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인간, 그리고 지워진 비명
자연과 인간, 그리고 갈등
제주도 도착 후 첫 일정은 한림 수목원이었다. 제주도는 섬 전체가 거대한 원시림과 같은데, 굳이 울타리를 치고 '수목원'을 조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곳에서 자연의 압도적인 무질서와 무심함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보았다. 날것의 자연은 인간을 응시하지 않지만, 정돈된 수목원은 인간의 시선에 맞춰 안전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통제의 욕망'은 '분재원'에서 가장 기괴한 형태로 드러났다.
분재란 무엇인가? 하늘을 향해 거대하게 뻗어 나가야 할 나무의 본성을 억제하고, 인간이 정해놓은 작은 화분 속에 강제로 가두어 놓은 것이다. 뿌리는 잘리고 가지는 비틀린 채, 오직 인간의 미적 기준을 위해 '축소된 자연'. 그것은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야생을 이성의 감옥 안에 가두려는 인간의 치열하고도 슬픈 투쟁처럼 보였다. 이러한 통제 욕망은 제주의 개발 과정에서도 반복된다. 대규모 리조트 건설과 관광지 조성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보다 인간의 편의를 위한 '상품'으로 가공하려는 시도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자연과 인간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수목원을 벗어나 협재 해수욕장에 섰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폭력적인 바람이었다. 태풍처럼 몰아치는 바람은 내 몸을 휘청거리게 했고, 그제야 나는 수목원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날것의 자연 앞에 서 있음을 실감했다. 제주의 바람은 낭만이 아니라, 인간의 보행조차 허락하지 않는 압도적인 물리력이었다.
그 혼돈 속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바다 한가운데 꼿꼿이 서 있는 ‘풍력발전기’였다. 거센 바람에 맞서 끊임없이 날개를 돌리는 그 하얀 기계는, 마치 자연이라는 거대한 용에 맞서 싸우는 강철 거인처럼 보였다. 돈키호테는 풍차를 거인이라 착각하고 돌진했지만, 내 눈앞의 저 풍차(발전기)는 실제로 자연을 정복하려는 인간 의지의 거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할 정복일까? 발전기는 바람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힘을 역이용하여 자신의 에너지로 삼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의 합일이 아닐까. 자연의 야성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문명의 동력으로 변환시키는 공존의 기술. 그러나 이 거대한 날갯짓 아래에서도 인간의 이해관계는 끊임없이 부딪힌다. 아슬아슬한 공존조차 지역민에게는 '청정에너지라는 명분 vs 소음과 경관 훼손'이라는 또 다른 갈등의 씨앗이 된다.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이분법을 넘어, '어떤 방식의 공존인가'를 묻는 것이야말로 지역사회 화합을 위해 우리가 건너야 할 강이다.
둘째 날 마주한 천지연 폭포와 주상절리는, 인간의 언어로 포획할 수 없는 '자연의 원형' 그 자체였다. 폭포의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물줄기 앞에서 나는 인간이란 존재가 거대한 중력(자연의 섭리)을 거슬러 오르려 발버둥 치는 한 마리의 연어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숭고한 도전일 수도 있지만, 압도적인 물리 법칙 앞에서는 한낱 미미한 몸짓에 불과했다. 특히 주상절리 앞에 섰을 때, 나는 전율했다. 인간이 자와 컴퍼스로 겨우 그려내는 육각형의 기하학을, 자연은 용암이 식어가는 그 단순한 물리적 과정만으로 완벽하게 구현해 놓고 있었다.
