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돈이 되진 않았어도 삶의 톤을 높여 줬다
철학.
무슨 생각이 드는가?
모든 학문의 뿌리? 만학의 왕?
괜히 심오해 보이고 어려운 학문?
사실 누군가 철학과로 진학한다고 하면 저런 생각보다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철학과 간다고? 너 돈 많아?"
"철학과 나와서, 뭐 먹고살래?"
"거기서는 뭐 배워?"
철학과는 복수전공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들 한다. 철학과에 오는 사람들은 자기가 가려는 길이 뚜렷하기에 오히려 취업률이 높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정말 취업과 돈 같은 현실적인 면을 바라본다면 상경계열이나 공대 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철학과에 왔을까?
바야흐로 내가 재수를 결심하고 공부를 하던 시절(이라고 해봤자 작년) 나는 지금의 나의 선택에 있어 큰 영향을 주게 된 과목 '생활과 윤리'를 만난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나와 철학의 첫 만남이었다.(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1년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안 철학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나의 이목을 끌었던 건 실존주의라는 분야였다. 실존주의는 세계의 근원이나 신의 존재, 절대적 진리처럼 거창한 주제보다 '나'라는 존재에 집중한다. 실존주의는 '나'에 대한 탐구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철학은 나의 삶과 한 발짝 더 가까웠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이런 생각에 흥미를 가지게 된 것에는 공부를 하던 당시의 상황도 영향을 끼쳤다. 내가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였다. 그때 처음으로 모두 똑같은 공부를 하고 있는 남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각자의 색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 독서실은, 내게 온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던 풍경이었다.
이런 장면 이후에 눈에 들어온 것은 '나'였다. 나 역시도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똑같은 장소에서 대학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똑같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어떤 회의감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난 뭘 위해 사는 거지?', '이렇게 그저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이런 생각이 실존주의에 대한 흥미로 이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잃어버린 내 삶을 찾고 싶어 철학과에 왔다. 가끔씩 삶이 아무런 의미가 없진 않을까 하는 허무감이 들 때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여정 속에서 내 삶에 대한 나 스스로의 답을 내리고 싶다.
지금 여기에 와서 당시를 회고해 보자니 당시 나의 생각이 편협하진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당시 나는 독서실이 흑백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러나 같은 장소에서 대학이라는 같은 목표를 위해 같은 공부를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바라보는 방향은 저마다 다 달랐을 것이다.
우리 인생을 한 선분으로 표현해 본다면 그들은 인생이라는 선분 위에서 잠시 스쳐간 점일 뿐이었다. 그들은 대학에 가서도 저마다의 목표가 있을 것이고, 저마다의 삶이 있을 것이다. 내가 본 독서실이 그랬던 것은 어쩌면 독서실 자체가 그렇다기보다 내가 흑백의 색안경을 끼고 그 장소를 바라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곳은, 실은 누구보다도 다양한 색들이 모여 빛나던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게 돈이 됩니까?
이야기가 잠시 새버린 감이 없잖아 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보자.
철학은 나에게 삶의 이정표였고 나침반이었다.
나의 삶을 살아있게 해 주었고, 살아가게 만든다.
물론 돈이 되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이보다 괜찮은 이윤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