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

클레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by 김준겸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 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 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아일랜드의 뉴로스 타운, 그곳에는 다섯 명의 딸 그리고 아내 아일린과 함께 사는 한 가장이 있다. 그의 이름은 빌 펄롱. 석탄과 목재를 판매하며 살아간다. 이야기는 1985년 11월의 바람과 함께 시작한다.



작품 속 시대는 겉으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그 실상은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로웠다. 날이 갈수록 실업수당을 받는 실업자들의 줄은 길어졌고, 현실에 좌절한 사람들은 늘어갔다.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현실에 소외된 사람들을 바라보며 펄롱은 아내에게 말한다.



"우린 참 운이 좋지?"

펄롱은 참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미시즈 윌슨이 그의 어머니를 가정부로 거두어 주지 않았다면, 저 실업자의 줄 사이에 펄롱이 있었을지도 몰다. 지금 그의 크게 부족함이 없는 삶은, 아니 어쩌면 남들에 비해 풍족한 삶은 미시즈 윌슨이 못 본채 지나치치 않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12월에 접어들며 크리스마스가 한 발짝 더 다가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펄롱은 석탄과 목재를 배달하러 수녀원으로 향한다. 그 수녀원은 직업학교와 세탁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세탁소에 맡긴 빨래들을 깨끗하게 세탁하기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수녀원을 둘러싼 소문은 수녀원이 그 빨래만큼 깨끗한 곳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수녀원에서 펄롱은 소문의 진실을 목격한다. 그곳에서 어린 소녀들은 학대에 가까운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중 한 소녀가 펄롱에게 자신을 대문 밖으로, 강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수녀원에서는 죽음의 자유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충격적인 진실 앞에서 펄롱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상품에 대한 값을 치르고 수녀원을 나올 뿐이다.



펄롱은 머릿속에서 방금 전의 장면이 떠나지 않았다. 펄롱이 나가자마자 자물쇠로 문을 잠그던 수녀, 그리고 바닥에서 윤을 내던 아이들의 모습들 속에서 펄롱은 길을 잃게 된다. 길 잃은 펄롱의 앞에 한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묻는 펄롱에게 노인은 이렇게 조언한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이 말은 비단 펄롱뿐만이 아니라 현실의 갈등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작가가 건네는 덤덤한 조언일 지도 모른다. 길을 잃어버렸다는 건, 이제 어느 길이든 원하는 곳으로 향하면 된다는 것. 길을 잃어버린 것도 결국 자신의 길을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모른 척해야 하는 일도 있는 거야. 그래야 계속 살지"

고민하는 펄롱에게 아내가 건넨 말이다. 어쩌면 함께 고뇌에 빠졌을 독자들을 향한 현실적인 조언 일지도 모른다. 아내와의 대화가 오고 갈수록 펄롱의 마음은 더욱 흔들린다.






석탄 광에서 펄롱은 한 소녀를 발견한다. 적어도 하룻밤 이상은 그곳에 머무른 듯 보였다. 그녀에게 외투를 벗어주는 호의 속에서도 펄롱의 내면 한 구석에서는 여기 오지 않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펄롱은 소녀를 수녀원으로 데려다준다.



"내 아기 어떤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수녀원 앞에선 소녀가 펄롱에게 말한다. 14주 전에 아이를 낳자마자 수녀원에서 데려가버렸다는 것이다. 펄롱은 이 말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인다. 소녀의 비극이 한 꺼풀씩 벗겨질수록 펄롱의 갈등은 깊어져만 간다. 그때, 수녀원장이 그를 안으로 부른다.



"들어오세요. 차를 끓이죠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수녀원의 실상을 모두 눈치챈 펄롱과 독자들 앞에서도 수녀원장의 가식은 이어진다. 수녀원장과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펄롱의 내면에는 사소한 용기가, 반항심이 피어난다. 수녀원장과 대화를 마친 펄롱은 소녀에게, 아니 세라에게 필요하면 자신을 찾을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수녀원을 나서는 펄롱의 뒤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고요한 폭풍 같았던 새벽이 지나가고, 펄롱은 가족들과의 미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신이 위선자 같다고 느낀다. 결국 세라의 하나뿐인 부탁(아이에 대한 질문)을 들어주지도 못했고, 그녀를 꺼내주지도 못했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의 무게는 여전히 그의 양심을 짓누르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 밤. 펄롱은 세라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한 발짝, 한 발짝 움직이는 펄롱의 발걸음 속에도 여전히 망설임이 담겨있다. 그 발걸음의 끝에서 문을 열자 그곳에 있는 세라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마침내, 펄롱은 그녀에게 손길을 내민다. 그녀의 눈에 무엇보다 크게 비치는 그 사소한 손길에는 결코 사소하지 않은 펄롱의 고뇌가 서려있다.



세라와 함께 걸어가는 펄롱은 많은 사람들을 마주친다. 그리고 펄롱과 함께 있는 조그마한 소녀를 알아본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피한다. 그래, 모를 리가 없었다. 다들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시선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마냥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나였다고 달랐을까. 그 누가 생판 모르는 남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포기할 수 있을까.



크리스마스를 향해 눈밭을 걸어가는 펄롱, 그리고 그의 품의 세라를 비추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펄롱의 행동은 어떤 변화를 불러올 것이며, 그 대가가 무엇일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겨진다. 작가는 독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펄롱이 했던 것과 같은 생각들이 독자의 머릿속에 잔잔한 물결처럼 퍼져나갈 뿐이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처럼 사소한 것들> 실제 아일랜드에서 행해졌던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글의 배경이 된 막달레나 수녀원은 1996년에서야 문을 닫았으며, 그 만행의 흔적은 대부분 파기되거나 분실되었다.



펄롱은 딱히 능력이 뛰어나거나,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와 같이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고 살아가는 소시민에 불과하다.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글은 내 삶에 밀접하게 다가왔다. 내가 그동안 지나쳤던 사소한 것들,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작가도 독자들에게 거창한 무언가를 바란 건 아닐 것이다. 그저 작은 것부터 - 행동이어도 좋고, 생각이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일상에서 지나치던 것을 의식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원래 변화라는 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 사소하지만 결코 하찮지는 않은 것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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