비교 대상이 내 마음을 힘들게 할 때가 많았다.

보이는 것만 좋아 보이지 남들도 똑같이 흔들리는 인생을 살고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이다.

성공한 삶 속에서는 피나는 노력이 존재했다.

역경 속에 희망이 보였다.

그 역경을 삶의 발판으로 삶을지?

역경에 불평만 할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었다.


흔들리는 삶 속에서 아들은 자기의 보폭으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관계에서 노력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었다.

-관계의 언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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