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우리가 언젠가 답해야할 질문

알베르 카뮈 <이방인>

by 김준겸

우리는 언젠가, 죽음이라 문 앞에 홀로 서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우리는 삶이라는 여정의 의미를 다시 묻게 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른다.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어도 이 문장을 아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문학 작품 '이방인'의 첫 문장이다. 단 한 문장만으로 이렇게 큰 충격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이 한줄로 우리는 작중 주인공인 '뫼르소'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뫼르소는 어머니의 나이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죽음에 눈물도 흘리지 않는다.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문지기가 권하는 밀크커피를 마신다. 이렇듯 뫼르소는 과거의 추억이나 미래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도 없는 단지 욕구에 따라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욕구에 이끌려 살아가며, 부모의 죽음조차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뫼르소는 앞선 사회적 틀에서 벗어난 행위에 의해 부조리와 마주하며 사회의 이방인으로 내몰린다. 스스로의 삶을 천천히 돌아보며 부조리와 정면으로 마주한 뫼르소는 비로소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이방인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장면은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동반한다. 아마 뫼르소의 감정 역시도 이와 같았으리라.




당신은 왜 자살하지 않는가?

뫼르소와 함께 이 작품 속을 나아가다 보면 뫼르소는 굉장히 독특한 성격을 가졌으면서도 어쩐지 익숙한 모습이 겹쳐보인다. 그렇다. 우리의 모습이다. 뫼르소는 어제와 내일을 잃어버린채 하루하루 '살아지고' 있는 현대인들과 닮아 있다.


뫼르소처럼 현대인들 역시도 사회를 살아 가면서 수많은 부조리를 마주한다. 그중에서 가장 큰 부조리는 아마 '죽음'일 것이다. 우리 인생의 끝은 결국 죽음으로 귀결된다.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결국 우리는 모두 사형수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삶을 이어가는가. 부조리로 가득찬 삶을. 생각해 보아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힘들기만 하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봐야 그 끝은 정해져 있다. 허무하지 않은가. 그러나 바로 그 허무함이 삶을 더욱 선명하게 비춘다. 꽃은 지기에 더 아름답고, 청춘은 짧기에 더 소중하다. 죽음이라는 결말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고 우리 삶 흔적을 하나 하나 되새겨 준다.


이방인을 통해서 카뮈는 말한다 부조리를 피하지 말고 당당히 마주하라고. 뫼르소가 끝에 가서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처럼. 부조리를 당당히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의미를 갖게된다.


뫼르소와 같은 '이방인'인 당신에게 묻겠다, 죽음을. 당신은 어떤 삶으로 그 질문에 대답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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