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2025-11-13

by 김준겸





지금, 나는 타자를 두드리고 있다. ‘톡..토독..톡’ 글을 써내리고 있다. 사유의 바다에 몸을 맡기고 있다.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선선한 바람이 지금, 나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옆에는 동기 한 명과 선배 한 명이 즐거이 떠들고 있다. 그들도 오늘을 즐기고 있다.


창밖에는 오후의 저물어가는 해가 비스듬히 우리를 비추고있다. 문득 구석의 빛이 들지 않는 곳이 보인다. 지금 여기, 내가 있는 과방은 낮과 밤이 공존하는 곳. 이곳을 거쳐간 수 많은 사람들의 오늘과 어제가 공존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그 시간과 기억이 있기에 이곳은 무척이나 아름답다.


시간을 달리는 시계의 초침이 이제 곧, 4시를 알린다. ‘틱...틱...틱...철컥’ 새로운 사람들이 지금 과방에 들어왔다. 새로운 우주가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늘 하는 평범한 인사. 그러나 ‘안녕’이라는 말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 말은 울림이다. 우주와 우주가 만날 때, 그 만남에서 오는 울림. ‘내가 오늘을 살고있구나’를 느끼게해주는 떨림.


그 떨림에서 다시, 수많은 가능성이 퍼져나간다. 탄생의 경이로움. 하지만 이내, 그 떨림은 잦아든다. 고요한 침묵.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침묵이 있기에, 새로운 울림이 피어난다는 것을. 그렇기에 떠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안녕히가세요.”


이제 나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다음 수업을 들으러 간다. 천천히 걸어 도달한 강의실 앞. 나는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번에는 내가 이방인이다. 그리고 들어간 강의실에는 수많은 가능성들이 있다. 앞에는 수업을 준비하시는 교수님,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우주가 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래되었든지, 얼마나 거대하든지, 우리는 지금 여기서 만났다.


이윽고 교수님이 수업을 시작하셨다. 강단에서부터 불기 시작하는 바람에 누군가는 귀를 기울이고, 누군가는 스르르 잠에 든다. 그 부드러운 바람에 누군가는 도취하고, 누군가는 꿈속으로 들어간다.


오늘의 바람은 아테네,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다. 고대의 사람들에게도 지금, 여기가 있었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져간 그들의 어제를, 우리는 오늘 배운다. 아니, 느낀다. 우리가 어제를 배우는 건, 그들에게는 그것이 오늘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도 우리처럼 ‘안녕’이라는 왕관으로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을 축복했었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의 바람에 섞인 낙엽은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의 이야기. 스스로를 보고 돌이 된 사람. 아니 스스로를 보았기에 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이제 이야기는 파르테논 신전으로 향한다. 파르테논 신전이 착시를 이용한 건축물이라고, 교수님이 설명해주신다. 고대인들은 어쩌면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이 착시라는 것을 알고있었는지도 모른다. 서로의 우주가 너무나 크기에, 우리는 착시를 통해 서로의 우주를 본다. 착시는 원래의 모습을 가린다. 동시에, 가려진 것을 드러낸다.


수업이 끝나고 돌아온 과방. 더 많아진 사람들이 지금을 즐기고 있다. 더 커진 과방이 나를 맞이한다. 더 많은 소음들이, 아니 더 많은 울림들이 서로 공명한다. 수많은 떨림, 그리고 탄생.


이런 수많은 울림과 떨림이 있기에, 나에게 오늘이란, 생각하면 할수록 더더욱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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