"신이 만든 기하학." 저 육각기둥들은 인간에게 "너희의 문명도, 예술도, 질서도 결국은 나(자연)의 일부일 뿐이다"라고 웅변하는 듯했다. 우리는 인공과 자연을 구분하려 애쓰지만, 자연은 그런 구분을 모른다. 자연은 그저 '스스로 그러할(自然)' 뿐이다. 우리는 자연을 정복했다고 믿지만, 그것은 잠시 자연의 침묵 위에서 도취한 착각이 아닐까? 나의 수많은 질문 앞에서도, 제주의 자연은 끝내 침묵으로 답할 뿐이었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보호해야 할 아름다운 것 혹은 개발해야 할 자원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 그러나 제주도의 거친 바람과 웅장한 천지연 폭포 앞에서 나는 자연이 인간의 도덕적 판단을 넘어서는 무심한 힘이라는 것을 느꼈다. 인간이 자연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연의 압도적인 힘을 어떻게든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여 가두어 놓으려는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연은 아름다움을 모른다. 개발과 보존 간의 지역사회의 갈등은, 결국 자연이 인간의 가치 아래에 종속된다고 여기는 오만함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공존은 자연을 숭배도, 정복도 아닌, 우리의 비극적 책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성과 야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하는 존재, 즉 반인반수 사티로스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4.3 사건: 지워진 이름을 찾아서
제주 4.3 평화공원에 들어서며 T.S. 엘리엇의 시구를 떠올렸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 땅에서 4월은 생명이 움트는 봄이 아니라, 잊고 싶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고통의 계절이었다. 공원의 이름에 붙은 '평화'라는 단어가 낯설게 다가왔다. 과연 이 평화는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을 진정으로 기리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피어나는 라일락(진실)의 향기를 견디지 못하고, 모든 비극을 서둘러 덮어두기 위해 붙인 망각의 이름은 아닐까?
기념관의 입구는 '동굴'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 제주 도민들이 학살을 피해 숨어들었던 생존의 공간이자, 빛이 차단된 어둠의 역사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나는 그 어두운 통로를 지나며, 밝은 햇살 아래서는 보이지 않던(은폐되었던) 역사의 지층을 목격했다. 그것은 이념의 전쟁이 아니라, 국가라는 거대한 힘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보여주는 처절한 비명의 기록이었다.
기념관의 입구에는 올바른 이름을 채워 넣어 세워지기를(정명) 기다리는 비어있는 비석이 하나 있었다. 그 비석을 처음 봤을 때에는 어떤 사연이 얽혀있기에 아직도 서지 못하고 누워있는지 의아했다. 마치 나를 좀 봐달라고 누워버린 것만 같았다. 비어있는 백비 앞에서 스스로를 비워낸 나는 이제 채워 넣기 위한 여정의 발걸음을 떼었다.
기념관 안에서 마주한 사건의 실상은 단순하지 않았다. 경찰의 총격, 확산된 봉기, 기회를 틈탄 세력들의 개입...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힌 그곳에는 '비극'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 비극의 끝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차가운 통계였다. 사망자 약 3만 명. "1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 명의 죽음은 통계"인 것일까. 그 차가운 숫자는 내가 방금까지 목격했던 뜨거운 비극을 순식간에 건조한 데이터로 지워버리는 듯했다.
통계의 허무함 속에서, 나는 입구에서 보았던 누워있는 비석, '백비(白碑)'를 다시 떠올렸다. 처음에는 "이름을 채워 넣어 세워지기를(정명) 기다린다"라고 생각했으나, 이제는 다르게 보였다. 어쩌면 '비어있음'이야말로 이 사건의 본질이 아닐까? 3만 명의 죽음을 하나의 단어로 규정하는 순간, 그 안에 담긴 3만 개의 개별적인 고통은 소거된다. 글자가 없는 저 침묵의 비석이야말로, 섣불리 이름을 붙여 역사를 박제하려는 국가의 시도에 저항하며, 희생자들의 이름 없는 고통을 가장 웅변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마치며
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비행기를 놓쳐버렸다. (분명 잠깐 눈을 붙인 것뿐인데..) 비행기 표를 새로 끊었지만 출발까지 2시간은 남았다. 제주에게 붙잡혀버린 나는 마지막으로 서늘한 제주도의 바람을 느껴보며 제주에서의 여정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다.
나는 수목원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을 보았다. 바다에서는 자연의 위대함과 그것마저 이용하는 인간, 그리고 인간 이해관계의 충돌을 보았다. 천지연에서는 거스를 수 없는 물리적 힘을 느꼈고, 주상절리에서는 자연의 섬세함과 아름다움을 몸소 체감했다. 그리고 4.3 기념관에서는 인간의 잔인한 본성, 그리고 숫자의 차가움과 통계의 폭력을 목도했다.
흔히 우리가 갈등이라 부르는 것들은 어쩌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이, 그것을 억지로 가두면서 발생하는 일종의 마찰열은 아닐까? 제주도는 나에게 "규정하지 말고, 그저 흐르게 두라"는 노자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스러져간 3만 명의 영혼들과 제주의 거친 바람은, 내 안에서 텍스트가 아닌, 흐르는 체험으로 계속해서 숨 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